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의 깊은 손녀 사랑과 백년된 거북이 국
단풍이 한창 절정을 이루는 시절에 뉴욕에 있는 아들로 부 터 방문 초청이 왔다. 나는 예나 다름없이 가져갈 준비물들을 며칠을 앞두고 생각하고 준비하였지만 가져갈 수 있는 물건들은 제한이 되었다. 항공사는 얼마 전부터 부치는 짐에다 상당한 운송비를 부가하여 가능한 한 최소로 적은 분량의 짐을 꾸렸다.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이 아니기에 집에 있는 사람의 음식준비와 여러 가지 신경을 쓸 일들이 뒤 따랐지만 정성껏 마무리를 짓고 아들을 보게 되리라는 그 기대에 들떠서 떠나는 날만 기다렸다.
일주일이 넘게 비가 오고 궂은 일기가 계속 되드니 떠나는 날은 화창 한 봄 날씨 같은 일기였다. 공항에 3 시간 전에 도착을 하였지만 항공편으로 하는 여행객들은 수많은 검색을 거치게 되는데 짐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늘어남과 동시에 그 과정이 두배로 길어지고 장시간 기다림이 여행객들을 몹 씨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아들의 권유로 뉴욕을 출발하기 전에 그곳에 살고 있는 몇 사람의 후배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나의 일정을 알렸다. 그랬더니 한 후배로부터 답신이 왔는데 나의 일정에 지장이 없는 한 자기들이 주선한 대접에 따라 달라고 전해왔다. 나는 아들과 상의한 후에 기쁨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전했다.
이후배는 작년 2 월에 캐 리비안 여행 때 만난 사람인데 북미에 와서 처음 만난 일 년 후배라 하는데 내 기억에는 그때의 시간들이 모두 잃어버린 과거의 장으로 다가왔다. 작년에 캐 리비안 여행을 북미에 있는 동창회 주선을 내가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 모두에게 금전적인 혜택은 돌아온 셈이지만 과정에 여행사 실수로 웃고 넘어갈 수 없는 그런 사연들이 많이 발생했다. 그 피해자가 바로 이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는 동창들이었다. 세 사람이 떠나는 날 비행장에 갔다가 어떤이유인지는 몰라도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하고 30 시간을 뉴저지에서 플로리다까지 달려오는 길에 예측지 못한 일기로 눈사태를 만나고 악 천 기후를 무릎 쓰고 그곳까지 달려온 여장부 들이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더라면 여행은 쉽게 취소 되었을 것이다. 악천에 3 시간도 생각 못할 일을 그들은 무섭게 해 냈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래도 웃음으로 처음 만남의 인사를 나누고 옛 시절로 돌아가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그 후배들의 힘들었을 운전이 이런 만남의 기회를 준 것에 나는 마음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결과로 나는 이 후배들과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그들은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잊고 따뜻한 마음으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섬들을 여행하는 동안 장거리 여행에서 겪었던 힘들었던 마음도 어느 듯 풀리고 키 웨스트 섬 방문 때에 백년 된 거북이 국을 먹게 해 준 일생의 처음 경험을 안겨준 그 후배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차량봉사, 식사대접, 오락실 방문 등의 긴 시간을 할애해 주고 기쁜 시간을 안겨주었다. 만하 탄에서 나를 싫고 뉴저지로 가서 다른 후배를 기다리는 시간에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처음 들어선 집은 아담한 타운 하우스였는데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첫눈에 들어온 것은 벽 전체가 첫 손녀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선배님, “이 아이가 저의 첫 손녀예요” 라 고 하는 그녀의 그 깊은 사랑을 온몸에서 또 그녀의 음성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다.
손녀가 태어나서 부 터 자라는 과정의 온갖 모습들을 사진기에 담아서 이렇게 벽에 붙여 놓고 순간순간 혼자서 즐기는 할머니를 다른 동창의 말 처 럼 “짝사랑 할머니 ”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사랑의 일부를 먼 곳에서 온 선배하고 나누고 싶어 사진 설명에 여념이 없다. 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왔다. 두 번째 만나는 우리, 우리는 동창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무런 장애물 없이 자석처럼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후배는 미국에 와서 간호사로 일한 것이 아니라 해외 파견 근무직을 받은 남편을 따라서 그곳에 와서 사업기로 부를 이룬 동창이다. 그래서 삶의 패튼이 나와는 다른 그런 행로였다. 두 딸아이들도 세계 명문대학을 보내고 잘 키워서 일세로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후배이다. 지금은 은퇴를 하고 학교에 돌아가서 열심히 영어공부와 자기 취미 생활을 즐기는 생활을 한다고 일러준다. 나는 이 후배가 부럽기도 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그녀의 넉넉한 마음이 내 마음을 감동시켰다. 사람이 아무리 가져도 베풀지 못하는 사람을 얼마나 보아왔던가. 내가 얼마를 가졌던 그것을 너그럽게 베풀 수 있는 훈훈한 마음이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녀가 그렇게 베풀고 살아가는 그 모습이 내가 또 만나고 싶은 후배의 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든 손녀가 태어남은 그녀에게 무한한 행복의 시간들로 채워진 듯 보였다. 넘쳐흐르는 사랑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하는 할머니를 대하면서 나는 아직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탓인지 그 후배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렵기만 했다. 누구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일 것이다. 나이게도 머지않아 그런 짝사랑의 대상이 태어날 것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후배 할머니에게 “짝사랑 할머니가 정말 부럽습니다”라는 말을 가슴으로 전하면서 비행에 올랐다.
2011-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