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여행

여행은 계속된다, 아내와 함께

by Geoff Jung

※ 2025년 7월에 쓴 글입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결혼 전에도 절친들과 함께 한라산 백록담,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 등 국내 명산들을 많이 다녔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라 외국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했지만, 만약 그때 가능했다면 틀림없이 절친들과 배낭 하나 메고 해외여행을 다녔을 것이다.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제주도로 여행을 갔을 때가 생애 첫 비행기 탑승 경험이었다. 서울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전라도 광주까지 간 뒤,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왜 서울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여행 경비를 아끼려 했던 것 같다.


함께 떠난 여정


다행히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에도 우리는 자주 여행을 다녔다. 결혼 직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나는 연구 조교로 일했다. 방학 중에는 근무 시간이 늘어 급여도 두 배가 되었고, 그 여유 자금으로 아내와 미국 곳곳을 여행했다.


내가 유학했던 콜로라도주를 중심으로 동부의 뉴욕, 보스턴, 버펄로, 워싱턴 D.C.,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LA, 샌디에고, 라스베가스, 남부의 달라스, 휴스턴, 남동부의 올랜도, 마이애미, 북부의 옐로스톤과 마운트 러시모어, 그리고 하와이까지… 우리가 밟았던 발자국은 지도 곳곳에 남아 있다.

%EB%AF%B8%EA%B5%AD_%EC%97%AC%ED%96%89_%EC%A7%80%EB%8F%84.jpg?type=w773 유학 시절 집 거실 벽면에 붙여 놓았던 미국 지도

이민 후 더 넓어진 여행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에는 여행의 스케일이 더 커졌다. 밴쿠버에서 토론토까지 2박 3일 대륙횡단 열차를 탔고, 또 다른 여행에서는 토론토에서 동부 끝까지 자동차 여행을 했다.


빅토리아로 이사한 후에는 여행 방식이 더 다양해졌다. 알래스카 크루즈, 서유럽, 지중해 크루즈, 동유럽, 호주와 뉴질랜드, 멕시코-벨리즈-온두라스 크루즈까지… 우리는 일상이 곧 여행이었다.


처음 개인 비즈니스를 시작했을 땐 자리를 비우는 게 두려웠지만, 한 번 작정하고 다녀온 뒤에는 '우리가 없어도 돌아가는구나' 하는 확신이 생겨, 마음 편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ppp.jpg?type=w773 체코 프라하에서 카렐교를 배경으로

우리의 여행 루틴


여행지에 도착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 앞에서 둘만의 인증 사진을 찍곤 했다. 가능하면 배경에 다른 사람이 찍히지 않도록 신경 썼고, 셀카보다는 정식 구도의 사진을 선호했기에 주변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찍었다. 그중에서도 사진을 잘 찍어줄 것 같은 사람을 골라 조심스럽게 부탁했는데, 대부분 결과가 좋았지만 가끔은 황당할 정도로 엉뚱하게 찍히는 경우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찍은 적도 많았다.


우리 부부는 특별히 수려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들수록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줄어들어 웬만하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인증 사진을 남긴 뒤에는 근처 선물가게에 들러 자석을 하나 고르고 나서야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되곤 했다. 한때는 기념 수저나 머그잔도 샀지만, 결국 자석이 제일 실용적이고 보기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은 그 자석들이 거실 벽면을 장식하고 있고, 그걸 보며 지난 여행을 추억하고 다음 여행을 꿈꾸곤 한다.

20250711_221529.jpg?type=w773 집 거실 벽면에 붙어있는 자석판

여행에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핸드폰으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 파일을 컴퓨터에 옮겨 정리하고 보정하는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여러 장을 찍은 경우, 가장 잘 나온 ‘베스트 샷’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삭제한다. 선택한 사진은 수평을 맞추고,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며, 밝기도 조정한다.


이런 과정을 모든 사진에 적용한 후, 가장 마음에 드는 몇 장은 ‘가족사진’ 폴더에 따로 보관하고, 나머지는 ‘여행 사진’ 폴더 아래 해당 여행 이름의 하위 폴더에 정리해 넣는다. 그리고 여행 경비 내용은 엑셀 파일로 정리해 둔다.


이 모든 작업을 마쳐야 비로소 그 여행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투병 중에도


아내가 투병을 시작한 이후엔 여행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항암 치료 중에도 몸 상태가 괜찮을 때면 당일이나 1박 2일 여행을 다녔다. 단양 패러글라이딩, 통영, 강릉, 부산, 군산, 정선, 제주, 울릉도와 독도, 하와이 빅아일랜드, 삼보 사찰 순례까지… 우리는 끝까지 '같이 가자'는 마음으로 떠났다.


아내가 투병중일 때,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지금 하늘나라로 떠난다면 가장 아쉬운 게 뭐야?”

아내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글쎄, 당신과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았고, 딸도 출가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고, 손주도 봐서 할머니로서의 기쁨도 충분히 느꼈고, 여행도 많이 다녔으니까… 아쉬운 건 별로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아직도 당신과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우리 둘 중 누구라도 지금 떠나면 안 돼.”

2023-35.jpg?type=w773 정선 민둥산 중턱에서

아내와 계속 함께


이제 아내는 하늘나라에, 나는 아직 이 땅에 남아 있다. 처음엔 '혼자 여행해서 뭐 하나' 싶은 마음이 컸지만, 곧 깨달았다. 아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내가 무너지지 않고 딸과 함께 씩씩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다시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아내의 사진이 담긴 자석과 배지(pin)를 제작했다.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게 잘 나와서 무척 기뻤다. 여행용 백팩에 핀을 달았다. 앞으로 내가 어디를 가든, 아내와 함께 갈 것이다.

2022-31.jpg?type=w773 단양 패러글라이딩 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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