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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아야,
얼마 전 예술의 전당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의 전시회장에 가족이 함께 다녀온 일 생각나지? 빛과 색을 이용한 환상적인 세계로 초대하는 전시회였지. 솔직히 고백하면 할아버지는 그 전시가 어렵게 느껴졌단다. 빛의 혼합과 색 간섭 현상에 담긴 과학적 이해 부족이 원인이었던 것 같아. 그런데, 전시장에서 로아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깨달은 점이 있구나. 예술 작품은 이론과 논리 못지않게 직관적으로 접근하고 몸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어.
빛의 삼원색인 빨강과 초록, 파란색으로 연이어진 ‘색 포화방’ 전시 공간에서였지. 원색 세상에 빠져든 로아는 3개의 색 공간사이를 달리기 하듯 끊임없이 돌고 돌았지. 색에 의해 감각이 흠뻑 적셔진 상태를 의미하는 ‘색 포화.’ 로아 스스로가 색 포화가 되어 색 공간 사이를 뛰어다닌 것이란 생각이 들었구나.
로아의 몸으로의 색과 빛 경험은 ‘색 간섭 환경’ 공간에서도 일어나더구나. 이곳에서는 빛과 색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다양한 조합을 통해 화려한 패턴을 만들어 내는 곳이었지. 할아버지는 그 공간에서 어지럼으로 힘들었지만, 로아는 빛과 색이 만들어 내는 판타지 세상 속으로 빨려간 모습이더구나. 움직임에 따라 빛과 색의 모양과 방향이 달라지는 모습 속에 로아는 이번에도 스스로 예술 행위자가 되더구나.
할아버지는 빛과 색을 고정된 대상이나 개념으로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로아는 몸과 감각을 활용한 살아있는 경험으로 ‘체험’했던 것이야. 로아의 몸으로의 ‘체험’은 디에즈가 예술을 통해 의도했던 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점에서 로아는 할아버지보다 디에즈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간 셈이지.
전시회에서 로아가 보여준 몸으로의 체험과 몰입, 로아가 성장하면서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단다. 디지털 시대에 갖춰야 할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야.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제공해 주는 효율성과 편리함, 오락거리로 우리 삶이 나아진 측면도 분명히 있어. 하지만 어른이나 아이 가리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기기에의 몰입이 과도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란다.
요즈음 실내외를 막론하고, 심지어는 걸어가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가 않지.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거나 길을 걷다 멈춰 서서 길섶 야생화에 눈길을 주는 모습은 오히려 낯선 풍경이 되었어. 평소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더 좋아하고 성격에도 맞는다고 생각하는 이 할아버지도 자신도 모르게 때로는 디지털화면 속으로 빨려들 때가 있단다. 그럴 때마다 디지털의 매혹과 유혹이 정말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돼.
아직은 자제력을 온전히 갖추지 못하고 디지털 화면에 쉽게 빠져드는 로아와 같은 어린이들에게는 디지털에의 지나친 의존은 더욱 우려되는구나. 로아가 전시회에서 보여준 신체 감각을 통한 몰입과 상상력을 통한 창의성 발달에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야.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 스크린에 의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신체를 통한 직접적인 경험과 체험은 줄어들 수밖에 없단다. 어린이들의 몸을 통한 활동은 오감을 자극하여 감각을 발달시키고 이를 통해 신체발달뿐만 아니라 인지기능이 발달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야. 더불어, 어린이들이 주변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건강한 관계 맺기를 배우는 것도 오감을 동원한 신체활동을 통해서지.
디지털 기기에 몰입하게 되면 창의적인 사고 발달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단다. 게임을 비롯하여 아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부분의 어플은 미리 설계된 정형화된 구성품이어서 아이들은 주어진 경로대로만 따라가게 되어있어. 디지털 세상과의 수동적인 몰입은 스스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게 되는 거야. 인공지능 시대에 자칫 놓치거나 소홀하기 쉬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건강한 관계 유지와 자연에 대한 존중심, 창의적 사고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단다.
디에즈 전시장에서 로아가 몸을 이용해서 빛과 색의 환상 세상으로 들어가 체험하고 일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떠올렸던 것이 스토리 음악이었어. 스토리 음악이란 동화처럼 글이나 그림이 아닌 음악으로 표현하는 스토리를 의미해. 디에즈의 빛과 색채 예술처럼, 음악, 특히 스토리 음악도 어린이들의 오감을 자극하여 상상력과 호기심, 환상의 세계로 안내해 줄 수 있기 때문이지.
로아가 빛과 색상 속에 빠져들어 환상 세계를 경험하듯, 음악은 ‘이야기’ 요소 없이 사운드만으로도 로아의 정서를 자극하여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고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준단다. 이를 통해 로아가 주인공이 되는 자신만의 ‘스토리’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그 스토리 세계 속 주인공으로서 로아는 음악에 맞춰 감정도 표현하고 몸의 움직임과 동작도 동원하겠지.
디에즈 전시와 스토리 음악의 연관 짓기 때문이었을까? 전시실에서 로비로 나오자 할아버지의 눈에 쏙 들어온 프로그램도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 음악에 대한 것이었단다. “잭과 클래식 음악나무” 프로그램에서는 <잭과 콩나무>란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음악으로 생각해 보고 몸으로 표현해 보는 내용이었고, “움직이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은 움직임과 그림 그리기로 음악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내용이었어.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 음악에 딱 적합한 프로그램이어서 로아도 들으면 좋겠다 싶었지. 아, 그런데 만 6세부터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더구나. 6세가 되려면? 로아는 3년 하고도 몇 개월이 더 필요해.
할아버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즈음 로아에게 보내고 있는 ‘스토리’n 클래식’도 크게 보면 스토리 음악으로 볼 수 있겠구나. 이번에는 음악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말 그대로 스토리 음악을 두 번에 걸쳐서 들려주려고 해. 첫 번째 이야기는 프로코피에브의 <피터와 늑대>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이야. 이 두 음악은 로아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스토리텔링을 곁들여 여러 번 들었던 것이어서 낯설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