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이야기

by Geoff Jung

지난번 글에서 적었듯이, 나는 한국으로 온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Host Family가 되어, 나의 양부모님께 받았던 따뜻한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용인으로 이사 온 후, 그런 기회를 찾아보았지만 한 동안은 전혀 진척이 없었다.


아무리 내 마음이 순수하더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서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뜻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온라인상에서의 내 홍보에 대한 반응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온라인 스캠이거나 무료 봉사를 빙자한 사기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혹 받은 연락은 국내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이 아니라, 조만간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외국인들이었다. 국내 여행에 관한 조언을 부탁하거나, 자신이 세운 한국 여행 계획의 현실성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알려주었다.


일단 올해 초부터 병원과 외국인 유학생 도움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외국인 유학생 Host Family 형태의 봉사는 아니지만, 일단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얻은 교훈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그 분야에 발을 들여놓고, 일을 하면서 계획을 수정하고 변형하다 보면 결국 원래 계획했던 방향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1) 병원 자원봉사


내가 이사 온 용인의 실버타운 앞에는 대학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으로 자원봉사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자격 요건은 만 65세 이하, 그리고 최소 6개월 이상 꾸준히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 나이는 올해 65세. 조만간 봉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된다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퍼졌다.


병원 담당 부서인 사회사업팀에 전화를 해보니 항상 인력이 부족하니 언제든 환영이라고 했다. 특기 사항이 있느냐고 묻기에, 약 30년 정도 해외 생활을 해서 원어민 수준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영어 의사소통은 가능하다고 했더니 국제진료소에서 봉사해 달라고 했다.


자원봉사 첫날, 약속 시간에 병원 사회사업팀에 갔더니 약 20분 정도 병원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바로 봉사에 투입되었다. 서울의 대학병원들보다는 규모가 작아서 진료는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총 3개 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국제진료소를 방문하는 외국인 환자 안내였다. 접수를 돕고, 필요한 기본 검사(키, 체중, 혈압 측정)를 도와주고, 진료실 앞까지 안내하는 역할이다. 이후에는 담당 간호사가 와서 환자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간다. 봉사자가 의료 지식이 없으니 진료 통역을 맡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전직 의료인이거나 의료 통역 자격증이 있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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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일이 큰 일은 아니지만, 타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에게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과 짧게라도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잠시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낀다. 특히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몸이 아파서 왔을 텐데, 언어가 통하지 않고 복잡한 병원 환경에서 얼마나 막막할까. 나 역시 30여 년 해외 생활을 통해 그 외로움과 막막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이 병원 국제진료소를 이용하는 외국인 환자들은 대부분 주한미군과 그 가족들로, 평택이나 오산 등에 위치한 미군 기지에서 오는 환자들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이 병원과 미군이 진료 계약을 맺은 것 같았다. 주한미군이 아닌 일반 외국인 환자들은 국제진료소를 이용하지 않고 일반 진료를 받는다고 한다.


나는 현재 일주일에 1회, 3시간 봉사를 하고 있는데 하루에 1~2명의 환자를 안내하면 3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병원에서 자원봉사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봉사활동 시간 인증(나와는 큰 관련 없음), 봉사 당일 직원 식당 점심 제공, 그리고 연 2회 감사 선물 제공이다. 다음 주 설을 맞아 벌써 감사 선물을 받았는데 참치·햄 통조림 세트였다.


지난주 봉사 때에는 국제진료소에서 봉사하는 또 다른 봉사자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29세 간호대 여학생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 대학(보건학 전공)을 졸업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간호과 2학년에 편입했다고 했다. 나이에 비해 꽤 다양한 경험을 가진 학생이었다.


간호과에서는 교과 과정에 병원 봉사가 필수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병원 자원봉사자 중에 간호과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나처럼 은퇴 후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랑하고 밝은 미소를 가진,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젊은 학생과 대화하다 보니 나 자신도 조금 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의료 통역을 위해 기본적인 의료 용어와 의료 지식을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2) 외국인 유학생 한국어 지도 자원봉사


용인으로 이사 오기 전, 집 근처 K대학교에 전화를 걸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있다면 봉사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재학생과 외국인 유학생을 연결해 주는 버디 프로그램은 있어도 외부인이 참여하는 방법은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던 중 아버님이 거래하는 투자증권 회사 PB와 대화하다가, 내가 그런 의도로 외국인 유학생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이야기했더니, 마침 자신의 고객 중 외국인 유학생 도움방을 운영하는 대학교 교수님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용인에 있는 대학 근처였다. 정말 신기한 인연이었다.


PB의 소개로 그 교수님과 당일 바로 연결되었고, 일이 빠르게 진행되어 며칠 후 도움방을 방문해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은 중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후 오랫동안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수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외국인 유학생 도움방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1770957140273.jpg 외국인 유학생 도움방

학기가 시작되면 교내 공고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유학생을 모집해 나 같은 자원봉사자와 연결해 준다고 했다. 교수님이 중국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중국 유학생이 다수이지만 베트남, 몽골, 러시아 국적 학생들도 한국어 배움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나는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어렵다. 다만 한국어 연습 상대는 되어 줄 수 있다. 기존 교재를 기반으로 하되, 문법보다는 말하기와 듣기 연습을 중심으로 도와줄 수 있다. 교수님은 방학 중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유학생이 있는데 수업이 가능하겠냐고 물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달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주 1~2회, 한 번에 약 2시간 수업이다. 내가 지도하는 학생은 성악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36세 중국인 여학생이다. 이미 수년간 한국어를 공부해서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듣기와 말하기가 약했다. 예전에 한국 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하며 겪던 문제와 비슷한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중국어를 못하고, 학생은 영어가 거의 되지 않았다. 결국 교재 이외의 의사소통은 통역 앱을 통해 할 수밖에 없었다.


첫 수업을 마친 후 과연 수업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교수님은 과거에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았고, 성의와 열정이 있다면 앱을 활용해 충분히 수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AI에게 해결 방법을 물어보니 접근 방식을 바꾸라고 했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반복 연습을 시키라는 것이었다. 선생님 역할을 하려 하기보다는 연습 파트너가 되어 주고, 발음 교정과 진도 관리 정도만 하라는 조언이었다.


벌써 여러 번 수업을 진행했고, 지금은 학생이 중국에 다니러 가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학생은 Zoom으로라도 수업이 진행되기를 원할 정도로 열심이다. 앞으로도 수업을 하면서 방법을 조금씩 개선해 나갈 생각이다. 나와의 한국어 연습이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3) 그 외 봉사 계획


앞으로 성당에서의 봉사도 해볼 계획이다. 성당 주보에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장기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온라인으로 지원했다. 여기도 1961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가 자격이었다. 이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이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심사는 통과했지만 본당 신부님 추천서가 필요했다. 나는 캐나다에서 교적을 옮겨오지 않아 한국 본당이 없었고, 결국 캐나다 토론토에 계신 대부님께 추천서를 부탁해 제출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제적인 행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이런저런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명함이 필요할 것 같아 하나 제작했다.

직함은 ‘자원봉사자’. 오랜만에 다시 가져본 명함이다. 예전에는 사업을 하며 명함을 건넸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명함을 건넨다. 명함에 적힌 글자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예전보다 훨씬 깊어진 것 같다.


나는 대단한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병원을 찾은 누군가에게 잠시 길을 안내해 주고, 낯선 언어 속에서 막막해하는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말해볼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어쩌면 봉사는 그렇게 아주 작은 순간들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예전에 낯선 나라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 받았던 따뜻함을 조금이라도 다시 세상에 돌려주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이 제한 때문에, 혹은 체력 때문에 언젠가는 멈추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날이 올 때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줄 수 있는 만큼은 계속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자원봉사자’라는 이 작은 명함이 누군가에게는 잠시 안심할 수 있는 순간이 되고, 나에게는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명함이 부끄럽지 않도록, 앞으로도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봉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다시 만나는 길이라고, 나는 조용히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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