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부장 패싱 사건

by 수연행

3월 입학식날, 아직 교내 메신저가 다 완성되지 않은 때에는 학교에서 단체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2월 말부터 안내사항을 올린다. 단체톡에는 총 61명. 일반적으로 학기 초 주요 업무 관련 공지사항 등의 정보 전달을 위한 톡방으로 인지하고 개인적 감정이나 소통을 위한 내용은 올리지 않는 편이다.


정신없는 입학식날 무려 7교시까지 수업을 하고 퇴근 시간 지나서야 모두 한숨을 돌리며 남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1학년부 교무실에는 몇몇 선생님들이 퇴근 준비를 하고 계셨고...


잠시 후 1,2, 3학년부장의 단톡방에 알 수 없는 톡이 올라왔다.

'단체톡에...ㅜㅜ'

이게 무슨 말이지? 바로 물어보려다가 바빠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퇴근 전 학교 단체 채팅방을 확인해 보니... 아...

1학년 1반 담임선생님께서 장문의 톡을 올린 거였다. 우리 층이 4층인데 아래층과 위층에서 2, 3학년 선배들이 쉬는 시간마다 올라와서 난리를 치고, 더더구나 1반에 너무 예쁜 여학생이 있어 그 아이를 보러 온다는 말까지... 그래서 교사가 지도를 해도 정신없는 일부 남학생들이 말을 안 듣고 도망가고 버릇없게 굴었다는 이야기에 해당 학생들의 이름까지...


개학 첫날이자 입학식 날 이런 정신없는 일들이 벌어졌으니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면서도

그런데 이거를 바로 단체 톡방에..?


그다음 든 생각은 2, 3학년부장님과 담임선생님들 입장이 곤란하시겠다는 거.

생활지도 똑바로 못해서 공개적으로 지적받은 상황인 거 아닌가? 그것도 첫날에?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또 다른 기분 나쁨이 느껴졌다.

아니, 내가 있는데 왜 말을 안 하고?

1학년 부장은 나인데 나에게 먼저 의논을 하고 방법을 구했어야지, 그럼 내가 2, 3학년부장님과 안전인권부장님께 말씀드려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텐데 왜 공개적으로 모든 선생님들에게 올리지?

그것도 첫날에?


아..

첫 학년부장을 맡은 나로서는 기분이 매우 찜찜했다. 다른 학년부장들도 학년부장 패씽하고 다이렉트로 톡방에 올린 거는 너무 했다고... 하니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떤 분은 젊은 선생님이 '절차'를 잘 몰라서 그런 걸 거라고 잘 알려주라고 하셨다.


첫날인데...

하루 만에 '부장'의 자리가 주는 부담감과 힘듦이 어떤 건지 너무도 잘 알 거 같다.

첫째, 담임선생님들의 사소한 질문에도 모두 내가 다 알고 대답해줘야 할 거 같다. 대답을 못하고 못 도와주면 내가 무능한 부장으로 보일 거 같아서 싫다.

둘째, 깊은 뜻 없이 내뱉는 담임 선생님들의 말이 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셋째, 예전에는 수업이 없는 공강시간에 교재 연구도 하고 내 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는데, 부장이 되니 공강시간에 담임들을 위해 해결해 주고 처리해줘야 하는 일도 많고 잠깐씩 하는 각종 회의도 너무 많아서 내 일을 할 시간이 없다.

넷째,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복도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예전에는 별 신경이 안 쓰였지만 지금은 너무 신경이 쓰여서 온 신경이 교무실밖으로 향하다 못해 나도 모르게 복도로 나가서 안전지도를 하고 있다.

다섯째,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든 내가 이 320명의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과 10명의 담임들을 잘 이끌고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오래전 나의 학년부장님들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5년 전 학교에서 1학년부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담임선생님들의 엄마라고 생각해...."

그러면서 담임선생님들의 생일도 일일이 다 챙겨주셨다.

또 다른 선배 선생님은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적당히 해. 안 그럼 병 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학년부장이 되고 싶은가?

나는 '엄마'는 좀 아닌 거 같고...

'도와주는 선배교사' 정도?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1학년 담임들 모두 똘똘 뭉쳐 화기애애한 교무실을 만들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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