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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킴 May 06. 2023

지독하게 힘들었던 그 해 여름

토론토로 이사한 그 해 여름은 내 인생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새 출발'에 부풀었던 기대감은 차가운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나에게 '꿈과 희망의 도시였던 토론토'는 곧 '지옥같은 도시 토론토'로 바뀌어 버렸다.  



지독한 외로움과 고립의 시간

그 당시 아무런 연고 없이 무식하게 발부터 들인 이 곳 토론토에서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내가 외로움을 잘 타는 스타일도 아니고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인데도, 낯설고 무서운 곳으로 탈바꿈한 토론토에서 혼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토론토는 나에게 무섭고 위험한 곳이었다. 그런데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막 학교 근처 원룸으로 이사를 왔을 때, 아파트를 관리하는 남미출신의 나이 든 아저씨가 있었다. 이 아저씨가 관리인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원룸과 편의시설에 관한 안내와 렌트비 납부 관련 때문에 만날 수 밖에 없었는데 가벼운 악수로 시작된 터치가 단순한 인사의 제스처 이상으로 점점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부탁도 안했는데 내가 학교 간 사이에 내 방에 들어와 커튼을 달아주고 내가 하다만 가구 조립을 해놓고 가서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아파트 관리인은 마스터키가 있으니 내 원룸에도 언제든지 들어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힘들게 이사했는데 이 아저씨 때문에  다시 이사나가야한단 말인가- 고민을 하다가 일단 이 아저씨에게 경고를 주기로 한다. 잘못된 터치와 행동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하며 한번 더 이런 일이 발생시엔 아파트 오피스에 알리겠다고 하니 이 관리인도 결국 고용인인지라 당황해하며 나에게 거리를 두고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따로 도어락도 사서 달아놨다. 다행히 결과적으론 큰 문제없이 해결되었지만, 당시 나를 보호해줄 가족도, 도움을 요청할 친구들도 없는 상황에서의 두려움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생각대로 되지 않던 취업

이번 여름학기가 마지막 학기였기에 졸업하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직장을 알아보기로 했다. 안되면 제대로 된 직장 구할때까지 파트타임이라도 하면서 생계는 내가 스스로 유지하며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름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어도 그동안 일 경험이 전무 하다는 점에서 나는 취업의 벽에 부딪쳤다. 이곳 캐나다는 높은 학점보다는 일 경험을 더 중요시했다. 하,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대학 다닐동안 파트타임이라도 뛰면서 일경험을 쌓아뒀으면 이력서나 커버레터에 부풀려 쓸 얘기라도 있겠는데, 나는 왜 그토록 빨리 졸업 하겠다고 수업만 빡세게 들어왔단 말인가..

내 자신이 무능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2년제 컬리지만 졸업해도 다들 자기 밥벌이 하면서 잘 사는데, 난 유학비 및 생활비로 부모님 등골 빼먹어 가면서 4년제 대학 나와서 취업을 못해 파트타임 구하러 다니는 내 모습에 자존감이 무너져갔다. 오죽했음 석사과정 밟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으나 더이상 부모님께 부담을 드릴 순 없는 일이었다. 이 시기엔 아침이 올때마다 '이대로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냥 쭉 잠만 자면서 잠시나마 이 초라한 현실을 잊고 싶었다.





안간힘을 다해 마지막 학기 마무리

매일매일 눈도 뜨기 싫을 정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으나, 결국 학교 과제와 시험철은 다가왔고 원룸 렌트비를 내기 위해선 파트타임이라도 해야했다.


'원하는대로 안된다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바라는대로 안될 것이고, 친구 없다고 불평만 하면 계속 혼자 외로움 속에 살 것이다. 정말 이 우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내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더 적극적이고 더 열심히 사는 수 밖에 없다. 회사에서 원하는 일경험,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만들어보자.'


일단 임시로 파트타임을 구해 주말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일해서 렌트비 및 생활비를 벌고, 주중엔 수업듣고 과제하고 중간/기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때마다 발런티어도 뛰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자 했다. 하루하루 몸이 부서지듯 피곤했으나, 적어도 잡생각이나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 책 쌓아놓고 페이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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