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 스푼_#2] 박민규 『카스테라』
나는 늘 불쾌할 정도로 외로웠다.
몇 년 전부터 혜성처럼 우리 삶 가운데를 차지한 콘텐츠가 있다. 바로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다. 청각을 소재로 한다는 신선함으로 시작된 ASMR은 먹는 방송(이하 먹방)과 연계되어 인터넷 콘텐츠의 한 장르로 더욱 자리잡게 되었다. 많은 인터넷 방송인들은(유투버, 아프리가 BJ, 스트리머)이 마이크를 앞에 두고 음식을 먹는 소리를 녹음하여 많은 조회수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공중파도 인터넷 플랫폼에 발맞추어 먹방콘텐츠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사생활이었던 식사는 이제 예능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먹방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서, 혹은 맛있는 음식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먹방을 보는 시청자의 대다수는 1인 가구와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급속도로 증가하는 1인 가구 시대에 발맞추어 1인용 메뉴를 전문으로 하는 배달 업체가 생겨나고 외식기업들 역시 1인 메뉴들을 출시하며 혼밥족들을 붙잡고 있다. 이런 1인 가구, 혼밥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소위 ‘위로 산업’이라고 말한다. 즉 외로움을 사고파는 것이다.
혼자 사는 40대 후반 김철기(가명)씨는 지난해 멀쩡한 TV를 두고 75인치 신형 TV를 하나 더 샀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일이 더 없다”는 김씨는 “뭔가 소리가 나면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으니까, 집에 가면 잘 때까지 TV를 켜 놓는다”고 말했다.
[출처 : 세계일보] 엄형준,김준영 기자 “TV·모바일은 ‘단짝’, 식사는 ‘대충’… 1인 가구의 자화상, 2021.02.06.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틀어주었던 다큐프로그램 중 한 장면이 떠오른다. TV를 켜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PD가 그 이유를 질문하자 학생은 “고독하고 외로워서”라고 답한다.
외로움은 누군가와 공간(공간은 단순히 소유하고 있는 땅의 개념을 넘어 삶의 영역까지 포함한다)을 공유한다는 의식이 부재할때 시작된다. ASMR과 먹방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의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공간을 공유하기 위해 오늘도 소리와 영상이 담긴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2005년에 발표된 박민규의 『카스테라』 역시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나는 늘 불쾌할 정도로 외로웠다.
즉 그런 연유로 냉장고와 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런 느낌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굉장한 소음이 있어 나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박민규 『카스테라』, 문학동네(2005), 16p.
냉장고의 소음이 시끄러워 고통스러움을 호소했던 독신 주인공은 냉장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냉장고의 소음이 있어 외롭지 않았음을 말하게 된다. 아주 사소한 서술이지만, 냉장고의 존재 의의를 자각한 순간 주인공의 삶에서 냉장고는 더이상 ‘소음’이 아니라 ‘소리’로 자리잡게 된다. 외로움을 자각한 『카스테라』의 ‘나’는 냉장고의 소음으로 외로움을 극복한다.
소설 『카스테라』의 막바지에, ‘나’는 냉장고 속에 중국, 미국 걸리버 여행기, 영화 등 다양한 것들을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카스테라 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카스테라를 베어물었을 때 ‘나’는 만족감에 빠져든다. 만약 타인과 나눠 먹었다면 만족감은 두 배로 늘어났을까, 줄어들었을까?
카스테라를 먹은 ‘나’는 냉장고와, 수험생과 공시생은 ASMR 영상과, 혼밥족은 먹방 영상과 공간을 공유한다. 즉 1인 가구들이 누리는 자유 속에는 개인적 공간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엿보인다. 이러한 모순은 1인 가구들의 외로움을 먹고 살며 더욱 몸집을 크게 부풀리고 있다. 더군다나 고독과 고립, 소음과 소리는 한 끗 차이라서 더욱 아리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