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변증법

계몽의 다른 면

by 도쿄 소시민

카이사르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선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결과는 의도와 다를 수 있다."라고 했었다. 인류를 중세의 암흑에서 꺼내 준 계몽주의도 그 시작은 좋았다. 이성과 자유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나갔다. 그러나 그 발전이 선형적이진 않았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가 증대되는 순간에도 세계의 한편에서는 새로운 식민지가 세워지고 있었으며, 몇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이 발발하기도 했다. 인간의 이성은 새로운 "야만"을 낳기도 했다.

이 고전은 왜 현대에 새로운 야만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근대 이후의 역사는 진보의 상징인 계몽의 단선적이지 않은, 문명과 야만의 변증법적 발전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계몽의 핵심인 자기 유지는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지며 제2의 자연인 사회에서도 해방의 도구는 억압과 지배의 도구로 변한다. 계몽의 근원적인 모순과 더불어 근대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의 발달이 새로운 야만의 시대를 낳는 주연들이다. 라디오, 티브이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은 이를 가속화한다. 역사의 발전 과정을 단선적이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파악한 점이 신선했다. 그런데 과연 야만적, 비합리적 현상들의 이유가 과연 계몽의 본질적 모순 때문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사회 행위자들의 비합리성이라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획일화와 동일화에 따른 사회의 전체주의화를 일으키는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암울한 미래 전망에 대해서 논해볼 수 있다.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러나 전체주의의 암흑이 끝나고 사회는 다시 새로운 양태를 보였다. 물론 푸코식 사고방식처럼 통치의 도구가 교묘해지고 일상생활로 침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적 상호작용,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잘못 해석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근대의 핵심 테마 계몽주의"


근대의 핵심 테마인 계몽은 계몽의 종결자, 칸트에 따르면 진보적 사유로서 스스로 기인한 미성숙에서 탈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오성을 이용하여 인식을 체계화하고 자연적 사실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때 체게화는 개념의 위계질서를 성립하고 차이를 줄이며 보편적 개념을 만드는 인지적 작용이다. 주체인 인간은 외부세계를 체계화하면서 인식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연을 지배한다. 이는 자기 유지를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 주체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들, 체계화, 이성의 사용 등이 한편으로는 삶을 강압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자기 유지의 강압적 성격은 제2의 자연으로 일컬어지는 사회 영역에서 잘 나타난다. 제2의 자연에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들은 다른 타인들을 지배하고 계획의 객체로 삼는다. 또한 사회 내에서 특수자를 보편자로 대체하는 체계화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개인의 획일화, 동일화로 이어져 전체주의 사회를 야기한다. 근대적 합리성을 보여주는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는 이를 가속화한다. 우리 주변에 나타난 문화산업은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문화산업은 인간을 재생산하려고 하면서 점점 체계화와 지배의 합리성을 나타낸다. 또한 유럽에서 등장한 파시즘과 반유대주의의 광기도 계몽의 변증법의 중요한 사례이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1. 저자는 사회 내의 비합리성과 퇴보를 진보와 계몽에서 찾고 있다. 계몽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면서 보이는 양상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 행위자의 제한된 합리성에서 사회관계 내의 비합리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논리이지만, 제한된 합리성을 지닌 사회 행위자들의 행위가 제도를 형성하고, 상호작용을 통하여 발현적 속성의 사회를 만들기에 비합리성은 어느 정도 예견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논리의 전제를 추적해나가다 보면

인간(사회 행위자)은 이성적, 합리적->이성과 합리-계몽의 모순-> 계몽의 변증법적 발전에 의한 문명과 야만(비합리)이다. 그러나 과연 사회 행위자가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2. 더 나아가 전체주의가 도래하는 다른 요인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계몽의 변증법에 의한 전체주의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관념적인 경향이 있다. 좀 더 물질적으로 보았을 때는 폴라니의 시장과 사회의 힘의 대립에 의한 결과가 생각났다. 자본주의적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반동적으로 사회의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해지는데, 이때 파시즘과 전체주의의 뿌리도 생기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움직임 이후 , 즉 순수한 자본주의 운동 논리 이후 미국의 트럼프 열풍, 유럽 극우 정당들의 부상을 보면 폴라니의 테제도 설득력이 있다.


3. 글쓴이의 전망에 따르면 미래는 암울하다. 계몽의 변증법에 의하여 계몽은 광기로 이어지며 자기 유지의 원리는 자기 파괴의 원리가 된다. 개인은 해체되고 전체주의 사회만이 남는다. 대중문화와 자본주의 운동은 개별성 해체를 가속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뜯어보면 ‘과거에는 다양성이 있었고, 개별성이 존재했지만 현재는 없다’라는 주장이 함축되어있다. 그런데 과거에 과연 개별성이 존재했을까? 이는 과거, 근대 이전을 너무 향수적으로 그리는 오류일 수도 있다. 또한 근대 사회의 변화, 즉 사회관계의 변화를 개별성의 상실, 동질화, 질의 양화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주의의 발달과 기술 발달로 통치기구가 내면화되고 일상생활 곳곳에 있기에 보이지 않을 뿐, 사회의 전체주의 화가 진행 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참고문헌: 계몽의 변증법,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오도르 아도르노 공저, 김유동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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