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가장 사랑한 하이킹 코스
※ 2025년 7월에 쓴 글입니다.
캐나다 밴쿠버섬의 남서쪽, 빅토리아에서 한 시간쯤 달려가면,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고요한 자연 속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공원이 하나 있다. East Sooke Regional Park. 1,474헥타르의 거대한 자연보호구역으로, 울창한 숲과 절벽 해안, 그리고 조간대 생태계를 품고 있는 이곳은,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을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다.
우리는 2012년, 빅토리아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인의 소개로 처음 이 공원을 찾았다. 그날 이후, East Sooke Park는 우리 부부에게 가장 특별한 하이킹 장소가 되었다.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고, 운영하던 small business도 영업시간을 줄이게 되면서 우리에게는 뜻밖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사람 많은 곳은 피하고 싶어 거의 모든 트레일을 돌아다녀 보았고, 그중에서 특히 마음을 빼앗긴 곳이 바로 Parkheight Trail이었다. 아래의 지도상에서 여러 가지 색으로 표시한 곳이 우리가 돌아다녔던 트레일들이고 연두색으로 표시된 곳이 Parkheight Trail이다.
트레일은 편도 약 50분, 만 보 정도의 거리이어서 반나절 산책에 안성맞춤이다.
토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그 길을 걸었다. 해안 끝 바위에 앉아 준비해 간 삼각김밥을 먹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드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는 그 시간은, 우리 부부에게 일종의 작은 의식 같았다.
Parkheight Trail의 가장 끝 지점에 도달하면, 시야가 탁 트인 절벽 위에 조용히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우리는 그곳을 'Grace Point'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Grace'는 아내의 세례명이다. (참고로 이 지점의 정확한 GPS 좌표는 48도 19분 48초 N, 123도 40분 41초 W이다.)
아내와 나는 종종 이야기했다.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좁은 납골당보다는 자연 속에서 영원히 쉬고 싶다고. 그래서인지 아내가 한국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던 날, 나는 Grace Point를 가장 먼저 떠올렸고, 결국 그곳에서 아내의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그날이 오면 같은 장소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딸에게 전해 두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또 하나의 하이킹 코스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에게 East Sooke Park, 그리고 Grace Point는 평생을 함께 걸어온 삶의 이야기가 담긴 특별한 장소이다.
이제는 혼자 걷게 되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아내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위 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고, 그리움은 바람을 타고 잠시 다독여진다.
East Sooke Park에 가보신다면 꼭 Parkheight Trail의 끝자락까지 걸어볼 것을 강추한다. Grace Point에서 마주하는 태평양의 수평선과 바다 건너 보이는 미국의 올림픽 국립공원은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어줄 것을 확신한다.
#EastSookePark #ParkHeightTrail #GracePo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