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하는 여행 #1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

by Geoff Jung

봄이 왔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바람이 불면 몸이 움츠러들지만, 그래도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3월은 마음은 이미 봄인데 날씨는 아직 겨울의 꼬리를 붙잡고 있는 달이다. 해마다 가볍게 옷을 입고 나섰다가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3월은 아직 방심하기에는 이른 봄이다.


지난해 가을, 용인 실버타운으로 이사와 처음으로 겨울을 보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또 추위에 움츠러들어 실외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벼운 여행을 다녀보기로 했다.


SNS와 인터넷에는 수많은 여행지가 소개되는데, 그중 마음이 끌리는 곳들을 골라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 여행지를 고를 때 내가 중요하게 보는 조건 중의 하나는,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느냐다. 나는 장거리 운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가능하면 기차로 이동하고, 그 이후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한다.


함께 여행할 친구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아직은 여의치 않다. 누군가는 아직 일을 하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건강 문제로 함께하기 어렵다. 당분간은 혼자 다니는 수밖에 없다.


용인에서 바로 출발하면 이동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 있을 때 출발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았다. 일요일 새벽 배드민턴 운동을 마치고 아침을 먹은 뒤 출발하면 딱 좋다. 그렇게 첫 번째 여행지로, 신문 여행 섹션에서 본 춘천 삼악산 호수 케이블카를 정했다. 지난 일요일을 디데이로 삼았다.


하지만 막상 그날, 운동을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나니 몸이 노곤해지며 나태함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굳이 혼자서 거기까지 갈 필요 있나? 그냥 집에 가서 쉬지...’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으면 앞으로도 계속 같은 이유로 포기하게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아내는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자 다시 마음을 다잡고 배낭을 들었다. 아버지 댁을 나와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청량리역에서 iTX 청춘 열차를 타니 남춘천역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길을 헤맸지만, 네이버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탈 수 있었다. 예전에는 아내와 함께 해외에서도 길을 잘 찾아다녔는데, 혼자 다니려니 국내에서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요금을 보니 만 65세 이상은 경로우대 할인이 있었다. 나는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65세가 아닌데, 될까 하는 마음으로 경로우대 티켓을 요청했다.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아무 문제 없이 할인을 적용해 주었다.


내 인생 첫 ‘경로우대 할인’.
국가가 공식적으로 나를 노인의 범주에 넣었다는 의미였다.
기쁜지, 씁쓸한지... 두 감정이 묘하게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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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는 일반 캐빈과 바닥이 유리로 된 크리스탈 캐빈이 있었는데, 예전에 경험해 본 기억이 있어 별 고민 없이 크리스탈 캐빈을 선택했다. 가격은 4,000원이 더 비쌌지만 대기줄은 오히려 더 짧았다. 더 비싼 가격보다는 아마 고소공포증 때문일 것이다.


탑승할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다. 직원이 일행 여부를 묻더니, 한 쌍의 젊은 연인은 따로 태우고 나는 다음 캐빈으로 안내했다. 결국 나는 혼자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평소라면 여러 사람과 함께 탔을 텐데, 그날은 뜻밖에 혼자만의 공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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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까지 약 20분.
아래로 펼쳐진 호수와 산의 풍경은 고요하고 조화로웠다.
“그래, 오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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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는 작은 찻집이 있었고, 데크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전망대가 나왔다. 그곳에도 유리 바닥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족들, 연인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아내 생각이 났다. 내 또래의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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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누군가를 찾다가, 혼자 온 듯한 남성에게 부탁했다 (나는 셀피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감사 인사를 하니 그는 영어로 답했다. 대화를 해보니 한국 지사로 파견 온 베트남 사람이었다. 가족은 하노이에 있고 혼자 생활 중이라고 했다. 2년 후에는 또 다른 나라의 지사로 가야 하고 한국 물가가 비싸서 가족을 데려오지 않았단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느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메밀면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나의 여행의 의식인 기념 자석 하나를 샀다. 버스를 타고 남춘천역으로 돌아가니, 마침 청량리행 열차가 곧 출발 예정이었다. 서둘러 표를 끊었지만 좌석은 매진, 입석이었다.


하지만 기차에 오르니 입석표 손님을 위한 공간에 몇 개의 간이 좌석이 있었다. 다행히 자리가 하나 비어 있어 앉을 수 있었다. 따사로운 봄 햇살 속에서 졸다 보니 어느새 서울에 도착했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홀로 하는 여행’이 끝났다. 이미 다음 여행지도 정했고, 기차표도 예약해 두었다. 다음 달에는 2박 3일로 떠나볼 생각이다.


여행을 하는 내내 아내가 떠올랐다.
기차 안에서도, 거리에서도, 케이블카 안에서도... 마치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 몇 번이나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아마 아내는 그날 내내 나와 함께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었을 것 같다.

“나 없이도 잘하고 있네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요. 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예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혼자 하는 여행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라, 떠난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또 다른 방식의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떠나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