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단어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어떤 이는 꿈이란 자신이 미래에 갖고 싶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이는 자신이 꼭 이루고 싶은 일을 꿈으로 삼는다. 어떠한 해석이든, 꿈을 정하는 것은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한다는 점에서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적잖이 부담되는 일이라는 것을 독자 여러분들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꿈’ 그 자체는 희망찬 단어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의 의미와는 반대로 많은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있다. 실제로 내가 학창 시절 가장 싫어했던 숙제 중 하나는 생활기록부에 넣을 진로 희망을 써오는 것이었다. 이처럼 어른들,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학생들에게 꿈에 대해 자주 묻는다. 꿈이 없는 학생들은 꿈을 갖기를 요구받고 있다.
그래도 이러한 문화 덕분인지, 우리는 주변에서 다양한 진로 관련 조언들을 접할 수가 있다. 여러 조언들을 듣고 읽다 보면, 종종 등장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정하는 꿈이 평생 유지될 필요는 없으며 나중에 바뀌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보고 여러분은 방금 어떤 생각을 떠올렸는가? 혹자는 ‘거 속편한 소리하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중학생일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꿈이 바뀌게 되면 남들의 눈에 내가 줏대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리 아버지는 자동차 회사에 다니신다. 어릴 적부터 모터쇼에 자주 가볼 수 있었으며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자동차와 친숙했다. 아버지는 그림 실력 또한 출중하셔서 여가 시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리셨다. 어느 날에는 아버지께서 연필로 자동차 그림을 슥슥 그리고 계셨는데, 나는 옆에서 그림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무언가에 홀린 듯 자동차 그리기에 빠져들었다. 내가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은 항상 A4 용지를 꺼내서 자동차를 스케치하는 일이었다.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니, 그림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남들이 스케치한 자동차 그림들을 찾아보고, 그림의 구도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해봤으며, 자동차 디자인 카페에 가입해 내가 스케치한 그림을 업로드해보기도 했다(당시의 내겐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동차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계속해서 자동차를 열심히 스케치했다.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려면 디자인을 공부해야 하며,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는 예술고등학교임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동안 예술고등학교에 지원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으로부터 과학고등학교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주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급선회하는 것이 두려웠기에, 이내 그러한 생각을 관두었다. 마치 예정된 수순인 양 과학고등학교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과학고 자기소개서엔 꿈에 관해 물어보는 문항이 있었다. 어떤 꿈을 갖고 있다고 써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첫째,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라고 쓰기. 가장 갖고 싶던 직업임에는 분명했지만, 과학고의 설립 취지와는 영 맞지 않아 보였다. 나중에 면접관께서 “꿈이 자동차 디자이너인데 왜 예술고등학교가 아니라 과학고등학교에 지원했어요?”라고 물어보면 말문이 막혔을 것이다. 둘째, 과학고라는 이름에 맞게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쓰기. 과학고 지원자의 진로로서는 적합했지만, 여태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과학자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때까지 내 머릿속 과학자의 이미지는 막연하게 플라스크를 들고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일 뿐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과학고를 나오면 과학 말고도 공학이라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과, 자동차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을 자동차 공학자라고 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학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자동차 디자인’과 ‘공학’ 두 가지를 합쳐 ‘디자인 역량을 갖춘 자동차 공학자’를 꿈으로 정하였다. 사실 이 또한 진짜 희망하는 진로는 아니었다. 자동차의 구성 요소나 작동 원리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자동차를 그리는 일에 대한 흥미가 더욱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스케치는 그저 취미일 뿐이며, 나는 자동차 공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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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부 김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