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회사 관찰기 3
일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나는 일본의 기업 문화가 '원래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다. 비교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친구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피부에 와닿는 비교는 어려웠다. 그저 업무 주변에서 보이는 단편적인 특징들을 관찰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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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해 다른 나라 동료, 고객들과 협업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알던 일본의 업무 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을.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일본 회사의 선명한 특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 회사들은 정말로 질문이 많다. 새로운 서비스나 업데이트에 대해 공지를 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질문이 없거나 한두 개 오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일본 회사들은 완전히 다르다.
"1) 이번 업데이트는 ~라는 배경 때문에 진행되는 것이 맞나요?"
"2) 1)이 맞다면, 공지에 써주신 대로 a, b, c를 순서대로 진행하면 될까요?"
자료에 없는 내용은 물론이고, 해석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문장이라면 어김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심지어 공지에 명확히 쓰여있는 내용조차 자신들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재차 확인한다. 글에 대한 해석이 단 1%라도 달라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고객사 입장에서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할 때, 질문의 수와 깊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해보자'가 아니라, '완벽히 이해하고 단 하나의 리스크도 없이 움직인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과거 컨설팅 회사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일본 회사들은 유독 IT 시스템 관련 업무를 외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해외 고객사들은 대부분 사내에 대규모 IT 부서를 두고 있다. 자신들의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전문성도 뛰어나다. 그래서 시스템 관련 논의를 할 때면, 해당 회사 담당자만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되고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일본 회사들은 다르다. 대부분의 IT, 시스템 운영을 외부 업체에 위탁한다. 간단한 네트워크 설정 문제조차 해외 기업은 내부에서 해결하지만, 일본 기업은 고객사 담당자와 외부 위탁업체 담당자가 모두 참석해야 한다. 사람이 두 배로 드니, 논의 과정이 느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사내, 사외 할 것 없이 여러 당사자들 간의 의견을 조율하거나, 무엇인가를 결정하거나, 혹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경우 회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목적을 생각해서 참가자를 정하고, 회의의 착지점(Goal)을 생각하여, 그에 맞게 회의를 준비한다. 그리고 실제 회의 당일에 의견을 교환하며 회의의 착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일본은 다르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회의를 위한 회의"가 있는 경우가 있다. 회의 당일의 서프라이즈를 피하기 위해서 사전에 회의 참석자들과 회의 내용과 자료를 공유하는 사전회의를 할 때가 있다. 특히 의사결정권자들이나 "높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회의 경우 반드시 사전회의가 있다. 마치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실무진들처럼, 사전에 모든 것을 조율하고, 회의 자체는 어떻게 보면 퍼포먼스인 것이다. 모두 이미 어떻게 흘러갈지 내용을 알고 있으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전 세계 어디서든 임원급 회의는 이렇게 진행될지도 모르지만, 일본의 특이한 점은 실무자들 급의 회의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 다는 점이다. 정말 모든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모든 일본 회사의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이러한 특징들은 '정확성'과 '책임 소재'를 극도로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리스크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꼼꼼함이 때로는 놀라운 속도의 저하를 가져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