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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털풍뎅이 May 14. 2022

나의 애마 폐차기(1)

현실적 드림카 '뉴 코란도'를 샀다.

SUV의 추억


예로부터 자동차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과 돈을 빼먹는 데는 구미호에 버금가는 요물 중의 요물이라. 
 쇳덩어리를 구부리고 접고 붙여 곱게 칠해 단장한 몸뚱이는 그 형태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조각품 같다. 심지어, 그 조각품 같은 몸뚱이 안에는 온갖 첨단 기술로 채워져 번쩍번쩍 막 불도 뿜어(들어) 매력을 더한다. 
 신통하게도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사람들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구워삶고 홀리는 재주를 부리니 그야말로 이놈은 현대판 구미호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지금은 혼 라이프 SUV가 나올 정도로 자동차 카테고리가 촘촘하게 세분화되어 있지만, 아저씨들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질주하던 80년대. SUV라는 장르가 막 열리던 시절이 있었다. 
 소득 수준이 점차 올라감에 따라 여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그 여가를 함께 할 탈것, 즉 SUV(그때는 레저 카라고 했다.)라는 차종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때, 우리나라 SUV의 원조로 우뚝 선 자동차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코란도’ 되시겠다. 


필자도 우연히 마주친 코란도라는 그 자동차의 자태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어깨 뽕 잔뜩 넣은 미식축구 선수처럼 당당한 차체, 차돌을 박아 넣은 듯 단단하고 우람한 바퀴. 성난 황소처럼 으르렁대던 엔진 소리는 평범함보다는 독특함을 추구하던 필자의 취향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게다가 지붕! 지붕이 없다!

지붕을 활짝 열고 흙먼지 휘날리며 광야를 달리던 그 자태는 고정관념의 근엄함을 정면으로 들이받는 반항아의 그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의 깨어있는 젊은이가 마땅히 타야 할 반항과 파격의 아이콘이었다. 

이 운명적인 만남은 빠르고 날렵한 슈퍼카에만 관심을 두던 필자를 새로운 자동차의 세계로 인도해주었다. 
 터프한 매력의 SUV는 왠지 필자도 남성미 넘치는 진정한 수컷으로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면, 꼭 이 차를 손에 넣고 섹시한 남자로 거듭나 온 세상 여인네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겠다는 옴팡진 꿈을 품게 되었다. 


코란도는 시장의 변화와 니즈에 맞춰 개발된 신차라기보다는 기존에 라이선스를 받아 만들던 차를 시장 상황에 맞춰 손보고 데뷔시킨 개선품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어찌 됐건 개선은 시의적절했고, 코란도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본격 스포츠 레저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제조사들은 시장을 세분화하고 새로운 세그먼트를 개발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상품성을 높이고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어 수년간 갈고닦은 디자인을 공개한 회사도 있었고 영국의 스포츠카 브랜드를 인수해서 국내에 선보이는 회사도 있었다. 

SUV 시장의 가능성을 감지한 현대자동차는 독자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던 SUV 프로젝트를 엎고 1992년, 현대정공(현대 자동차가 아니다.)을 통해 미쯔비시의 파제로라는 모델을 들여와 갤로퍼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이 차는 코란도가 독주하던 국내 SUV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버렸다.


왜 하필이면 전범기업의 자동차를 들여왔을까 의구심을 갖던 바로 그 시점, 시장에서 밀리던 쌍용자동차가 회심의 반격을 날렸으니, 그것은 필자를 감동시킨 으마으마한(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자동차의 출시였다. 

승용차는 분명 아니고, 지프차 같긴 한데 기존의 박스스타일을 벗어난 날렵하고 매끄러운 디자인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메르세데스-벤츠(무려 벤츠다.)와의 ‘기술제휴’는 바로 그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걸맞은 성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담보하기 충분했다. 

출시 초기에는 직수입한 벤츠 엔진이 그대로 탑재된 차들이 판매되기도 해서 많은 아저씨들이 쌍용 마크 대신 벤츠마크를 달고 족보에 없는 벤츠 오너가 되기도 했다. 벤츠 엔진이니까 벤츠맞다며.  



무쏘가 죽음의 랠리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우리 기술력을 세계만방에 떨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94년에는 파라오랠리에서 종합 2위(디젤 부문 1위)를 차지했고, 95년에는 다카르 랠리에서 완전 개조 7위(디젤 부문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는 그땐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좋은 거라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여하튼, 죽음을 랠리라고 불릴 만큼 완주도 어렵다는 경주에서 루키로 우뚝 선 ‘우리나라 차’는 바로 그 청년의 드림카가 되기에 차고도 넘쳤다. (뭐 기업의 마케팅의 일환이었지만, 멋진 건 멋진 거 아닌가.)


그런데 가만 보자.

랠리에서 달리고 있는 무쏘를 보니 뭔가 좀 짧다. 곧 출시될 무쏘 숏바디인가 보다 했다. 



최고급 SUV를 표방한 무쏘의 가격은 넘사벽이었고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 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저 국산 자동차의 이미지에 꽂혀 무쏘를 ‘꼭 사야 할’ 위시리스트 1위에 올려두었다.


갤로퍼, 무쏘, 그리고 스포티지, 록스타… SUV의 시장성을 확인한 자동차 회사들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고성능 터보 엔진도 얹어보고, 승합차처럼 좌석수도 늘려보고, 젊은 층을 겨냥한 숏바디 차량도 만들었다. 한참 뒤의 일이지만, 나중에는 SUT(스포츠 유틸리티 트럭)이라는 카테고리도 생겼다.



현실적 드림카


무쏘의 성공에 힘입은 쌍용자동차는 공격적으로 새 자동차를 출시했다. 원래 무쏘를 원형으로 길이만 줄인 ‘무쏘 숏바디’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새 디자인이 너무 잘 나와서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 ‘뉴 코란도’라는 이름을 계승하고 아예 새로운 자동차로 출시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확인 못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름뿐이다.” 


뉴 코란도의 출시 광고 카피였다. (카피 한 줄로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다니.)


고급스러우면서도 스포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터프한 매력 터지는 디자인의 자동차에 매료되었다.  
 랭글러나 각 코란도에서 보아온 지프의 형태적 특징을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또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해석하고 전개한 디자인은 놀라우리만큼 성공적이었다. 

이런 곡선이 가능하구나, 우리가 디자인을 이렇게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구나, 가슴이 설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심지어 이 디자인이 국내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니, 아아.. 사진 속의 무쏘 숏바디가 이렇게 나온 거구나. 오매불망 그려왔던 님을 상봉한 것처럼 이 차야 말로 꼭 손에 넣고 사랑해야 할 필자의 운명의 데스티니 같은 그런 존재였다.


필자는 자동차야말로 이미지가 상품성을 심대하게 좌우하는 디자인 상품의 성격이 짙다고 생각한다. 


성능이나 실내 공간, 세금, 정비 용이성, 편의성 등 소비자가 고려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복잡한 것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법. 구매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제일 큰 요소는 디자인을 포함한 이미지. 그리고 두 번째 요소는 가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그냥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가 보다 하자.)


오로지 디자인! 

그것뿐이었다. 코란도는 당시 필자에게 아이돌이고 덕주님이셨다. 부품값이 어떻다든가 승차감이 어떻다든가 주행 안정성이 어떻다든가 하는 평들은 완전무결한 우리 덕주님을 음해하려는 방해공작일 뿐이었다. 
 

디자인 외에도 장점들은 또 있었다.    

승차 위치가 높다 보니 한눈에 내려다보는 넓은 시야를 제공해주었다. 높은 차고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다른 차들의 양보(?)를 이끌어 내 주었다. 덩치 큰 차였지만, 상대적으로 쉬운 운전을 선사해주었다.

제품마다 품질의 편차가 있어 완성도가 들쭉날쭉. 게다가 정비소의 서비스도 가성비가 그다지 좋은 편이 못돼서 차라리 동호회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일이 잦았다. DIY를 하며 자연스럽게 친목을 도모하고 차량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쌓았다. 


차가 인기 있다 보니 중고 가격 방어가 뛰어났다. (단종되고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중고 가격도 추락했지만.)


사실, 다른 멋진 차도 많았다. 

1998년 일찌감치 선보인 피터 슈라이어의 대표작, 아우디 TT라든가(야구 글러브로 감싸 놓은 듯한 코치의 시트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2002년 H1의 후속으로 선보인 허머 H2라든가, 가깝게는 쥬지아로가 디자인한 대한민국 1% 렉스턴도 엄청 멋있었다. 

눈은 머리 꼭대기에 있지만 주머니 사정은 배꼽 아래에 있었던 관계로 우리나라의 토종 SUV라는 것에 최대한 의미 부여하며, 청소년기부터 꿈꿔온 아이돌과의 의리를 되새기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자동차를 드림카로 타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집사는 것 다음으로 큰 지출을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만 무리하면 질풍노도 시절부터 꿈꾸던 SUV를 얼추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품에 안기어

2003년 12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코란도를 품에 안았다. 새 차는 아니었고, 출고된 지 몇 달된 새 차 같은 중고차였다. 그래도 저렇게 멋진 차를 타고 터프하고 섹시한 남자로 거듭나겠다는 옴팡진 꿈을 펼쳐낼 역사적 순간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물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사안은 있었다.  마음은 2900cc 최고급형 소프트 탑에 있었지만, 세상에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거나 이거나 코란도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2300cc면 어떻고 하드탑이면 뭐 어떤가.  


크고 우람하고 터프하며 마초스러운 자동차를 타고 싶어 했던 필자의 마음을 잘 알기에 크게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훗날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뒷문이 있는 차가 어떻겠냐는 아내의 조언이 있었다. 뒷문 있는 차도 물망에 올리긴 했다. 그래도 코란도가 아니어서 내키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차를 바꿀 수 있지 않겠냐며 설득했다. 


이제 광고 카피처럼 ‘길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은’ 토종 SUV의 오너드라이버가 되었다. 꿈꾸었던 대로 오프로드로 모험을 떠나 진짜 수컷으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나는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신혼을 그렇게 즐기리라 마음먹고 커뮤니티 선배들을 따라 이런저런 DIY를 시작했다. CD 플레이어 기능이 있는 오디오에 CD가 6장이나 더 들어가는 CD체인져까지 구해서 달았다. 나중에는 내비게이션도 되고 인터넷도 되고 mp3와 동영상 플레이까지 다 되는 자동차용 PC까지 달았다. 

다만, 바퀴를 인치 업하고 바디를 올리는 등의 구조 변경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리지널 디자인을 훼손하는 일이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오프로드로 달려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흙먼지 날리는 오프로드로 모험을 떠나는 일 따위는 애초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디자인 일을 하면서 더 공고해져 버린 완벽한 조형에 대한 강박이랄까, 아니면 차를 사랑하게 된 가련한 남자의 민낯이랄까. 어디 찌그러지면 어쩌나, 어디 까지면 어쩌나 신경 곤두세우고 곱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만 골랐다니는 자신의 찌질한 모습을 발견하곤 문득문득 현자 타임이 오곤 했다. 


설상가상, 산간오지로 모험을 떠나자는 필자의 피 끓는 제안에 아내는 ‘왜 돈 들여 비싼 차 부숴가며 그 고생을 하려는가’ 하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찬물 같은 걸 막 끼얹곤 했다. 뒷문 있는 차를 권했던 아내의 취향은 알고 보니 승차감 좋은 매끈한 세단이었던 것이었다.
 
그저 주말이면 세차장에서 비누거품 세차를 하고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구석구석 왁스 칠하고, 그렇게 때 빼고 광낸 아름다운 코랭이(필자는 필자네 코란도를 코랭이라 불렀다.)의 자태를 감상하는 것이 유일한 모험이자 낙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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