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도 생각이 감기지 않던 밤이다. 불 꺼진 방안에 시간을 알려주던 빛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잊고 있었다. 인간이란 게 이렇게나 어리석다는 걸 쉽사리 잊어버린다는 것조차 잊고 살아왔더랬다. 그렇게 새삼스러움에 몸서리쳐지던 밤이구나. 오늘의 너와 내일을 기약하는 나에게 그 기나긴 줄의 끄트머리를 내려놓는다.
멀리서 들려오던 메아리에는 무던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정도로 먹먹해져온다. 그렇게 낯설어진 오늘에 빠르게 흘러가는듯한 시간에 문득 두려워진다. 한때 스쳐 지나갈 숫자 따위로 여기기엔 새겨진 의미는 생각보다 꽤 깊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자연의 순리라던 게 이토록 잔인한가 싶을 때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날카롭게 들려오는 밤이다. 자연이란 이름 앞에서 가장 무기력한 존재인 인간은, 그렇게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으면서도 어느 것도 해낼 수 없다는 괴리감에 몸서리치며 눈을 감아버렸다.
잠을 자야 생각이 멈췄다. 멈추고 싶단 생각만으론 멈춰지지 않던 생각을 멎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니. 오늘도 이 하루의 끄트머리를 무기력한 손으로 매듭짓고선 꾸역꾸역 내일에 이어 내려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