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전환

혼란한 21세기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by 도쿄 소시민



corona.jfif COVID=19, 출처 구글 이미지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은 희망찬 새해와는 거리가 멀었다. 갑자기 중국에서 등장한 새로운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기본적인 사회적 상호작용마저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최근의 다양한 변화. 보편화된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등 다양한 모습들은 사회학적으로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좀 더 시야를 거시적으로 확장한다면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국제 공조의 실종이다. 각국은 국경을 닫는 것을 가장 먼저 시행했으며, WHO는 권위를 상실했다. 그리고 현재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상황에서도 각국 정부들은 협력보다는 고립 및 대립을 택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발원지에 관한 논쟁도 그 일례이다. 이번 코로나 19에 대한 각국 정부들의 대응은 마치 세계화의 반작용 같다. 이는 사실 영국의 EU 탈퇴, 트럼프의 당선, 각국에서 준동하는 새로운 민족주의 운동 등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1990년대부터 사회 변동을 주도해 오던 그 축이 진자운동과 같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이렇게 진자운동으로 본 학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사회 변동을 이중 운동으로 보았다.


폴라니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사회 과학에 있어서 역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역사적인 성찰과 분석이 없다면 논리적이고 근거 있는 주장을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예전부터 시장 체제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폭로한 저술은 많았다, 폴라니를 이 많은 저술들과 구분해주는 점은 폴라니가 파악한 시장 경제의 유토피아적 특성과 이중적 운동의 메커니즘, 그리고 자유의 중요성일 것이다. 그는 20세기 중후반에 보인 거대한 사회 변동의 뿌리를 사회와 경제 간의 이중 운동으로 인식하고 그 기원과 양상을 서술한다.

이중 운동과 그 결과에 대하여 읽다 보면 당연히 드는 생각은 폴라니의 현재성이다. 우리는 고전 경제 자유주의의 또 다른 형태인 신자유주의에 큰 영향을 받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성보다 중요한 것은 폴라니의 시대와 다른 점이다. ‘거대한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1929년과 달리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세계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이중 운동의 한 축을 이루었던 ‘사회’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그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

저자는 19세기에 나타난 서구 유럽 문명에 대한 분석에서 글을 시작한다. 19세기는 유래 없던 평화의 시기로서 유럽사에서 과거와 비교되는 특이한 시기였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세력 간 균형의 지속, 국제 금본위 체계, 자유 무역의 증가, 그리고 자기 조정적 시장이 있다. 이 4가지 특징 중에서 19세기 유럽과 세계를 형성한 것은 결국 자기 조정적 시장으로의 흐름이 결정적이었다. 사회의 부속품이었던 시장이 어느새 사회를 압도하고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장 원리에 따라 금본위제가 유지되고 그 주체들은 자유 무역의 증가와 금융 시장의 안정을 원한다.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가 필수조건이 되고, 세력 간 균형이 장기간 유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국가와 민족주의 등 사회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기 때문에 평화와 균형은 깨지고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전후에 시장 원리의 복원을 위한 노력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통화 안정을 위한 금 본위제 유지 노력이다. 하지만 이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고, 사회의 자기 보호 반작용으로 귀결되었다. 파시즘, 사회주의, 나치즘 등이 등장하였고 이는 또 다른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사회의 틀 안에서 나와 경제 사회, 혹은 새로운 제도적 패턴으로 등장한 시장 패턴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기존 사회에서 시장은 사회의 부속품이었다. 따라서 시장에서 행해지는 사회적 행위들이 동기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대칭성, 중심성의 제도적 패턴들이 상호성, 재분배, 자급자족의 가정경제 원리들을 뒷받침하는 형태의 경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시장은 원시적인 대외무역에서 처음 등장하여, 마을 시장으로 확대되었다. 전국적인 시장은 전자의 시장들과는 다른 경쟁적 성격의 시장으로 현대 시장과 가장 유사하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의 마을 시장-> 전국 시장-> 대외 무역의 가설과 달리 대외무역과 마을 시장이 먼저 생겼고, 전국 시장은 중상주의에 들어서야 형성되었다.

전국적인 시장에 기반을 둔 상업사회에 기계가 도입되면서 시장원리는 사회 밖으로 나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기계의 유지를 위하여 생산된 재화의 공급과 판매 통로가 확보되어야 한다. 즉, 기계 작동과 관련된 모든 요소가 시장에서 거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품이 아니었던 토지, 노동, 화폐가 상품이 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특히 노동은 인간 활동의 상품화였기 때문에 인간 행위 총체인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변환의 방향을 막으려는 시도와 그 변화의 결과, 두 가지는 19세기, 20세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흐름이었다. 특히 스피넘랜드 법안은 노동시장 없는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려던 시도로서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에 상관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려던 시도는 사회의 전체적인 타락과 질적 하락으로 귀결되었다. 경제활동의 동기가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로 변화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고전 경제학자들의 대표적인 명제들은 이때의 상황을 반영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장 경제가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시장을 보고, 시장 경제의 자유화 이론화를 한 고전 경제학파,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작부터 틀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사회의 발견이다. 점진적인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당시 학자들은 빈곤 문제를 보았다. 그리고 스피넘랜드 법안이 이슈화가 되고, 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사람들은 사회라는 실체를 보았다. 이는 정치 경제학, 사회학의 지적 움직임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지적 움직임 가운데 지금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것은 경제 자유주의, 고전 경제학자들의 논리이다. 여러 가지 경험적인 사례들과 논리에 의해서 반박을 당하여도 꺼지지 않는 강력한 움직임이다. 어느새 종교처럼 변해버린 그들의 논리의 핵심은 절대적인 시장의 자유화이다. 자유로운 시장은 사회 구성원들의 복리를 증진시킬 것이기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현재 사회의 문제는 간섭 주의자들의 집단적인 음모로서, 시장에 대한 규제가 풀리기만 하면 시장은 자기 스스로 잘 움직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경험은 이들의 주장을 반증할 뿐이다. 그들의 기본적인 전제와 가정, ‘자유로운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자유로운 시장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은 앞에서도 보았다. 따라서 폴라니는 ‘집단주의적 음모’를 반박한다,

고전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집단주의적 음모’는 없었다. 시장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상품화된 노동, 토지, 화폐(생산조직)에서 각각 나왔다. 시장을 묶으려는 이러한 움직임의 주체와 활동의 동기도 각각 달랐다. 그러나 이 모든 움직임은 본질적으로 같은 결과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 움직임들을 모두 모아서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으로 규정한다. 노동, 즉 인간을 시장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다양한 법안들이 제정되었으며 생산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탄생하였다. 토지는 가장 먼저 상품화된 것으로 중농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상품화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하지만 또다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지주, 농민, 성직자들은 토지의 보호 움직임에 앞장섰다. 이처럼 각각 보호 움직임 주체들의 동기는 제각각으로 집단주의적 음모라고 볼 수 없다.

보호 움직임들과 시장의 기능이 충돌하면서 전체 사회에는 긴장이 발생하였다. 우선 애초에 ‘자유 시장’을 만들기 위하여 정부의 개입은 필수적이었다. 특히 자기 조정 시장의 필수적 조건인 시장의 전 세계적인 확대를 위하여 군사적인 개입이 요구되었다. 여기에 이중 운동의 한 축인 보호주의 운동의 영향이 추가되었다. 시장이 사회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되었기 때문에 시장 기능의 부진은 사회의 긴장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긴장들은 실업, 외환 가치-환율의 문제, 제국주의 경쟁의 형태로서 드러났다. 그리고 긴장들은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전후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자유화도 추진되었다. 금본위제의 복구로 상징되는 움직임은 그러나 처절한 파국으로 끝났다. 많은 나라들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유지하려고 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사회와 시장이 부딪히는 큰 사회적 혼란 속에서 나치즘을 비롯한 전체주의와 사회주의 등이 등장했다. 파시즘은 꽤 보편적인 현상으로서 시장 체제의 붕괴와 전후 국제체제에서의 민족문제를 그 배경으로 삼는다. 하지만 민족 문제보다 중요한 요인은 시장 체제가 그 기능을 멈춘데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파시즘은 시장과 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원리를 없애는 것을 제시했다. 사회주의나 미국의 뉴딜 정책도 기본 원리에 있어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1930년대 거대한 전환은 무너져가는 시장체제에 대한 대응으로 규정할 수 있다.

비록 이전 세기의 사회 변동을 다루지만 폴라니의 저술은 상당한 현재성을 갖는다. 경제적 자유주의의 다른 형태인 신자유주의가 20~30년 전부터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책의 후반부에서 알 수 있는 사회의 자기 보호 움직임은 현재의 많은 사회복지 정책, 환경 정책을 설명하는데 큰 설명력을 지닌다. 그러나 현재성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폴라니가 살 던 시대와의 차이점이다. 폴라니가 살던 20세기 초, 자유로운 시장과 사회의 보호 기능 간의 긴장은 큰 사회적인 변혁으로 이어졌다. 1929년 대공황에서 시작된 변화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더 드라마틱하게 기억된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1929년의 대공황에 비견될 만큼 큰 경제 위기이었지만 현재 큰 사회의 변화는 없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2008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회 변동을 이끌던 이중 운동의 한 축인 사회의 자기 보호 운동은 예전과 비교한다면 그 힘이 많이 줄은 것 같다. 20세기 초 전체주의로의 이행, 사회주의로의 이행과 같은 거대한 변혁과 비교해 본다면 21세기의 움직임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현재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고 하는 것과 1929년과의 단순 비교는 무리일 수도 있다. 폴라니가 관찰한 변동도 장시간에 걸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봤을 때 2008년 이후 큰 변동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봤을 때, 1929년과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움직임이 약화된 가장 큰 원인은 움직임의 주체와 관련되었다. 과거 위와 같은 거대한 사회 변화를 움직였던 국가의 힘이 줄어든 것이다. 여기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위기의 국가』의 내용이 떠올랐다. 현대 국가 권력의 많은 부분은 다양한 사회 제도 특히, 시장으로 분산된 것이다. 베스트팔렌 합의 이후 정착된 제도로서 국민국가라는 체계는 영토 내에서 무한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영토의 제약을 무의미하게 했다. 거기에다 시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신자유주의의 발흥은 국가의 많은 권력을 시장에 아웃 소싱하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 경계를 넘어들며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하는 지구적 권력은 국가의 권력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고 결국 국가의 정치와 권력은 분리되었다. 정치만을 갖게 된 국가는 팔을 잘린 리바이어던에 비유할 수 있다.

결국 현재 문제에 손을 델 수 있는 주체가 없다. 국가는 무능력하며 시장은 이미 그 한계를 보여주었다. 더 남은 플레이어 딱히 없는 것이다. 시민들은 분노를 느끼고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아직은 실험적인 단계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가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반정치 정서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반정치적인 정서는 민족주의나 권위주의 같은 망령들을 되살리는 결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과거의 망령들은 처절하고 슬픈 역사의 반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폴라니가 책의 말미에서 이야기하는 방향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유의 증진이 수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시장 경제가 이야기하는 파편화된 자유를 넘어서는 포괄적이고 모두를 위한 자유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 비록 폴라니가 이야기하는 자유는 전체주의의 적인 성격과 진정한 자유의 경계에 있는 것 같지만 그 방향성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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