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신데렐라 신드롬과 동화 <신데렐라>
로아야,
그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동화책도 많이 읽었고 할아버지가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었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로아에게 읽어주지 않거나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단다. 여기에는 어린이들에게 많이 읽히는 전래동화도 포함되어 있는데, 아무리 재미나고 인기 있는 동화라도 로아가 성장하며 살아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가치관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야. 남녀의 성차별을 미화하는 스토리가 대표적인 예이지.
<신데렐라> 이야기는 할아버지도 어려서부터 듣고 읽고 자랐던 성차별을 미화하는 이야기란다. 그런데, 궁금하지? 왜 이런 이야기를 <스토리’n 클래식>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로 선택했는지. 한편으로는, 로아가 자라고 있는 이 시대에도 소위 ‘신데렐라 신드롬’이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해서란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작곡가인 로시니의 유쾌한 오페라를 통해 당당한 신데렐라의 모습도 보고 음악적 즐거움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지.
우선, ‘신데렐라 신드롬’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배경과 능력으로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설 수 없을 때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줄 왕자님에게 보호받고 의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라고 정의되고 있구나. 즉, 자립의지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 삶의 변화와 세속적인 욕구 충족을 추구하는 심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존 심리를 동화 속 인물인 신데렐라 신드롬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 신드롬에 빠지는 사람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점을 은연중 말해준단다. 요즈음 여성은 남성 못지않게, 아니, 많은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발휘하고 있지. 그래서인지 남녀의 성차별 인식은 대체적으로 과거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상당 부분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서 안타깝단다.
요즈음 신데렐라 신드롬에 남녀 구분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이는데,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듯 보인단다. 주어진 사회적 환경이 벅차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 본인의 의지와 노력, 뜻과는 무관하게 사람들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외부적인 것을 통해 현실을 뛰어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단다. 즉, 본인의 노력 없이도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단번에 뛰어넘어 ‘팔자를 고쳐보자’하는 식의 태도를 갖게 돼. 신데렐라 신드롬은 이러한 잠재된 욕망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지. 할아버지가 자라온 세대에 비해 요즈음의 사회 환경은 단순히 개인의 능력과 의지, 노력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란다.
신데렐라 동화에는 신데렐라 신드롬의 두 양상이 잘 담겨 있단다. 신데렐라 신드롬의 바탕이 되는 신데렐라류의 이야기는 여러 나라에서 민담으로 존재해 왔어. 이러한 민담을 가장 먼저 스토리로 정리한 것이 독일의 그림(Grimme) 형제와 프랑스의 샤를 페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는 샤를 페로의 동화에 바탕을 둔 것이야. 동화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는 따로 적지 않겠다.
대신, 신데렐라 신드롬 관점에서 두 이야기를 살펴보자꾸나. 두 이야기에서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왕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는’ 인물로, 심성은 착하지만 대체로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아가씨들로 보인단다. 그림형제는 작가적 창작을 담아내기보다는 민담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하였고, 페로는 민담 내용을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만들다 보니 두 이야기에서 세부적인 내용이나 강조점은 다르단다. 신데렐라의 성격 묘사가 다른 이유도 그래서이지.
그림 형제가 정리한 신데렐라 이야기 <아센푸텔>에서 신데렐라는 대체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물론 자세히 보면 가끔은 적극적인 태도가 나타나기도 해. 새엄마와 의붓언니들의 방해에도 무도회에 가기 위한 행동을 예로 들어보자. 무도회에 데려가 달라는 신데렐라의 청을 못된 언니들이 핀잔을 주며 오히려 신데렐라가 감당하지 못할 일을 시키고 떠나고 그들이 떠나자마자, 신데렐라는 죽은 친엄마의 무덤으로 달려가서는 개암나무에게 간절하게 애원한단다. “작은 나무야, 제발 좀 네 몸을 흔들어서 금과 은을 내게 떨어 뜨려 줘.” 이러한 애원에 새와 숲 속 동물들이 신데렐라에게 맡겨진 일을 대신해 주고 멋진 옷과 마차를 준비해 줘서 무도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되지.
힘없고 달리 방법이 없는 신데렐라의 작은 행동이었지만, 간절한 소망이 자연을 감동시켰던 것으로, 자연에 의존하던 삶을 살았던 옛 시대의 민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지. 그런데 이 환상 요소를 제거하면 신데렐라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결단이나 의지, 행동으로 바꾸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물인 점은 분명하구나.
샤를 페로의 동화에서는 친절과 인내, 겸손, 우아함이란 미덕에 초점을 맞추어 신데렐라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도덕을 가르치는 교훈의 성격이 강조되고 있어. 무도회에 갈 수 있게 된 것도 감동한 자연 덕분이 아니라, 신데렐라의 미덕에 감화된 요정 대모(Godmother)의 도움으로 가능하게 되지. 자신도 무도회에 데려가 달라고 청했지만, 새엄마와 의붓언니들로부터 핀잔만 듣게 되자 신데렐라는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기만 할 뿐이었어. 이때 대모가 나타나 왜 울고 있는지 묻자, 신데렐라는 무도회에 가고 싶단 뜻을 밝히지. 대모는 한 가지 전제를 달아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해.
“무도회에 가고 싶단 말이지?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네가 착한 아가씨이어야 해. 그러면 내가 갈 수 있도록 해주마.”
페로는 이야기 자체만으로 부족했던지, 이야기 말미에 젊은 여성들이 지녀야 할 미덕을 강조하고 그 미덕은 대모나 대부의 가르침을 통해 길러진다는 교훈을 덧붙이고 있어.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언제든 경외의 대상으로 흔하지 않은 보물입니다. 우아함이란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미덕으로 아름다움보다도 더 가치 있습니다. 신데렐라가 여왕처럼 행동하도록 가르치며 대모가 신데렐라에게 준 것이 바로 우아함입니다. 그러니 젊은 여성들이여,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면 아름다움보다 우아함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지적인 능력, 용기, 가문, 올바른 판단을 소유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커다란 장점이다. 이들 미덕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고, 이들 미덕을 갖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이것도 대부나 대모의 역할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림형제의 스토리에 비해 페로의 교훈에 맞춘 이야기가 신데렐라 신드롬에 더욱 들어맞지. 그런데 두 이야기에서 신데렐라의 수동적인 태도는 단순히 그녀의 성격 탓만은 아니란다. 오히려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와 신분제도, 여성에 강요되던 미덕으로서의 도덕률과 같은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가 더 큰 요인이었어. 페로의 신데렐라가 나온 1700년대 초 프랑스나, 그림형제의 신데렐라가 나온 1800년대 독일 모두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 사회였단다. 이 시대에 여성들은 교육을 받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고, 사회진출이나 신분 상승의 기회 역시 없었어. 결국, 신분이 높은 사람과의 결혼만이 유일한 수단이었고, 민담이나 옛 동화에 백마 탄 왕자를 꿈꾸는 신데렐라류의 이야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지.
로아야,
로아가 살아갈 미래 세계도 녹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단다. 지금까지 인간이 해오던 많은 일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는 현실이 되어가고,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성취해 낼 공간이 적어지는 환경과 조건에서 살아갈 것 같구나. 이러한 환경에 처하면 사람들은 신데렐라처럼 자신의 운명을 타인에게 혹은 미래의 기계문명에 의탁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갖게 될 것이겠지.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주어진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단다.
그림형제와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앞으로 로아가 살아갈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삶의 조건을 온전히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다음에 이어질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 이야기는 이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자아의지를 갖고 살아가야 할지 제시해 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