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머리
학교에 있으면 수업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지만, 실상은 수업과 생활지도와 학교의 모든 일들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한 각자의 업무가 있다. 생활지도와 수업은 차치하고 업무만큼은 중학교가 정말 많다. 물론 올해 내가 맡은 업무가 다른 선생님들이 맡은 업무보다 더 힘들고 더 많은 것은 결코 아니다. 올해 업무는 학기가 시작하기 전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정말 바쁘고 그 뒤론 중간중간에 체크만 하면 되는 업무라 업무 자체는 힘들다고 말할 수 없다.
아주 오래전 신규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부서 부장님께 연말 연하카드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아주 진심으로 부장님께 편지를 적었다. 일을 너무 잘하시는 부장님 밑에서 나도 정말 잘 해내고 싶었는데, 마음만큼 잘되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우리 부장님은 일도 잘하고 수업도 잘하고 아이들도 잘 다루어서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내가 신규여서 잘 모르는 것도 있었지만 그때부터 난 ‘일머리’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일 잘하는 머리가 따로 있는 걸까... 그때 난 뭔가 기획하고 추진하고 이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경력이 쌓이면 나아질 거고 더 잘할 거라 믿었지만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육아휴직과 질병휴직 등을 하고 오면 또 새로운 신규가 된 느낌으로 학교 일을 해야 했다. 선생님들끼리 하는 말,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작년에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오늘 내가 맡은 일에서 아주 작은 실수가 있었다. 난 나 혼자 잘못해서 혼자 고생하는 건 백번이어도 괜찮은데, 나의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뭔가 피해를 주거나 영향을 미치는 건 단 한 번도 싫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끔 저런 소소한 실수가 있다. 이게 학교에 큰 파장을 불러오거나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을 멈춰버리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왜 좀 더 꼼꼼히 확인하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속 자책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또 나의 ‘일머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신규 교사도 아니고 경력이 얼마이고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이런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좀 더 어른이 되면 사람이 더 완벽해지고 성숙해져서 실수도 안 하고 일도 잘하고 뭔가 다 갖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나중에 내가 좀 더 나이가 들면 그땐 지금보다 더 잘하겠지, 지금보다 낫겠지, 지금보다 잘 살고 지금보다 더 멋있는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막상 40대 중반이 넘어가는 나이가 되고 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는 걸 너무 느낀다. 생각만큼 난 성숙한 어른이 된 것도 아니고 능력이 막 뛰어나게 된 것도 아니고 일을 막 너무 잘하게 된 것도 아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는 사람 같다. 그렇다면 난 노력하지 않는 삶을 산 걸까? 대충 살아온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내 일상은 너무 바빴다.
에휴... 그냥 일머리가 좀 덜 발달했다고 표현해 볼까 보다.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눈 마주치며 수업하고 이 아이들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르치며 매일매일 보람을 느끼고 나름 뿌듯해하지 않았던가. 아직 어린 중1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주고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태도들을 알려주면서 나의 직업에 사명감을 갖지 않았던가. 육아휴직 후 복직한 올해 유독 더 그러하다. 아직 성장기인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나의 직업에 더 감사함을 느끼며 지내오지 않았던가.
일머리.
기획하고 추진하고 빈틈없이 알아서 착착 해내는 일머리는 부족해도 수업과 생활지도, 학급경영은 노력한 점을 높이 사서 ‘우수’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너무 자책하지 말자. 하루하루 충실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