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 10. 16.
서울에 사는 사랑하는 누나의 집에 빌붙어 하룻밤을 보냈다. 어두운 방 안에 누워 한참을 뒤척거리다 겨우 잠이 들었지만 알람을 맞춰 놨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눈이 떠졌다.
‘이제 오늘이구나.’
몽롱한 정신으로 자기 전에 미리 싸놓았던 짐들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다. 어젯밤 아름다운 누나가 “내일 아침 굶지 말고 꼭 먹고 가.”라고 신신당부하며 싸 놓은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잼을 어찌나 덕지덕지 발라 놨는지 달콤함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나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누나의 사랑과 더불어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는 집을 조용히 나섰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 나의 머리는 단 한 가지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생각은 머릿속을 꽉 채우다 못 해 나의 몸 밖으로 조금씩 밀려 나와 입술로 토해졌다.
“아……. 가기 싫다.”
버스에서 내려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를 타러 가는 발걸음이 어찌 이리도 무거울 수 있는지. 누군가의 강요로 인해 가기 싫은 여행을 억지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분명 나의 의지로 여행을 가고 싶어 계획도 했고, 한 달 가까이 준비까지 한 여행인데 왜 이렇게 떠나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지.
나는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다시 순천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 “깜짝 놀랐지?”라며 부모님 앞에 나타나거나, 우리 집 침대 위에 누워 있다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기쁜 마음으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아 식빵 꿈.”이라고 외치면서 배시시 웃고 싶었다.
그러나 실상은 탑승 게이트를 향해 터벅터벅 걷고 있는 나.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거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심정으로 마음을 추스르고도 싶었다. 허나, 머리에서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나의 옆구리에 매달린 채 달랑거리는 삿갓을 한 손으로 꼬옥 쥐고서 불안감과 초조함 덕분에 땀으로 흥건히 젖어 버린 반대편 손바닥을 바짓가랑이 위에 스윽 한 번 닦아 준 뒤, 떨리는 몸을 이끌고 비행기로 향했다.
장기 여행을 떠나기 전, 처음 시작에 이 정도의 불안감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버린다면, 나를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곳에 나 홀로 덩그러니 떨어져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 언어에 대한 걱정과 주변 환경에 대한 걱정.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걱정 등등 이런저런 불안감이 가장 큰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허나 모든 일에는 처음 시작이 가장 어려운 법. 무슨 일이든 가장 어려운 처음이 지나고 두 번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아주 쉬운 일이 되는 거니까.
나의 모든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떠한 무엇이 되어 있을까? 분명 지금의 나와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길 바라 본다. 나의 모든 여행이 끝마쳐진 마지막 날, 지금의 나와 그날의 내가 서로 마주 앉아 바라보는 것은 무엇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조금 이른 나이부터 해외봉사를 다녔고 항상 영어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며 자라 왔지만, 막상 한국으로 돌아오면 작심삼일이 전부. 언제나 지켜진 적 없던 나 자신과의 약속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입국한 순간부터 나는 이유 없이 항상 바빴다. 영어 단어장은 사 놓고 책장에 모셔 놓기 일쑤. SNS는 인맥 관리에 필수품. 자막 없이 보는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어른들은 항상 나에게 “너는 머리는 좋은데 왜 공부를 하지 않니? 공부를 조금만 하면 금방 배울 텐데.”라고 말씀하셨지만, 나중에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꼭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는 아빠를 닮아서 머리가 좋지 않으니까,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해야 한다.”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나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히스로공항 입국 심사대 앞에 서서 줄어드는 줄을 바라보며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오늘의 나에게 사과했고, 과거의 나태함을 즐겼던 나 자신에게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 후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여기 왜 왔어?”
“여행이요.”
“다음에 어디 가?”
“프랑스요.”
“뭐 타고 가?”
“기차요.”
“직업이 뭐야?”
“학생이요.”
여권과 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비교하던 영국 아저씨는 스탬프를 들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Welcome.”
나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건네는 영국 신사의 조용한 환영 인사는 수많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의 부담감을 약간은 덜어 준 듯했다.
입국 절차를 깔끔하게 마치고 수하물이 나오기 전 죽어 있던 나의 핸드폰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 유럽에서 사용이 가능한 유심 칩으로 바꿔 주었다. 유심 칩을 갈아 끼우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카톡들. 하나하나 답장을 해 주며 편안한 마음을 느끼는 순간 사건은 일어났다.
‘뭐지?’
갑자기 메시지의 전송이 멈추고 인터넷이 더는 연결되지 않았다. 사용도 별로 하지 않았고 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도무지 인터넷이 끊어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설명서를 봐도 아무것도 모르겠고 주변에 있는 와이파이를 잡으려 시도해 봤지만, 연결이 가능한 와이파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멘붕’ 나의 목덜미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식은땀들은 가느다란 흐름에서 시작해 등허리를 타고 넘으며 거대한 물줄기로 변했고, 어느덧 흐르고 흘러 나의 엉덩이골까지 축축하게 적시며 팬티 위로 샘솟았다.
여행을 시작한 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여행 초보자인 나로서는 뭘 어찌해야 할지 아무런 감조차 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새로운 유심을 다시 사야 하나? 그런데 뭐가 뭔지 모르니 아무거나 살 수도 없다. 답도 안 나오는 설명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핸드폰을 계속 바라봤으나 뚜렷하게 떠오르는 방법도 없었다. 멍하니 자리에 주저앉아 이대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번뜩이며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기억.
순천에서 서울로 출발하기 전, 이제 막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를 만났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던 그녀는 자신의 유심카드에 데이터가 남아 있다며 나에게 그 카드를 건넸고 나의 여행에 무사 안녕을 빌어 주었다. 나는 기억을 거슬러 오르며 가방을 뒤져 그녀가 주고 간 유심카드를 찾았고 나의 유심카드와 교체를 했다. 그러자 인터넷은 언제 멈췄었냐는 듯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다시금 검색을 허락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고맙다. 순천에 사는 이소라 씨. 이때의 안도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것 외에도 여러 번의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앞으로 남아 있는 여정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사건의 축에도 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생각대로 되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고, 세상에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만큼 재밌는 일도 없다.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낯선 느낌의 공간과 사람들. 나의 가슴으로 낯설게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가 나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들을 한 꺼풀 벗겨 내고 설렘으로 물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동양인이라고는 나 혼자. 영국 런던. ‘이곳에 나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내가 아는 사람 또한 단 한 명도 없다.’라는 사실이 무섭다기보다는 묘한 쾌감으로 느껴졌다.
패딩턴 역에 도착한 후 나의 똥구멍을 간질이는 쾌감을 뒤로하고 호스텔로 이동하기 위해 언더그라운드를 찾아 길을 나섰고, 구글맵에 이끌리어 역 밖으로 나온 나는 그곳에서 진정한 런던을 마주했다.
손님들을 태우기 위해 길가를 가득 메우고 있는 블랙캡. 그 뒤로 보이는 높은 현대식 건물들과는 대조적으로 고전미를 뽐내고 있는 택시들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서양의 문화적인 부분 중에서 가장 부러운 것을 꼽자면, 옛 건물들에 대한 보존이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매우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옛날 건물들은 모조리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건물만을 고집하는 것에 무척 마음이 아팠다. 꼭 옛날 건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은 지 20~30년 정도 지난 건물들을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무너뜨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건물은 건물 자체에도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담겨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베트남만 비교하더라도 하노이에는 올드타운이 있는데, 그곳은 관광의 중심지인 만큼 땅값이 무척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을 둘러보면 건물들은 하나같이 오래되고 층높이가 낮은 건물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진작 그곳의 건물들을 허물어뜨리고 더 높고 멋있는 건물들을 지었겠지만, 이들은 옛 건물들을 지키기 위해 법적으로 제한을 두어 그 건물들을 허물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옛것을 지킬 수 있는 것. 옛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 무언가를 기억 속에서 잊지 않는 방법은 잊히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내려 호스텔로 향했다. 새벽 늦게 도착해서 그런지 어둠이 낮게 깔린 길거리는 조용했고 사람들 또한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차들도 그리 많이 다니지 않았다. 쌀쌀한 바람과 거리의 썰렁한 분위기 탓에 처음 도착해 느꼈던 설렘과 주변을 둘러보고 싶다는 호기심은 두려움에 밀려 사그라졌고, 일단은 숙소에 들어가 포근하고 안락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나는 호스텔을 향해 발걸음을 더욱더 빠르게 재촉했다.
구글맵에 이끌리어 골목들을 누비다 겨우 발견한 오늘의 숙소. 런던에서의 첫 숙소는 으슥한 골목길 언저리에 있는. 펍과 호스텔을 같이 운영하는 조그만 상가 건물이었다.
“딸랑.”
평일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문을 밀고 들어간 펍에는 한 명의 점원만 홀로 남아 텅 비어 있는 공간을 지키고 있었고, 그 점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가운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Mr. Park? 맞지? 기다리고 있었어!”
어디서 왔니? 로 시작해 만나서 반가워. 로 끝나는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나는 그 친구를 따라 방으로 올라갔다. 삐걱대는 나무 계단을 돌고 돌아 4개나 되는 문을 지나고서야 나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방에는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만 간간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조심 침대 곁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금 펍으로 내려왔다. 비행기에서 먹은 기내식을 끝으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허기도 달랠 겸 간단한 음식을 주문하려 했지만, 주방은 이미 마감되어 음식을 주문할 수 없었고 오직 맥주만 마실 수 있다고 말하는 점원.
“어떤 맥주가 가장 맛있어?”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전부 다.”라고 말하고서 어깨를 으쓱하며 에일 맥주를 추천
해 주었고, 선불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배시시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10파운드야.”
아……. 맥주 한 잔에 15,000원이라니. 영국에서의 첫 결제는 10파운드짜리 씁쓸한 에일 맥주였다. 나의 목구멍으로 부어지는 쓰디쓴 맥주는 텅 비어 있던 위장 벽을 세차게 긁으며 나의 배 속을 조금씩 채웠고, 입안을 굴러다니는 맥주의 알싸함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여정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지를 예고해 주는 것만 같았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는 한국에서 누나가 친히 만들어 준 샌드위치를 씹고 있었지만, 대략 20시간이 흐른 지금은 런던의 골목길 한 귀퉁이에 있는 펍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다니. 나는 단 몇 번의 벌컥거림 만에 바닥을 드러낸 맥주잔을 테이블에 홀로 남겨 두고서 방으로 향했다. 나무 계단을 오르며 4개의 문을 지날 때까지도 은근히 혀끝에서 맴돌고 있는 씁쓸한 홉 향들을 조심스레 침대에 눕히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여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