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도, 가격도 이세계(異世界)인 괴레메 여행기
카파도키아의 관문은 두 군데가 있다. 네브셰히르 공항과 카이세리 공항이다. 두 공항 모두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을 타고 쉽게 갈 수 있다. 네브셰히르 공항이 편수는 적지만, 괴레메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에, 네브셰히르 공항을 이용하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진 것은 광활한 황야였다. 구글 이미지에 황야를 치면 나올법한 풍경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탁 트인 해방감과 함께 아무것도 없다는 데서 오는 허무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사막은 아닌데, 나무는 없고, 붉은 흙으로 이루어진 민둥산, 동산이 펼쳐져있었다. 지중해와 흑해에 접한 이스탄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작은 버스터미널 같은 공항을 통과하여, 합승버스로 이동하였다. 24년 1월 기준으로, 괴레메 시내까지는 1인당 180리라: 9000원 정도로 갈 수 있었다. 호텔 앞에 바로 내려주기에 매우 편리했다.
이 근방의 호텔에는 모두 Cave가 들어갔기에, 기사님이 호텔을 불러줄 때 가끔은 어디 호텔이 우리 호텔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수많은 Cave 호텔들과 마찬가지로 4일 동안 지낸 호텔 또한, 바위를 깎아 만든 객실이었다.
호텔에서 바라본 괴레메 시내의 풍경은 정말 이국적이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집과 호텔들이 만든 풍경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었다. 신기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한편으로는 이 많은 곳들이 다 호텔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슬펐다. 한때 실제로 사람들이 살던 공간은 이제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이 되어 있었다. 마을 전체가 사람이 사는 도시가 아닌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대망의 열기구를 탈 수 있었다. 열기구는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되기 때문에, 운이 필요했다. 운이 좋게, 1월 2일에는 열기구가 정상적으로 운행했다(괴레메에 체류한 1./1~1/4일 중, 열기구가 정상 운행한 날은 1/2일뿐이었다. 정말 천운이었다). 아침 6시에 호텔 앞에서 픽업을 하여, 열기구 회사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각자 열기구로 팀을 나누어 다시 승합차를 탔다. 가로등도 없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이 안 가는 어둠을 헤치며 20분쯤 달리니 수많은 열기구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열기구는 생각보다 컸다. 한 4명 정도가 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파일럿과 그 보조를 포함하여 20명 정도가 한 열기구에 탔다. 이 많은 인원이 정말 뜰 수 있나라고 생각할 때쯤 열기구는 지표면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도 1~2미터 정도 높이를 유지하며 서서히 움직였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괴레메와 그 일대를 볼 수 있는 스폿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절벽을 넘어서자, 그 밑으로 기암괴석의 계곡이 펼쳐졌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화산 분화로 인하여 생긴 응회암과 현무암, 기타 화성암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이 중 현무암과 화성암은 응회암에 비하여 침식에 강한데, 이 결과 침식에 약한 응회암이 수천 년에 걸쳐 깎여 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남은 것이 현재의 지형인 것이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침식에 약하고, 잘 깎여나가는 응회암의 성질을 이용하여 바위를 파서 수도 공간으로 사용하거나, 지하도시를 지을 수 있었다.
열기구는 점점 더 높게 올라가 1200m까지 올라갔다. 솔직히 이때는 내려가고 싶었다. 안전장치가 있는 놀이기구와 달리 열기구는 뭔가 문제가 생기면 거기서 끝이기 때문이다. 바깥의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멋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그래도 괴레메를 중심으로 한 카파도키아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기에 매우 만족스러웠다. 열기구를 타기 전에는 ‘드론으로 보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것은 달랐다. 2번은 안 탈 것 같지만, 날씨가 허락해 준다면 1번쯤은 해볼 만한 액티비티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열기구에서 본 풍경을 직접 발로 가보기로 했다. 열기구는 사전에 예약을 했지만, 투어는 현지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 적당해 보이는 투어 회사에 맡기기로 했다. 괴레메 지역의 투어는 가는 목적지에 따라 레드 투어와 그린투어로 나뉘는데, 이번엔 레드 투어에 그린 투어의 방문지역을 일부 섞는 믹스 투어를 가기로 했다.
투어의 목적지는 크게 3가지였다. 지하도시, 초기 및 중세 기독교인들이 수도공간으로 썼던 기암괴석군, 그리고 자연이 빚은 기암괴석들을 보는 계곡이다. 기암괴석군은 사실 하늘에서 봤기에,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지하도시와 바위를 파서 만든 수도공간은 달랐다.
카파도키아에는 응회암의 성질을 이용하여 건설한 지하도시가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데린쿠유인데, 우리는 데린쿠유와 연결된 카이막르 지하도시를 방문했다.
매표소를 지나자 지하도시의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에는 항상 동물들을 길러 침입자가 왔을 때 빠르게 알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동물들을 키우던 곳을 지나 내려가니 곡물창고가 나왔다. 식량이 중요했기에 이들은 층마다 곡물 창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하에서는 온도와 습도가 일정했기에, 오랫동안 식량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큰 곡물창고를 뒤로 하자, 그 앞으로는 흡사 개미굴 같은 터널들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었다. 중앙의 환기 샤프트를 중심으로 하여 수많은 방들과 통로들이 펼쳐져 있었다. 안내판과 가이드가 없었다면 쉽게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이 지하도시들은 튀르키예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아나톨리아의 원주민 중 하나인 프리기아인들이 기원전 8~7세기 경부터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 로마제국 시대에는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이, 그리고 동로마제국에서 튀르크 족으로 패권이 넘어갈 때는 다시 한번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이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지하도시 외에 카파도키아에 많은 것은 초기 교회와 수도원들이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되기 전에는 박해를 피해 바위 속에 교회를 짓고 기도와 명상을 통해 신앙생활을 했다. 그리고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는 금욕적 신앙생활을 위해, 일부러 외딴 이곳에 굴을 파고 기도와 명상을 했다고 한다.
또한 카파도키아는 성상파괴운동 등 기독교 내부의 분열이 있을 때마다, 박해받는 자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이들은 바위에 굴을 파 교회를 짓고 근처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과거에는 지금 보다는 식생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황무지까지 와서 굴을 파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의지와 절박함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과연 나는 이렇게 까지 할 정도로 믿는 무언가 혹은 신념이 있는가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투어를 끝내고 괴레메 시내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저녁 가격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스탄불보다 비싼 물가를 볼 수 있었다. 마트에서 사면 50리라 정도인 맥주를 식당에서는 당연하게 200리라에 팔고 있었다. 대부분의 식당은 다 비슷한 메뉴인데, 400, 500리라 아래의 메뉴가 거의 없었다. 마을 전체가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마을 같았다. A101슈퍼에서 음료수와 과자를 현지인 가격으로 살 때,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괴레메는 풍경도 가격도 모두 이세계(異世界)였다.
#카파도키아 교통
이스탄불에서 네브셰히르까지 국내선을 이용했다.
네브셰히르 공항에서는 괴레메 호텔까지 합승택시를 이용가능하다. 사전 예약은 필요 없다.
#괴레메 근처 방문할만한 곳
괴레메 오픈에어 뮤지엄
괴레메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는 관광지다. 나머지 주요 관광지는 투어를 이용하지 않으면 조금 가기 힘들지만, 이곳은 시내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한다. 수많은 그리스정교 아이콘들과 교회 미술이 많이 남아 있어, 꼭 들릴만 한 곳이다.
#괴레메 맛집
펌킨
호텔 직원에게 추천을 받은 곳이다. 괴레메에 있는 가게들 중 그나마 양심적인 가격에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https://maps.app.goo.gl/wGL5kKnFszvm7yJj6?g_s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