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한 스푼_#4]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전복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을 바라보는 첫 번째 시선을 하이퍼픽션에 두었다면 두 번째 시선은 극 인물들의 역할 변동이 서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을 비롯한 여러 책/게임 빙의장르에서 빙의된 독자/플레이어와 주동인물은 서로 반목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빙의장르에서 주동인물과 빙의된 독자/플레이어가 반목하는 것은 아닙니다. 채유화 작가의 『여주인공이 나를 새언니로 점찍었다』에서 주동인물과 빙의된 독자는 서로 협력관계를 맺고 있고 지예수 작가의 『마릴린은 라리엔사를 너무 좋아해』에서는 기존 서사와 달리 주동인물과 친구관계를 맺게 됩니다. 대립 뿐만 아니라 협력관계에서도 소설의 주제가 뒤틀리게 된 이상 우리는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의 주동-반동인물 대립구도를 자연스러운 역할 갈등 현상으로 넘기기보다 역할 너머의 차원에서 더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동인물은 극 인물의 중심에 놓여있습니다. 바로 극적 사건을 이끌어가는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통의 목표를 두고 벌이는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대결 구도에서 독자들은 극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되고 더 나아가 두 역할군의 대결과정과 해소에서 수면위로 떠오른 극 주제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은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핵심적 역할인 것입니다.
조금 시선을 달리해보면 사건의 핵심적 역할을 맡으면서 극 중심에 위치한 주동인물은 극 주제와 밀접한 관계와 흐름을 공유하게 됩니다. 주동인물은 극 중심에 위치하면서 극적 사건을 이끌어가는 특권을 누리는 대신 극 주제를 완성해야합니다. 그리고 극 주제는 주동인물을 극 흐름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점차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주동인물과 극 주제는 서로 공생관계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에서 페넬로페에 빙의된 플레이어는 극 말미에서 주동인물이었던 이반 에카르트를 탑에서 떨어뜨립니다. 극 주제의 핵심적 역할인 주동인물의 죽음은 이반 에카르트가 주동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하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두 가지 의문을 떠올렸습니다.
A . 주동인물이 죽었다면 극 주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
B . 반동인물이 극 주제에 개입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