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경험'을 선사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의 등장
좀비물을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워킹데드(Walking Dead)'라는 콘텐츠 브랜드는 매력적이지 않지만, '게임' 콘텐츠 시리즈는 확실히 흥미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2012년 텔테일 게임즈(telltale games)에서 런칭한 게임 <더워킹데드(The Walking Dead)>는 당해 GOTY(Game of the year, 올해의 게임)를 수상하며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만화적 질감을 가진 카툰 렌더링 그래픽으로 구성된 이 게임은 지금까지 5편이나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이 콘텐츠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의 콘텐츠 경험을 확장시킨다는 것입니다. 게임 <더워킹데드> 시즌 1에는 드라마에서 스티븐 연이 분한 '글렌'이 등장하고, 시즌 3에는 '지저스'가 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게임 <더워킹데드:미숀>은 드라마에서 언급되지 않은 미숀의 과거를 다룹니다. 이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로 다각화하고 이들을 날실과 씨실로 엮어내는 것은 소비자에게 보다 입체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마치 영화-게임-애니메이션에 각기 다른 이야기를 녹여냄으로써 거대한 세계관이 지닌 매력을 극대화했던 <매트릭스>처럼 말이죠.
게임 <더워킹데드> 핵심 경쟁력은 '콘텐츠와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에 있습니다. 이 게임의 주요 전개 방식은 액션이나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답변을 선택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는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여러 인물들과 교류하고 그 가운데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이후 상황의 전개나 엔딩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전개 방식이 콘텐츠 소비자의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이 콘텐츠가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텔링'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몰입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엔딩을 맛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플레이어는 콘텐츠 내러티브에 '개입'함으로써 일종의 통제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또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게임을 한 번 더 플레이하도록 만듭니다.
이처럼 소비자와 콘텐츠가 상호작용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멀지 않은 미래에 콘텐츠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2017년 말, BBC는 아마존 알렉사를 매개로 시청자와 상호작용하는 에코 드라마(Echo Drama), <The Inspection Chamber>의 런칭을 알렸지요. 앞서 언급한 <더워킹데드>보다야 훨씬 단순한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선택을 통해 콘텐츠 소비자가 작품의 내러티브에 개입한다는 점, 그리고 이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 양상이 달라진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아 보입니다. 물론 알렉사를 통해 즐길 수 있는 콘텐츠이기에 음성으로 상호작용해야 하고, 이러한 특성은 종래의 콘텐츠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2017년에 연재되었던 하일권 작가님의 웹툰 <마주쳤다> 역시 독자의 참여를 전제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입니다. 기사 한토막을 그대로 옮겨오면, '만화 속 등장인물이 나의 이름을 부르고, 내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셀피(selfie·셀프카메라 사진)를 찍으면 만화에 나와 닮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또 스마트폰에 ‘훅’ 하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여주인공의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해 그녀의 코에 묻은 아이스크림도 닦아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개입은 콘텐츠 내러티브 자체를 바꾸지는 않지만, 여러 형태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의 폭을 확장시켜줍니다.
이와 같은 인터랙티브 콘텐츠는'경험'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마켓 리서치 펌인 Harris Insights & Analytics의 연구에 따르면 이 새로운 세대의 78%는 '물건' 구매보다 '경험'의 구매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주 고객층의 다수를 차지할 이들이 어떤 콘텐츠를 매력적으로 여기는 지를 시사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콘텐츠 소비자가 내러티브에 적극적인 개입할 수 있는 여지, 그리고 입체적인 콘텐츠 경험을 선사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신기한 것'을 넘어 차세대 킬링 콘텐츠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콘텐츠가 아닌,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경험'을 선사하는 콘텐츠는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그 매력의 크기만큼 이 분야가 성장해준다면, 우리는 '드라마를 본다'라는 표현만으로는 넓디넓은 콘텐츠 경험의 스펙트럼을 담아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