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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킴 May 11. 2023

피 마르는 구직활동의 시작

실패의 쓴 잔을 들이키던 나날들

경제학 학사를 전공하고 토론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도시니까 취직의 기회는 더 많을 거라 생각했고, 처음엔 긴장 되면서도 3달 안에는 목표하던 금융 쪽으로 취직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다.


한달, 두달, 세달..

시간은 이렇게 계속 흐르는데, 인터뷰 콜은 거의 오지 않았다. 아니, 이력서 지원하는 것 부터 자격조건이 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신입을 구한다는데 관련 경력 최소 1-2년을 요구하는데 그건 이미 신입이 아니지 않나?

매달 소득이 없이 렌트비, 생활비는 계속 나가니 통장은 바닥을 보이고 있고, 자존감은 땅을 치고, 나는 여기서 영영 취직은 못할 것 같았다. 한국의 가족을 제외하고 친인척, 친구들과 연락 주고받는 걸 피하기 시작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

”무슨 일 해?”


이 소리 듣는게 너무 싫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취직했냐고 계속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취직하면 내가 알아서 좋은 소식을 전할텐데, 왜 이렇게들 궁금해하는지..


아니,, 어쩌면 그냥 일상 안부를 묻는 거였을 수도 있는데, 내 자존감이 바닥을 뚫고 저 아래로 내려가 있어 생긴 나의 괜한 자격지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때 많이 힘들고 예민했던 것도 인맥 쳐내기에 한 몫 했던 것 같다.



굴욕적으로 끝난 첫 인터뷰

시간이 흐를 수록, 더이상 금융권만 고집하지 않고 식당, 커피숍, 리테일 등등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다 넣기 시작했다. 그냥 하나만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수입이 전혀 없다보니 일단 어디든지 돈은 벌고 있어야 급한 불은 끄고 원하는 분야에 꾸준히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에는 도서관에 가서 금융 자격증 공부도 했다. 일 경험이 없는 대신 자격증이라도 따서 이력서에 플러스를 만들어보기 위해서다.


그나마 간간히 인터뷰 콜이 오는 곳은 대부분 커미션 베이스인 세일즈 잡이었다. 세일즈로 판 만큼 돈을 버는 방식이다. 커미션 베이스 잡은 나만의 고객층이 단단히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할 수 없고,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아는 세일즈 하시는 분은 고객층이 단단히 잡혀있어도 매 달 스트레스 받아하셨다. 매달 생활비가 있는데, 혹여나 그 이하로 벌어서 충당하지 못할까봐.


제일 첫 인터뷰는 어떤 제품을 파는 커미션 베이스 세일즈 잡이었는데 정말 내 인생 최악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준비도 잘 안되어 있었고, 면접관이 하는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도 잘 못하고, 질문이 뭔지 여러번 묻고 물어도 못 알아들어 헛소리하다가 인터뷰가 끝났다.

면접관이 내 면전에서 바로 탈락시킨 인터뷰였다.ㅎㅎ


당시 면접관이 지금 인터뷰 질문도 못 알아듣는데, 세일즈 일은 어떻게 하려고 하냐며 미안하지만 이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며 탈락시켰다.


첫 인터뷰라고 처음 정장을 차려 입고 갔는데,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떨어지길 잘 했다고 안도했던 잡이다. 다단계가 이런 방식인지 모르겠는데, 알고보니 내가 그 회사 제품을 내 돈 주고 사서 주변에 판매하는 일이었다. 이런 곳은 설사 합격해도 내가 거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굴욕적인 첫 인터뷰는 나에게 나름 경험이 되고 그 후의 인터뷰들에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인터뷰는 보면 볼 수록 는다는 말, 정말 맞는 말이다.


그 후로 세일즈 커미션 베이스도 인터뷰 콜이 오면 그곳에서 일하지 않아도 일단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무조건 임했다.



내 자신이 처량했던 어느 하루

대형 통신사의 마케팅으로 고용된 한 작은 업체에서는 인터뷰 후에 하루 자기 직원들과 지금 세일즈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일종의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고, 네가 이 날 하는 거 봐서 뽑을지 말지 결정하겠다며.

여기도 백프로 커미션 베이스인데,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 수락했다.


세일즈 일을 하는 4-5명의 직원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대학생들, 심지어 고등학생도 있었다. 당시 겨울이라 날이 너무 추웠는데, 주택가에 가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방문판매를 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어찌나 매섭던지 정말 덜덜 떨면서 하루종일을 밖에서 돌아다녔다.

이렇게 하루종일 일했는데 실적을 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버는게 없는 거다..

그래서 트레이닝 끝나고 이 일은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아침에 인터뷰하러 집을 나선 후 집집마다 방문판매를 하다가 저녁 컴컴할 때 되서야 집에 오니 뭔가 내 처지가 슬펐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 일본식 바에서 오뎅탕과 뜨끈한 사케를 마시니 몸이 따뜻해지며 살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눈가도 뜨끈해지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슬프고 속상한 감정은 주변에 잘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히는 타입이라..


이제 시간이 꽤 지나 상처가 아닌 경험으로 남은 당시 의 기록을 부분적으로 이 곳에 남겨본다.

일기장에는 적나라하게 적은 날 것의 감정을 꽤 순화해서 적어본다.



해외 취업 시장에 뛰어들며 느낀 점

(내 경험 중심으로 적다보니 상대적이다)

전문성이 있는 학과, 기술을 배울수 있는 학과가 최고다. 대체적으로 이과 나오면 문과보다는 취업 성공 확률이 더 높다.

당시 캐나다 유학 당시, 전공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경제학이 흥미로워 전공으로 정하게 됐지만, 막상 취업시장에 뛰어드니 엄청 후회했다.

주변 중국 친구들은 이과는 대부분 엔지니어로 가고, 문과는 회계를 전공으로 선택하던데, 그 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경제학은 이론이 강한 학문이라 막상 회사에 지원하려니 내세울 실용적인 전문지식이나 기술니 전혀 없어서 대학 졸업장이 있으나 마나였다.


문과 쪽 엔트리 잡은 기술을 요하기보단 말빨과 일 경험이 제일 중요했다. 내 경우에 무경험이나 어떤 전문기술을 요하지 않는 엔트리 잡은 대부분 커미션 베이스 세일즈 잡이었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탁월해야 하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나는 전혀 경쟁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들은 수려한 말빨이 (세일즈, 마케팅, 커스터머 서비스 등) 크게 필요치 않은 기술직으로 대부분 취업하기가 수월했다. 그냥 일할 때 필요한 기본 커뮤니케이션만 필요한 정도면 된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유학생 때로 되돌아 간다면, 무조건 실용학문이나 전문 지식,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과로 갈 것 이다. 외국인에게 취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경쟁성이 있는 학과.

그리고 무조건 주말에는 커피숍, 식당, 또는 리테일이든 어디든 파트 타임을 뛰어서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일 경험을 만들 것이다.


내 경험상, 이 두가지가 회사 취업 성공 확률을 높일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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