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작별: 6년된 돗자리

맨바닥이 낫겠어

by 진이

아침에 눈을 뜨면 뭘 버릴까 생각한다. 처음 마음 먹었을 때는 버릴 게 눈에 가득했는데, 막상 또 버리려고 하니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보통은 쓰지 않는 것, 그저 내 방에 존재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인데 어쩌면 그것 자체로 그들은 쓰임을 다한 것일까.


요즘의 나는 '직없'(직없이 없는 상태를 표현. 오타가 났는데 마음에 들어서 적어보았다.)이다. 살아갈 날이 한참인데, 하고 싶지 않은 일로 생을 채울 자신이 없어 일을 그만둔 지 약 1년. 나올 때는 호기롭게 나왔으나, 나라고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불안을 잘 견디는 편. 나는 지루한 안정에 보다 약하다. 아무튼 회사에 다닐 때는 평일 오후가 그렇게 귀중한데, '직없' 상태에서는 일상이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그때는 평일 오후에 놀면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으나, 지금은 뭐 특별한 감흥이 있지 않다.


라고 말했으나, 그래도 봄과 여름 사이에서 따뜻한 바람과 쨍한 하늘이 가득할 때면 나는 또 신이 난다. 동생과 카톡을 하다가 이 날씨, 참을 수 없다며 가까이로 한강 피크닉을 가기로 했다. "나 돗자리 있어!"하고 보여주니, 제발 좀 버리란다. "오늘 쓰고 버리면 되겠다"라고 답했다.


돗자리를 펼치니 여기저기 정체 모를 검은 때가 묻어 있다. 사실 아직 쓸 만하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6년이나 썼으니 (스타벅스 프리퀀시 프로모션으로 2018년에 받았더라.) 이 정도면 보내줘야 한다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우리의 마지막 피크닉. 동생은 우클렐레를 들고 새로 나올 신곡을 위한 영상을 찍었으며, 나는 누워서 판덩의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를 읽었다. 그 모든 순간 내 돗자리가 함께했다.


무언가를 버리기로 결심했을 때, 타인의 무심함은 내 망설임에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내 물건과의 라포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때때로 그것이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나를 결심으로 이끈다. 비단 물건 뿐일까. 감정도, 사람도, 내가 벗어나지 못하는 무엇이든.


잘 썼다. 당분간은 타인의 돗자리를 빌리거나 혹은 맨바닥에서 이 봄과 여름의 날씨를 만끽해야겠다.



아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깨끗하게 관리하고 썼으면 더 오래 쓸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적고 보니 당연한 소리다. 맥시멀리스트이지만 관리는 못하는 아주 문제 많은 맥시멀리스트구나. 돗자리가 일상용품도 아니고 특별한 날 몇 번 쓰는 것일텐데. 반성한다. 미안해 나의 오랜 친구야. 너를 가지기만 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나를 용서해주겠니? 잘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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