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리뷰
최근 한국 민주주의에는 큰 사건이 있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역대 최대 총선 투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또 동시에 거대 여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집권 후반기에 거대 여당이 탄생한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보여주는 모습들을 확실히 유동적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독특하고 유동적인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연구한 책이다. 물론 현재의 상황과 조금은 동 떨어져 있는 분석들도 존재한다. 확실히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 구조는 2017년 탄핵을 기준으로 크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분석 중 몇 가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오늘은 그 유효한 몇 가지 분석들과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책의 부제는 헬조선의 기원으로 바뀌어도 무방할 정도로 현재 한국 사회의 거시적 문제의 기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저자는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보이는 문제점들의 분석을 통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을 밝힌다.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현재의 민주주의를 보수적 민주주의로 정의하며 해방공간에서부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 민주화 이후 정부들까지 현재의 민주주의를 형성한 변수들을 논한다. 책에서 나타나는 최창집 교수의 핵심 주제와 문제의 해결책을 보면 그가 왜 세간에서 ‘정당 주의자’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보수적 민주주의 형성의 가장 큰 요인을 역사적 조건들에 의한 ‘대표되지 않는 정당 체계’에서 찾는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해결책은 ‘정치’, 즉 대표되는 대중 정당으로의 방향 전환이다.
한국 보수적 민주주의 기원 분석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2가지이다. 우선 박정희 정부가 민주주의에 끼친 영향에 관한 논의이다. 전통적으로 많은 학자들은 박정희 정부를 제3세계 독재자 정도로만 취급하였다. 혹은 박정희 정부가 민주주의에 끼친 악영향-군사주의의 주입, 권위주의 문화 재생산, 관료제의 폐해 등만을 언급했다, 그러나 저자는 박정희 정부를 산업화를 달성하였으며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 가능한 체제로 제도화하는 것에 실패하여 민주주의로의 탈출 경로를 열었다고 평가한다. 두 번째로 역대 민주정부에 대한 냉철한 평가이다. 저자는 민주 정부들을 관통하는, 혹은 민주 정부들이 극복하지 못한 보수 헤게모니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1987년 이후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절차적 이행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랐다. 재벌들과 거대화된 언론으로 대표되는 보수 헤게모니는 해체되지 않았으며 신자유주의와 성장주의의 결합으로 더욱 강력해졌다. 이로 인하여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여기에 소위 민주 정부들의 실패는 실망감을 더 가중시켰다. 정치의 실패는 사법과 언론에 의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를 야기했고 이는 또 다른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정치의 부활, 대중 정당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외부적 제도에 의한 정치 개혁이 아닌 정치 내부의 원리에 의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주장한다. 대중정당으로의 이행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진정한 균열에 따른 정당들의 재편을 이룰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지역주의 같은 동원된 갈등이 아닌 실질적인 사회 경제적 갈등에 대한 주목이 가능하며, 보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화의 길이 열린다. 저자의 분석과 해결 방안에 대하여 논해볼 문제는 크게 4가지이다.
1. 박정희 정부 분석
저자는 박정희 정부를 첫 번째 근대적 정부라고 규정하며 ’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을 치르고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시간 내에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고 한다. 이러한 분석에서 크게 2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박정희 정부의 근대성 문제이다. ‘박정희 정부가 과연 근대화를 이룩했는지, 근대 정부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대를 좁은 의미로서 산업화로 이해한다면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근대는 산업화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통상적으로 근대화의 3대 프로젝트는 국가 만들기, 산업화, 민주화이다. 임혁백 교수는 이러한 점에서 박정희는 압축적 산업화의 기적을 만들었으나 그것은 민주화의 지연이라는 희생과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가능하였고, (중략) 미완의 혁명이었다 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거시적인 면을 제외하고도 미시적으로도 박정희 정부 때 재생산된 일제식 권위주의 문화, 군사주의 문화를 비롯한 전근대적 문화요소들이 재생산되어 현대 한국 사회에서 근대적 ’ 개인‘이 발전하는 것을 지연시킨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거시적, 미시적 차원을 고려했을 때 박정희 정부가 근대화에 기여한 점이 의심된다.
더 나아가 박정희 정부의 수행능력을 결과에 연결 짓는 논리도 생각해 볼만 하다. 저자는 박정희 정부의 수행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박정희 정부의 수행능력을 당시의 경제 성장과 연결 짓는다. 물론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이 유신체제라는 권위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필요는 없었다.’ 고 언급하듯이 독재 불가피론을 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연 권위주의-국가 자본주의 발전모델인 ‘박정희 모델’이 경제 성장의 중요한 요인이었는지는 고민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같은 시대의 일본, 오스트리아, 핀란드의 경우는 민주주의 하에서의 국가주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과연 권위주의적 통치체계가 경제 발전과 산업화에 필요한지 의문을 제시한다. 또한 박정희 정부의 성공이 국내적 과정이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박정희 정부 하의 산업화는 낮은 노동자 임금으로 유지되었는데 이것은 국제 분업 구조를 다시 만들기 위한 미국의 원조 프로그램 덕분이다. 또한 냉전 안보 체제하에서 한국은 지정학적 특수를 누릴 수 있었다. 미국은 군사 동맹 관계에 있던 동아시아 신흥 공업국의 수출품에 자국 시장을 개방 해부 었다. 또한 역사적으로 이 지역과 무역, 투자 관계를 맺고 있던 일본의 회사들이 국외에 저임금 조립생산라인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은 미국과 일본의 무한한 시장에 접근하는 혜택을 누렸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의 성공이 과연 국내적 과정인지, 국제적 과정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2. 김대중 점부 및 노무현 정부에 대한 분석
민주화 이후 수립된 정부들은 현재의 보수적 민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민주정부들의 연이은 사회경제적 개혁 실패는 계급구조의 심화, 노동 배제의 정치를 지속시켰고 시민들의 실망을 야기했다, 참여하던 시민들의 실망은 탈정치로 연결되었고 민주주의의 보수화를 가속시켰다. 이러한 분석 속에서 저자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처했던 구조적 상황을 언급한다. 비록 권위주의적 통치 제도는 청산되었지만 관료와 기존 엘리트, 언론 등으로 대표되는 보수 헤게모니는 건재한 구조가 민주 정부의 수행능력을 떨어트린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자는 212~215쪽에서 김대중 정부에게 원인을 돌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민주정부의 실패는 구조가 독립 변수인가, 개인(정부 구성원-사회적 행위자)이 독립변수인가?
3. 제도의 개선 없이 정당정치, 대중 정당이 가능한가.
저자는 보수적 민주주의의 해답을 정치 내부에서 찾는다. 그는 한국 정치의 해답을 제도 개선, 헌법 개헌 등 외부적 요소에서 찾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대중 정당을 통한 정당정치가 민주화를 이끌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제도 하에서 대중 정당이 형성 가능한지 의문이다. 현재의 정당들이 대중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들이 현재 실존하는 사회 경제적 균열 위에 위치하여야 한다. 이미 사회 경제적 균열 축을 따라 대중은 어느 정도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소선거구제, 비례대표제 등의 제도들이 대중과 정당의 연결을 방해하여 대표되지 않는 정당을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제도의 중요성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를 ① 한국의 민주화는 밑으로부터의 힘과 위로부터 권위주의에서 성장한 제도나 엘리트 힘 간 균형의 결과물이다.②재벌-대기업은 생산체제의 중심 동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③여론시장을 지배하는 대중매체는 압도적으로 보수적이며 민주주의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소극적 지지자로 이해된다.④기존 정당체제가 협애한 이념의 틀에서 유지되고 있다.로 판단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대중 정당이 제도의 개선 없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인가?
4. 한국 사회의 균열
일부에서는 사회균열의 탈물질화 명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들은 현재의 한국을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로 이해하며 유권자들의 가치 정향은 탈산업화 및 지식 정보사회의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한다고 믿는다. 더 나아가 새로운 시대의 탈물질적 사회적 가치가 그간 사람들의 투표 행태를 지배해 왔던 물질적 가치를 대체한다는 이른바 사회적 이슈의 대체를 제시한다. 실제 객관적인 사실보다 사회 행위자들이 인식하는 세계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명제는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노동 문제가 객관적으로 가장 중요한 균열이라고 하여도 대다수의 사회 행위자들이 문화적인 면, 혹은 다른 면이 더 중요한 균열이라고 생각한다면 후자가 사회의 중요한 균열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명제와 관련하여 명제의 참/거짓과 한국 사회에 내재하는 다양한 사회 균열, 그리고 가장 중심적인 사회 균열이 무엇인지는 논의해볼 만하다.
침 고문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최창집, 후마니타스,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