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이상으로 인해 색상을 정상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을 색맹(色盲)이라고 한다. 눈을 부릅떠도 우측 사진과 같이 숫자를 분별해내기 어렵다고 한다.
마음에도 색깔이 있다. 기쁨(희 喜), 노여움(로 怒), 슬픔, (애 哀), 즐거움 (락 樂) 4원색이 때마다 다른 비율로 섞여 셀 수 없이 많은 색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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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 16강에 오르고 펑펑 울던 손흥민 선수가 느낀 건 설마 순도 100%의 슬픔이였을까? 해냈다는 성취감,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한 기쁨뿐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투혼한 스스로를 이제야 마주하며 울컥했던 게 아닐까. 주장으로서 지고 있던 책임과 부담의 무게를 16강이라는 결과가 어느 정도 덜어주었을테니.
하루에도 수많은 마음 조합이 발생한다. 허물 벗는 뱀처럼 옷을 벗은 자리에 그대로 둔 채 뻗은 남편을 보며 열이 받다가도, 많이 피곤했으리라 안쓰러움을 느낀다. 하루 종일 시달린 회사에서 퇴근 후, 상사 뒷담화를 안주삼아 동료들과 마시는 맥주의 즐거움은 낮의 분노와 섞여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자기세뇌로 희석된다. 이 섬세한 스펙트럼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내 남편은 이 마음의 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명백한 4원색이 아닌 한, 여러 마음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은 잘 읽지 못한다. 어찌어찌 논리적으로이해하더라도 역지사지하여 공감하는 법은 없다.
'여느 남자든 거의 다 그렇다', '공대 출신은 그런 경향이 있다'는 수많은 위로와 설득을 듣고 읽었지만 7년 동안 복닥거린 결과 남편에게는 단순한 무뚝뚝함이라는 단편성으로는 덮을 수 없는,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특성이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처음엔 내가 예민하고 다혈질이라 온순하고 무던한 그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줄 알았다. 엄밀히는 충돌이 아니었다. 벽에 대고 외치는 나 혼자만의 분노와 실망, 절망이었다. 남편은 멀뚱히 서서 뭘 어째야 할지 몰랐다.
혼자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떠나 마음을 가라앉혀보고,친구들, 동료들과 신나게 어울렸다. 각종 취미로 관심분야도넓혀보았지만모든 노력이 그때뿐, 집으로 돌아오면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조르고, 나 혼자 이끄는 우리 '둘'의 모습이 오뚝이처럼 재현됐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정확히는 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남편과 꾸린 가정에 복귀하기 싫었다.
어느 날부터 그를 '심맹'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가 보지 못하는 것이지 안 보는 게 아니라는믿음은 남아있으니까. 색맹이 치명적 장애나 단점은 아니듯, 남들에 비해 둔감하고 이입하지 않는 성향으로 이해하면 된다.
생각을 고쳐먹은 후부터 자존심을 내려놓고 내 마음과 감정을 날것 그대로 이야기해주려 노력했다.
휴직 후 지방으로 내려와 함께 '안정적으로' 살게 되면서 특히 많은 대화를 시도했다. 그가 마음과 감정을 보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면 지금보다 수월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를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관찰하고, 기억해내고, 물어본다.
우리 결혼이 무언가 이상함을 자각하기 시작했던 것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첫 출근을 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