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일 경험 쌓아나가기
금융 쪽으로 들어간다고 자리 날때마다 자격 조건이 안되는 자리도 무조건 이력서를 넣고 있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고, 바닥을 보이는 통장 때문에 일단 생활비는 스스로 충당하며 살아야했다.
캐나다에서 일 경험 전무라서 한인식당 빼고는 현지 커피숍, 현지식당에서 조차도 연락이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봄, 여기저기 이력서 보낸 팀호튼 중 한곳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당일날 지점으로 인터뷰 보러 바로 와줄 수 있겠냐고 해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사실 이 지점 팀호튼은 두번째로 보는 인터뷰였다.
맨 처음 인터뷰봤던 다른 지점 팀호튼에서 매니저가 일 가능한 시간대 물어볼때, 내가 주말은 안되고 주중에만 오전에서 오후까지만 일할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자 오케이 하고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내 처지에 이것저것 따지다 탈락한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 두번째 팀호튼 면접에서는 매니저에게 “I can work any time, any days, on any call" 라고 어필했다..ㅜㅠ
그 정도로 난 절박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취직됐다.
팀호튼은 나에게 앞으로 차근차근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첫째로, 나에게 이력서의 일 경력란에 적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커피, 샌드위치 만들고 주문받고 서빙하는 일이지만, 그걸 excellent customer service and communication, efficient team work, strong independency, 등등으로 화려하게 포장해서 적을 수 있다.
그 전엔 학력란에 대졸 빼고 그 외는 적을 수 있는게 없었던 백지같던 이력서였다.
둘째,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늘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내 전공은 주로 읽기와 듣기, 쓰기가 주였다. 교과서 읽고 강의 듣고 과제로 페이퍼 쓰기. 외국인 룸메이트랑 살아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서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고,학교에 몇 안되는 한국 친구들과 주로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한국 친구들 중에 언어 능력이 좋은 친구들은 그래도 금새 영어를 곧잘 하던데, 난 언어 능력도 꽝이었다.
그나마 읽기와 문법은 곧잘 했지만, 말하기와 듣기가 참 약해서 현지인과 대화할 땐 여전히 긴장되고 쉽지 않았다.
그런데 현지 대학을 나와서도 개 떡같던 내 영어가 팀호튼에서 동료와 손님과 소통하면서 훅 늘 수 있었다.
영어회화 실력을 단기간에 향상 시키고 싶다면, 영어만 쓰는 환경에서 현지인들과 일하면서 부딪치고 깨지면서 배우는게 제일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이건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샌드위치, 수프, 음료, 아침식사 등 서양식 음식 종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전엔 팀호튼에서 주문하는게 쉽지 않았다.
샌드위치 하나를 시켰는데 뭘 이리도 많이 물어보는지.
빵 종류는 뭘로 할지, 그 안에 소스는 뭘로 하고 싶은지, 커피는 어떻게 주문하고 싶은지, 베이글은 어느 정도로 구워야 하는지, 크림치즈를 바른다면 레귤러인지 라이트인지 등등......
이것저것 개인의 입맛, 요구에 맞춰서 만들어주는데 뭘 알아야 그렇게 customizing을 할텐데, 하나도 모르니 팀호튼에선 커피랑 도넛만 주로 샀었다.
하지만 팀호튼에서 일한 이후로, 내가 몰랐던 메뉴들도 알게 되었고 내가 직접 각종 샌드위치를 만들고 음료도 만들다보니 그 이후엔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춰 주문 할 수 있었다. 이건 팀호튼 뿐만이 아닌 어느 레스토랑에서든 서양식 음식을 쉽게 주문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음식의 조리과정과 종류를 알기에 자신감이 생긴 거다.
언젠가 엄마가 캐나다 방문했을 때, 나 팀호튼에서 주문하는거 보고 놀라신 적이 있다. 무슨 샌드위치 주문하는데 뭘 그렇게 길게 줄줄 얘기하냐고..ㅎㅎ 샌드위치 만드는 방법을 얘기하냐고 ㅋㅋㅋ
그 다음 취직한 곳은 리테일 스토어였다.
월마트, 코스코, 홈디포, 캐네디언 타이어, 스테이플, 베스트바이 등등의 큰 소매상점이다.
5개월이라는 짧지만 팀호튼의 커스터머 서비스 일 경력 덕에 그 이후론 인터뷰 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바라던 은행에서도 드디어 연락이 왔지만 아쉽게도 인터뷰에서 미끄러졌고(..), 그 뒤에 홈디포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 보고 캐셔로 일하게 되었다.
주택, 집에 관련된 자재들을 파는 곳이었는데, 캐나다인들은 자기 집을 셀프로 많이 수리하고 개조하고 꾸미고 하다보니 홈디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홈디포에서 일하면서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건축도구, 목재 종류, 파이프나 타일, 페인트, 각종 자잘한 부품들, 가드닝 제품 등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어떤 건축 컨트랙터가 자재를 사가면서 나한테 혹시 목수 일에 관심 있냐며, 자기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ㅎㅎ
미국 캐나다 전역에 있는 큰 리테일 스토어이다보니
확실히 일 구조가 더 체계적이고 직원 혜택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리고 나에겐 팀호튼에서의 일 경험 덕에 이곳 캐셔의 일을 금방 익혀 적응 할 수 있었기에 일이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이 곳에서 일하다가 이젠 정말 내가 원하는 직장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짜리 post graduate work permit도 이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도 했고,
캐나다에서의 일 경력도 나름 생겼고,
언어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자신감도 생겼으니
이제는 정말 원하던 금융권에 취직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왜 그렇게 은행에 집착했을까, 싶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은행은 그냥 캐나다에서의 최종 목표였던 곳이다.
여기서 일 경험 쌓고 비자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홈디포에서 일하면서 또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냈고
그러다 구직에 집중하겠노라, 하며 홈디포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원하던 은행에서는 인터뷰연락이 잘 오지도 않고 통장의 돈이 점점 줄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진 나는 다시 어디든 다시 일을 시작하자로 계획이 바뀌었다.
그리고 어느 한 작은 전화 마케팅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이건 커미션 베이스는 아니었고 고정 샐러리를 받는 일이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세일즈 일이라는게 걸렸지만, 전화영어가 취약한 나는 이번 잡에선 전화영어 실력을 늘려보겠다며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콜센터 일이었다.
무작위로 집집마다 전화를 걸어서 은행의 보험상품을 파는 일이었다. 상품 설명하는 대본이 따로 있었고, 고객의 응답에 따라 얘기해야 할 대본들이 각각 있었다.
8시간 트레이닝 받고 집에 왔는데, 이 날은 왜인지 내 기분이 서글펐다. 이제 제법 서비스 관련 직종들은 연락이 오기 시작했는데, 정작 내가 일하고 싶은 곳에서는 연락이 잘 오지 않는걸까..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 기회가 와도 인터뷰에서 미끄러져서 놓쳐버린 내 무능력을 탓하면서 눈물이 나더라.
그날 밤은 혼자 맥주 한 캔 마시며 쿨쩍 대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 9시, 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하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내놔서 여긴 언제 지원했는지, 무슨 직책으로 지원한 건지 기억이 안나더라..
일단 HR 매니저가 간략히 회사 소개를 할 때 얼른 회사 이름 받아 적어두고,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해서 하고, 다음날 온사이트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전화 끊고 얼른 적어둔 회사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미국회사였고 주마다 지점이 있는 큰 회사였다. 내가 무슨 직책으로 언제 지원을 했는지 이메일을 찾아보니 지원한지 몇개월 된 곳이었는데 이제서야 연락이 온 경우였다.
하필 콜센터 트레이닝이 여기 회사인터뷰 시간이랑 겹치고,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 콜센터 일 정말 하기 싫었다.
그래서 콜센터 회사에 전화해서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 바로 다음날 있을 인터뷰 준비를 했다.
여기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이었고 간절했다.
회사가 외곽에 있어서 전철 타고 기차타고 2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했다. 회사 빌딩도 내부도 내가 그렇게 바라고 일하고 싶었던 환경이었다.
왕복 4시간이여도 괜찮았다. 이곳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1시간 전에 도착해 근처 커피숍에서 인터뷰 예상 질문 답변 다시 한번 훑어보고,
그렇게 회사의 담당 매니저와 팀 리더와 인터뷰를 보았다. 처음엔 너무 떨렸는데, 인터뷰 담당자분들이 인상이 너무 좋으셨고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편안하게 인터뷰를 이끌어 주셨다.
그리고 1시간 전에 다시한번 훑어본 예상 질문들이 대부분 나와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신기했던게 긴장됐던 그 상황에서 친근하게 웃음을 유지하고 담당자와 눈을 마주치며 침착하게 답변을 하는 나 자신에게 좀 놀라긴 했다. 게다가 질문을 받으면 준비한 답변처럼 바로 대답하는게 아니라 3-5초 정도 “음~”하고 답변을 생각하는 연기까지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어디서 용기가 나왔는지, “나 정말 너희 회사에서 일하고 싶고,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당일날 인터뷰 막힘없이 잘 본 것 같아 기분좋게 나왔고 1주일을 피말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차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이번엔 같은 부서 팀 멤버들과 인터뷰를 보는 것이었다. 매니저와 보는 것과 달리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는지 첫번째와는 달리 답변도 완벽하지 않았던 것 같아 두번째 인터뷰 후엔 그 후의 기다림의 시간은 지옥이었다.
매일매일 리크루터한테 연락이 왔는지 메일 확인하고 전화기 붙잡고 있고..
여기 진짜 가고싶은데, 이렇게 놓치는 건가 싶어서 너무 허탈하고 두번째 인터뷰에서 살짝 느슨해졌던 나를 자책하고.. 다시 인터뷰 뿌리며 구직할 생각하니 앞이 막막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진짜 지긋지긋해서 이 회사 안되면 한국으로 그냥 가버리고 싶었다.
2치 인터뷰 후 일주일이 좀 지나서 드디어 리쿠르터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레퍼런스 요청 이메일 이었다.
레퍼런스 요청이 왔다는 건 거의 고지가 눈 앞이라는 건데, 하필 내가 레퍼런스 부탁하던 사람이 여행을 가사 다른 사람을 찾아야 했다.
게다가 리크루터가 추천인과 연락이 안된다고 중간에 또 이메일이 와서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었다.
안돼, 거의 다 왔는데 레퍼런스에서 무너질 순 없어 ㅜㅠㅠ 어찌나 마음을 졸였는지...
결과적으로는 첫 인터뷰 후 총 한달 반 정도 지나서야 오퍼레터를 받고 사인할 수 있었다.
오퍼레터를 받았을 때의 그 기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비록 은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회사 빌딩 안에 내 공간이 생기고, 내 책상 컴퓨터 앞에서 자판 두드리며 일하는 사무직이었다. 그리고 연봉 점프와 더 좋은 회사 베네핏이 생겨 삶의 질도 향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밝고 자신있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남자친구가 토론토 대학에서 석박사를 하고 있어서 남친 지인들을 만나면 상대적으로 많이 쪼그라들고 부담이 됐었다. 부끄럽게도 남자친구에게 괜한 열등감도 생기고 그랬다.. 현지 4년제 대학 나왔음에도 학위가 전혀 상관없는, 학위가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 일하다보니 그 괴리감 때문에 더 자존감이 떨어지고 열등감이 생겼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토론토에서의 힘들었던 취직 이야기의 끝이다.
지금은 당시 회사의 일과 전혀 관련 없는,
학교 전공과 관련 1도 없는 일을 하고 있다.
원하던 회사에 취직하고 그쪽에 정착해 전문적으로 파고 들려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내 관심이 시들어졌다. 내가 왜 이 분야에서 일을 하려는 건지, 왜 금융권이어야 하는 건지 그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들었을때 그럴듯 하니까?
전공과 관련있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경제학 전공을 선택했던 거지?
그 당시 주변 친구들이 하고 있어서 교수나 수업 정보를 얻기가 수월했고, 당시 한국에선 경제•경영학이 문과에선 무난했던 학과였다보니 캐나다 대학에서도 별 생각없이 경제경영을 선택했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학문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좋은 학점을 받는 것.
그래서 전공 관련 무난한 직장에 들어가서 돈벌며 살다가 무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무난하게 사는 것 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는 힘들게 정착한 회사일이 지루했고 열정도, 지적 호기심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커리어 방황 끝에 우연한 기회로 내가 정말 즐길 수 있는 일, 열정이 팡팡 터지는 직종을 찾아내었고,
나는 지금 새로운 분야에서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며 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차근차근 다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