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추억, 그리고 위로
3주 전 주말, 부산에 있는 둘째 처제네 집에 다녀왔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벌써 세 번째 방문이지만, 이전 두 번은 모두 아내와 함께였다. 이번처럼 혼자 가는 여행은 처음이라 마음이 조금 복잡하기도 했다. 다행히 첫째 처제가 동행해 주어 한결 마음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itx-마음’ 기차 여행, 기대와 현실
작년엔가 인터넷에서 강릉에서 부산까지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itx-마음' 노선이 개통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차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동해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문구와 함께 해변가를 달리는 열차 사진이 실려 있었고, 그때부터 언젠가 꼭 한번 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서울–부산을 KTX로 가면 3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강릉으로 가서 부전 행 기차 'itx-마음'을 타고 가면
청량리 → 강릉 KTX 2시간
강릉 → 부전 itx 5시간
총 7시간. 시간도, 비용도 더 많이 든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느긋하게 바다 보며 여행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 기차표를 예매했다.
사실 이 여행은 지난 9월에 이미 계획했던 것이지만, 아버지께서 골절상을 입고 입원하시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취소되었고, 이번에야 비로소 다시 떠나게 된 것이다.
강릉–부전 'itx-마음'은 하루 4회 운행한다.
밝은 낮 시간에 바다를 제대로 보려면 오전 11시 5분에 강릉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야 해서 8시 19분 청량리행 KTX를 예매했다. (9시 18분 열차도 있지만 환승 시간이 5분이라 위험했다.)
강릉역에 도착하니 출발까지 약 한 시간이 남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기다렸다. 그리고 11시 5분, 기대하던 부전행 열차가 출발했다. 잠시 후, 홍보 사진에서 보았던 그대로 푸른 동해가 창밖으로 펼쳐졌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걸 보려고 이 기차를 탄 거지.” 그 순간만큼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철길은 해안가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고, 이내 바다는 멀리 실루엣만 보이는 구간이 많아졌다. 결론적으로 5시간 중 해안가 바로 옆을 달리는 구간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15분 남짓, 멀리 서라도 바다가 보인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였다.
홍보 사진과 실제 풍경 사이의 간극이 적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그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옆에 있었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래도 한 번 경험해 봤으니 됐다”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둘째 처제가 반주하는 미사, 뜻밖의 위로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은 둘째 처제가 반주하는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둘째 처제가 오랫동안 성당에서 반주 봉사를 해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그 미사에 참여한 적은 없었다.
일요일 아침 9시 미사에 참석했다.
처제가 건반으로 반주하는 가운데 미사를 드리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쁨이 느껴졌다. 그런데 미사 초반에 신부님께서 연미사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기도) 명단에 아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울컥함이 밀려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둘째 처제와 동서가 올린 것이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아내가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말을 잃었다.
추억이 겹쳐진 동백섬 산책
부산에서 머문 이틀 동안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간단한 관광도 즐겼다.
토요일에는 동백섬을 산책했는데, 택시에서 내린 순간 눈앞에 웨스틴 조선 호텔이 보였다.
그제야 떠올랐다. 39년 전 아내와 신혼여행 첫날밤을 보냈던 바로 그 호텔이었다.
우리는 부산—부곡 하와이—경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당시 미국 유학 준비로 제주도 대신 이 일정을 선택했던 기억이 난다.
그 순간, 오래된 추억들이 조용히 피어올랐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운대 해변을 걸었던 기억,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어설프게 춤을 추며 서로를 보며 웃던 장면들…
모든 장면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감정만큼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아... 참 좋은 시절이었다.
그 외에도 처제 집 앞의 백산을 산책하고, 블루라인파크에서 해변 열차도 타고 UN 참전국 묘역도 방문했다.
토요일 밤에는 광안리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열린 드론쇼를 감상했는데, 그날의 주제는 다름 아닌 뽀로로였다.
백팩에 부착한 작은 사진, 그리고 감사
이번 여행에 나는 예전에 직접 디자인해 만든 아내 사진 핀을 백팩에 달고 다녔다.
그걸 본 동서가 “누가 보면 아이돌 사진인 줄 알겠어요” 하고 웃었다.
정말 누가 와서 물어본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예쁜 여인이 제 아내입니다.”
첫째 처제의 동행 덕에 외롭지 않았고, 둘째 처제와 동서의 따뜻한 배려 덕에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세 사람 모두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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