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수학이 좋았던 아이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숫자들 사이의 관계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19단을 외우면서 숫자에 더 강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는 포털 사이트의 아이디를 만들 때에도 19단을 이용해서 만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13 곱하기 18이 234인 것을 이용해서 아이디를 1318234 와 같은 식으로 만들었었다. 수학을 더 공부하게 되면서 소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도형 문제를 풀 때면 어떤 각과 어떤 각이 같은지를 찾아내며 특별한 성질들을 뽑아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매년 자신의 꿈을 발표할 때면 늘 수학자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수학 학원에 다니면서 수학을 더 깊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에는 단지 숫자가 신기해서, 도형의 성질들이 신기해서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이후에는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며, 어렵게만 느껴졌던 문제들이 내가 생각한대로 풀리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고 나니 문제만 봐도 대충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는 것을 느끼며 수학을 더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수학을 깊게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수학(과 과학)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영재고에도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영재고에 입학하려면 수학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 역시 필요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과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과학 공부를 시작해보니, 수학과는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물리가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수학은 자연스럽게 식 정리를 하고, 구해야 되는 값들을 구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졌는데, 과학은 문제를 푸는 중간중간에 뭔가를 자꾸 생각해야 했다. 도르래에 달린 물체가 어떤 식으로 힘을 받고, 물체가 어떻게 이동하고, 식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공부를 하면서 물리가 점점 더 싫어졌다. 한 문제 한 문제를 볼때마다 ‘내가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문제 상황에서 마찰력은 왜 이 쪽 방향으로 작용하는지, 물체가 왜 이 이렇게 움직이는지 등에 대해서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렇게 되나보다’ 하며 식과 개념에 내 생각을 끼워 맞춰 나갔고, 어찌어찌 공부는 해 나갔지만 늘 찝찝했고,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물리보다는 화학이 더 재미있었다. 화학이 수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물질의 반응 속도를 수식으로 계산하는 과정도 적지 않게 있었고, 입체수(SN)라는 것을 계산하면 이 분자가 사각뿔 구조인지, 평면 삼각형 구조인지, 사이 각도는 어느정도 되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과학과목에 대한 공부를 이어나갔고, 중학교 2학년 때 영재고에 합격하게 되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겠지만, 중학교 때는 놀기도 잘 놀고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하는 학생이 인기가 많다.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멋있는 사람, 게으른 천재로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에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 점심 시간에 열심히 놀았고, 시험기간에는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금세 밖으로 놀러 나가기도 하며,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수학과 과학은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덕에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고, 그래서 나는 조금씩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워낙 많은 선행학습을 한 탓이었는지, 입학 직전에 본 진단고사에서도 괜찮은 점수를 받았고, 환경은 바뀌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여전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재학교에 입학한 뒤부터는 사춘기가 찾아왔다. 입학 당시 내가 남들보다 한 살 어렸지만 그래도 같은 학년으로 다니게 되었는데,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못마땅해하는 동기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참 많이도 싸우고 다녔다. 또한 중학교 때까지 PC방을 거의 가지 못했다가 영재고 합격 이후 ‘리그오브레전드’ 라는 게임에 빠지게 되면서 공부는 정말 최소한의 양만큼만 했다. 일과가 끝난 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사감선생님 몰래 어떻게 떠들지를 고민했고, 저녁을 빨리 먹고 축구를 진탕 하다가 야간자율학습시간 5시간 동안 통째로 자기도 했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시험기간이 되어 같이 떠들던 반 친구들이 대부분 공부를 시작한다 싶으면 그제서야 나도 공부를 시작했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처럼 공부에 큰 공을 들이지 않아도 난 여전히 공부를 잘 하는 편에 속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 1학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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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부 김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