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타운 입주기 #1

홀로서기의 시작, 그리고 나를 위한 새로운 선택

by Geoff Jung

※ 2025년 8월에 쓴 글입니다.


내가 처음 '실버타운'이라는 단어를 접한 건 2011년이었다. 당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서 실버타운에 입소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아버지는 81세, 어머니는 77세셨다. 실버타운에 대해 알아보니 매우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연세가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식사 준비를 도맡아 하셨고, 그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마침 우리가 앨버타주 에드먼턴에서 BC주 밴쿠버로 이사한 직후였고, 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이라 한국에 방문해 부모님의 이사를 도와드릴 수 있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실버타운 중 하나인 C 실버타운에 입주하셨다. 실제로 방문해 보니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목욕탕(내가 평생 가본 곳 중 최고), 헬스장, 골프연습장, 도서관, 영화관, 음악감상실, 휴게실, 다양한 병원(치과, 정형외과, 한의원, 피부과), 은행, 투자기관, 편의점, 여러 커피숍 (스타벅스, 투썸 플레이스, 커피빈이 한 층에 있다)이 단지 내에 있었고, 주 2회 청소 및 세탁 서비스까지 제공되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다만 넓은 평수임에도 불구하고 방과 화장실이 각각 하나뿐인 점은 아쉬웠다.


문제는 식사였다. 아버지는 실버타운의 20끼 의무식만 식당에서 해결하시고, 나머지는 어머니에게 식사를 준비해 달라고 고집하셨다. '그럴 거면 왜 실버타운에 입주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그 고집은 꺾지 않으셨다. 지금도 아버지는 95세의 연세로 그곳에서 생활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좋은 시설들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시면서 비싼 관리비만 내고 계시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와 아내가 실버타운 입소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아내는 2년 전부터 암 투병을 시작했지만, 항암 치료 직후 며칠을 제외하곤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서 식사 준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치료가 장기화되면서 내가 아내의 도움을 받아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많아졌고, 아내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내가 요리를 배울 수 있도록 레시피를 알려주며 연습시켰다. 나는 정해진 레시피대로는 요리를 할 수 있지만, 미각이 둔해서 맛을 제대로 내진 못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내가 혼자 살게 되면 실버타운에 들어가서 식사를 해결할 테니 걱정 마요.”


당시 우리 부부는 60대 초반이었기에 실버타운 입소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실버타운에 관심이 많았고, '공빠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시청하면서 나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채널에서는 하루라도 젊을 때 실버타운에 입소해서 보다 편안한 노후를 보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나는 2025년 2월 중순부터 실버타운 입소를 진지하게 고려하다가, 4월 초에는 가능한 한 빨리 입소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의 전세 계약 만기가 2026년 1월 말이기에, 그때를 입소 시기로 정했다. 공빠TV를 보며 입소 희망 실버타운을 몇 군데로 좁히게 되었고, 95세 아버지를 고려해 지방 소재 실버타운들은 제외했다. 그러던 중 아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이별하게 되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실버타운 입주 준비를 시작했다.


아버지가 거주 중인 C 실버타운은 높은 보증금과 관리비, 그리고 1년 이상의 대기 기간 때문에 나로서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아버지와 함께 살면 되지 않느냐"라고 했지만, 방이 하나밖에 없는 구조이고, 설령 방이 두 개였다 하더라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내도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떠나게 되면 당신이 아버지 봉양에 더 얽매일까 봐 걱정이야.” 나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아버지께 할애하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버지께 쏟고 싶은 마음은 없다.


결국 서울 종로구의 K 실버타운과 용인의 S 실버타운으로 후보지를 좁혔다. 아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캐나다를 다녀온 직후, K 실버타운을 견학하고 식사 체험까지 해보았다. 단지 내 시설로는 사우나, 헬스장, 영화관등이 있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해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세대 수가 164세대로 소규모 단지이며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창밖으로 보이는 전망이 다소 아쉬운 느낌이었다.


며칠 후에는 지인의 누님이 거주 중인 용인 S 실버타운을 방문했다. 누님의 친절한 안내로 시설을 둘러보고 식사 체험도 했다. 총 1,345세대, 11개 동 규모의 대단지로, 나무가 빽빽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쾌적했다. 단지 바로 앞에 대학병원이 있어 연결 통로를 통해 병원까지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고, 도보 10분 거리에 전철역이 있어 서울 강남까지 1시간 반 정도에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 환승 필요). 또한 단지 앞에 광역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50분 정도면 강남역까지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우나, 실내 골프연습장, 헬스장, 탁구장, 당구장, 영화관, 노래방 등 다양한 시설이 있고, 수십 개의 동호회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란다. 이곳은 분양형 실버타운이라 매매, 등기, 상속이 가능한 노인복지주택이다. 나는 전세로 입주하려 하고, 관리 회사와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소유주와 직접 계약하는 방식이다.


용인 S 실버타운 방문을 마치고 그곳으로 입주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당장 입주를 할 수 없는 이유는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 전세 계약 만료일이 내년 1월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집주인이 매매를 고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세 만료 전이라도 집이 팔리면 언제든 나가겠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지난 두 달간 다섯 차례나 집을 보여주었고, 마침내 지난주 매매 계약이 성사되었다. 잔금일은 10월 말이다.


집이 팔린 날, 나도 용인 S 실버타운 전세 매물을 보러 갔다. 최근 두 달 동안 꾸준히 매물 상황을 체크해 왔고, 매물 수는 줄었고 보증금은 평균 5천만 원 정도 올랐다. 그날 24평형과 30평형 두 곳을 보기로 예약해 둔 상태였다. 먼저 본 30평형 (방 2개, 화장실 2개)은 혼자 살기엔 너무 넓다고 느껴졌다. 아내와 함께 살 수 있다면 적당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밀려오며 울컥했지만 간신히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으로 본 24평형 (방 1개, 화장실 1개) 은 혼자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현재 매물이 단 한 개뿐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계약을 결정하고 예약금을 지불했다. 그렇게 실버타운 입주를 확정했다.

24평형 실버타운 평면도

나는 왜 이사를 하려는 걸까? 여전히 이 집과 동네 곳곳에 아내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녀가 기억에서 희미해지는 것이 두렵고, 또 한편으로는 그 모습들이 이 집 안에서만 가능한 것 같아 떠나기가 망설여지기도 한다. 아내가 하늘나라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고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걸 머리로는 확신하고 있지만, 아내의 모습이 눈에 보일 때마다 아직도 마음의 평정을 잃고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어차피 내년 1월엔 이사를 해야 하니, 결국 세 달 앞당기는 것뿐이다.


혼자 사는 삶을 시작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실버타운에서는 가장 자신 없는 식사 문제가 해결된다. 가까운 절친들은 용인이 너무 멀다며 서울의 다른 곳으로 이사하고 애용할 수 있는 주변의 식당들을 찾으라고 조언했지만, 외식도 한두 번이지 매일은 어렵지 않겠나. 서울 강남에도 식사를 제공하는 밥 주는 아파트가 있지만 전세 가격이 너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버타운에서는 식사 외에도 관심 있는 다양한 편의시설 (사우나, 헬스장, 골프연습장 등)이 있어 시간과 비용 면에서 유리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전세로 2년 계약하는 것이니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나오면 된다.


아버지는 내가 왜 멀리 용인까지 이사를 가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신다. 내 입장을 배려하기보다는 본인이 불편해질 상황을 우려하시는 듯하다. 고령의 아버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전통적인 효자는 되지 못하나 보다.)


용인 S 실버타운은 아버지 댁까지 차로 약 1시간 거리다. 서울의 K 실버타운도 아버지 댁까지 차로 30~40분 걸리므로,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30분 더 가까운 곳을 위해 좁고 관리비가 비싼 곳을 택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현재는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기면 밤중이라도 달려가지만, 이사 후에는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주일에 2회 정도 정기적으로 아버지 댁을 방문해서 일처리를 도와드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마침 최근에 KBS <추적60분>에서 '실버타운이라는 허상'이라는 제목으로 실버타운의 부실 운영 실태를 고발하는 방송이 있었다. 대부분은 임대형 실버타운의 과대광고와 부실 운영에 대한 내용이었고, 내가 계약한 용인 S 실버타운도 언급됐다. 입주자들이 단지 운영에 관여할 수 없는 구조라 관리 회사와의 법정 다툼까지 벌어졌지만, 법원은 실버타운이 일반 주택이 아닌 노인복지주택이라는 근거로 관리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나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내가 원할 때 이사 나가기 위해서 전세보증금보증보험에 가입할 예정이다. 실버타운에서의 새로운 삶이 기대된다. 입주해서는 형님, 누님들께 인사 잘 드리며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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