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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킴 May 06. 2023

2010년 여름, 새로운 시작

..이라 쓰고 개고생의 시작이라 읽는다..

이제는 벌써 10년이 넘은 이야기지만, 그 당시에 써둔 일기장과 기억에 의존하여 토론토에서의 파란만장했던 생활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드디어 대학 생활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토론토에 왔다. 작은 타운 생활 속에서 쳇바퀴 처럼 돌아가는 무료한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어 마지막 남은 학점은 토론토 대학에서 이수하기로 한다.

그래도 따분한 일상을 버틸 수 있게 해준, 몇 되지 않는 정든 친구들을 두고 떠나는 것은 아쉬웠지만,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될 곳에 대한 기대감이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토론토 생활 첫날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거의 사기에 가까웠던 방렌트

토론토에서 임시로 거주할 집을 예약해두어야 했다. 캐나다 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은 Daum 카페 "캐스모"를 통해 머물 곳을 찾았다. 한국마트란 찾아볼 수 없었던 소도시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나는 한국음식, 한국어, 한국사람들이 고팠으므로 노스욕(North York)의 한인 타운에 위치한 쉐어 하우스에 룸렌트를 예약했다. 당시엔 토론토 가기 전이라 직접 방문해서 방을 볼 수 없으니 사진으로만 확인하고 그냥 예약해버렸는데, 이럴수가.. 나중에 토론토에 도착해 마주한 실제 방의 모습은 사진과는 너무 달랐다. 아니, 포토샵으로 보정한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그냥 전혀 다른 방 사진을 사이트에 올리고 방렌트를 내놓았던 것이다..


사진의 방은 큰 창문으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이층 방이었고, 내가 지낼 방은 어두컴컴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의 지하 방이었다. 방이 사진과 다르다고 주인 아주머니께 묻자, 그 2층방은 이미 나갔다며 우선 여기서 지내고, 나중에 방을 바꿔주신다고 한다. (물론 그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래,, 두 달 계약했으니 두달만 버티자. 얼른 내 보금자리를 찾아서 여길 탈출해야지-


이렇게 첫날부터 토론토에서의 고난생활이 시작되었다. 밖은 더워도 내가 지내는 지하방은 기분 나쁘게 으슬으슬하고 추웠으며 공동부엌은 너무 지저분해 도저히 뭘 해먹고 싶은 의지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주로 먹은 것은 라면, 햇반과 사놓은 반찬, 오뚜기 삼분카레 등등 조리가 전혀 필요없는 것들 이었다. 밥먹기도 귀찮아 주로 하루 한끼 먹고 종종 올라오는 허기는 과자로 연명했다..


특히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엄지손톱만한 새까만 개미들과 천장에서 줄타고 스윙을 해대는 거미들, 그리고 모터소리를 내며 날라다니는 왕파리들... 난 정말 벌레를 끔찍히 싫어한다. 아니, 공포에 몸서리를 친다. 아니, 근데 개미가 뭘 먹어서 저렇게 크지? 혹여나 저 개미한테 물리면 피 나오겠다..ㅜㅠ 거대왕파리는 가끔 속도조절을 못해 나한테 부딪칠 때가 있는데 날아온 돌에 맞은 듯 아프다...

그래서 내가 시멘트 바닥에 발을 디디는 경우는 학교갈때, 밥 먹을때, 화장실 갈때 빼곤 전기장판 켜놓고 침대 위에서만 생활했다..


이 방을 하루빨리 탈출하리라는 일념으로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교 근처의 아파트들을 직접 방문하며 앞으로 거주할 곳을 찾았다. 위치가 다운타운인데다 학교 근처라 원룸 값이 만만치 않아 찾는데 고생했지만, 너무 운이 좋게 학교 근처, 지하철 역 근처의 배츌러룸 아파트를 비교적 낮은 값에 구할 수 있었다. 거기 살던 세입자가 1년 계약을 채우지 못하고 급히 나가야 할 상황이어서  그 세입자가 내던 렌트값으로 이어서 들어가 살 수 있었으며, 놓고간 퀸사이즈 매트리스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집은 원룸 형식이고 창이 커서 햇빛이 환하게 들어와 밝고 아늑했다. 아파트 바로 옆에 지하철역이 자리잡고 있었고 3분정도 걸어내려가면 대형마켓, 커피숍, 레스토랑, 펍 등등이 밀집한 번화가가 나왔다. 토론토 대학도 코앞이지만, 수업듣는 빌딩까지는 대략 걸어서 10분정도 였다. 마지막으로 한인타운도 걸어서 10-15분거리라는 것!! 정말 완벽한 위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너무도 힘들었던 이사

앞으로 지낼 집을 찾았다는 즐거움도 잠시, 친구는 물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곳 토론토에서 이사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차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 하나 없어 지하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다니며 월마트나 아이키아에서 물건을 사다가 하나하나씩 날랐다. 그 해 여름은 어찌나 더웠던지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커다란 백팩과 양손에 가전제품들을 들쳐매고 매일매일 무식하게 날랐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아이키아에서 배송받은 가구들 중 하나에 나무 판자 하나가 잘못 들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욕을 한바가지로 중얼거리며 다시 아이키아에 판자를 들쳐매고 지하철 버스를 번갈아 타며 가는데 아 진짜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그렇게 처량해보일 수가 없었다.. (하필 그 나무 판자가 크고 꽤 무거웠다..)

지금은 그런 노가다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시 못할 것 같다. 그땐 그냥 젊고 무모했던 가난한 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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