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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직장인 May 21. 2022

나를 찾아가는 100가지 질문_열한 번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가요?

 나는 검은색을 좋아했다. 옷을 입을 때 검은색은 깔끔해 보였고 상황에 따라서 무게감도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하의를 검은색으로 했을 때 어떤 색의 상의를 입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잘 매칭이 됐다. 그래서 편하게 상의를 고를 수 있었고 검은색 바지 하나만 있으면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 가든 편하게 옷을 골라서 빠르게 입고 나갈 수 있었다.

  검은색은 어떤 색깔과 섞여도 그 색이 변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에게 검은색은 모든 색을 다 포용하는 색이었으며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나의 것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지조(志操) 있는 색이었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색깔을 강력하게 유지하면서 나만의 길을 굳건하게 걸어가는 색깔의 검은색. 그 검은색처럼 나는 살아야만 했다.

 밝고 예쁜 색깔이 참 많은데 검은색을 좋아한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검은색이 주변 다른 색을 다 죽여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 검은 마음 안에 숨은 생각이나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흑백논리, 흑색선전처럼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도 너무 극단적인 느낌을 주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검은색을 좋아한다고 하면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음흉하거나 속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검은색이 주는 오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검은색을 좋아하던 그 시절의 나는 검은색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을 좋아하던 시절은 나의 10대 청소년 시절부터 20대 초반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힘든 시절을 보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학교생활에서는 자발적인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아들이라는 책임감을 짊어지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다. 비행 청소년이 되거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상황도 시간도 없었으며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했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나는  암흑 같은 어렵고 힘든 상황을 빨리 극복하고 싶었다. 나의 인생에 밝은 빛을 찾고 싶었고 또래의 다른 친구들처럼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면서 하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하면서 지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주변 상황이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만 빨리빨리 달려 나가서  어둡고  터널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더 검은색이 좋았고 편했으며 당시의 나와 가장 잘 맞는 색깔로 생각했다.

 20대 초반이 끝나갈 무렵 나는 장교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그 시절이 핑크빛처럼 밝고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약간의 경제적인 독립과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의 색깔로 여겼던 검은색과도 조금씩 거리를 뒀다. 파란색, 보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색들이 눈에 들어왔고 옷을 고를 때도 어두운 계열의 색깔이 아닌 밝은 원색 계통의 색을 골랐다.

 가정 형편도 조금씩 나아지면서 아들이라는 부담감은 여전히 갖고 있지만 대학생 시절만큼의 책임감의 무게는 아니었기에 내가 갖고 싶고 내가 하고 싶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한 동안 잊고 있던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힘들었지만 그 시절을 극복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에 100% 동의한다. 그때 내가 만약 나에게 주워진 무게감과 책임감을 견디지 못하고 탈선을 하거나 현실에서 도망쳤다면 분명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 당시 나의 색깔이었던 검은색, 어쩌면 내가 어쩔 수 없이 좋아하게 됐던 검은색이 참 고맙다.


[ 색깔은 나를 반영한다 ]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상황과 감정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특정한 색깔을 골랐다고 한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그것을 한번 곱씹어보는 것은 지금의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색깔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바실리 칸디스키

 색깔의 심리학이라는 전문 분야가 있다. 소비자들이 어떤 색상에 반응하지 파악한 뒤에 가장 많이 반응하는 색깔을 광고나 홍보 이미지에 담는다는 것이다.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학문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나만 봐도 나의 상황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색깔, 내가 반응하는 색깔이 분명히 달랐다. 그래서 마음의 아픔을 갖고 있거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술심리치료나 검사를 하는 이유도 색깔이 그 사람을 반영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좋아하던 색깔도 변한다. 좋아하던 색깔이 바뀌었을 때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자. 나의 마음과 생각, 나의 주변 상황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는지, 나는 지금 괜찮은지를 되새겨보길 바란다.

 바실리 칸디스키의 말처럼 색깔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영혼을 잘 보살피고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내가 지금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인지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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