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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orzi Mar 04. 2020

일종의 강박증

카페에 간다

일을 마치고 친구 광호가 하는 카페에 간다.

광호 부모님의 건물 1층에서 하는 카페인데, 광호는 6시쯤 퇴근을 하고 카페가 문을 닫을때 까지 부모님이 봐주시는 곳이다. 난 7시쯤 가기 때문에 광호를 볼 일은 없고, 항상 어머니가 나를 맞아주신다. 능글맞게 인사를 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커피가 만들어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어머니는 커피머신을 바라보고, 나는 어머니의 등을 본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오는 곳이다 보니 대화내용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항상 앓는 소리로 대화가 끝이나고, 난 어머니께 살짝 웃어보이며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읽는 책은 한권 뿐이지만, 테이블 위는 항상 너저분하다.

일종의 강박증 같은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강박증 비스무리한것이 나를 정의하고 가두는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형광펜과 0.05미리의 얇은펜이 있어야하며,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내 잡생각을 적는 노트가 있어야 하며, 1년전 쯤 내 나름대로 비싸게 주고 산 마샬 헤드폰이 있어야 하며, 책을 읽을 때 항상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야한다. 새로운 노래를 들으면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일종의 의식같은것이 끝나면 나는 비로소 책을 읽을 준비가 다 되었음을 느낀다. 마치 페널티킥을 차기전 공에 입을 맞추는 축구선수처럼.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는다.

원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가져왔지만, 차 뒷자석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밀란 쿤데라가 오늘은 나를 좀 봐달라고 말하는듯 했다. 이런 부탁은 거절하기가 참 힘들다. 퐁트뱅과 뱅상의 대화를 읽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담배가 보인다. 바람이 꽤 강한 날이라 벗어놓은 코트를 다시 입고 카페 뒤 정원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는 3분 남짓한 시간이 좋다. 하늘을 보게 되고, 아무 생각 없이 스쳐지났던 풍경을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다. 건물들의 모서리, 교회의 붉은 네온 십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가게의 천막, 심지어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스피커의 울림까지. 모두 다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때만큼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된 것같고 밀란 쿤데라와도 자신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같은, 일종의 자유로운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이다. 3분간의 짧은 강박증.


담배를 머금고 길게 내뱉는다.

검은 도화지에 조그맣게 채색이 되지 않은 하얀 점 같은 별을 본다. 칠흑 속에 있어서 더 고귀해보이고, 성스러워보인다. 달이 보이지 않아서 그 별이 오늘따라 유독 더 빛난다. 이럴 때만큼은 별자리를 공부해볼까 하지만, 이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싶다. 결국 내가 죽기전까지 내가 이런 사람이라면, 저 별은 언제든 나의 강박속속에 있을텐데. 그저 나에게 좋은 담배친구이자, 가끔은 달보다 빛나는 별로 기억되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별을 보는 내 눈이 초점을 잃어감을 느꼈을때, 헤드폰 너머 모리셰이의 교성에 가까운 샤우팅이 날 깨운다. 춥다. 이제 들어가야지.


The Smiths가 Beach Boys로 바뀔때

재떨이 대신 놓여있는 종이컵에 담배를 꽂아놓는다. 타는 부분이 물에 닿도록 조심스레 꽂는다. 그러자 불발된 폭죽처럼 푸슉 소리를 내며 힘없이 나의 카멜은 3분의 소명을 다하고 꺼진다. 정원의 밤이라, 달이 없어 더욱 어두워 수묵화 같던 소나무 두 그루의 날카로운 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도 인사한다. 

안녕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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