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단상

낯선 고요함 속에서 보낸 연말연시

일본의 연말연시

by 도쿄 소시민


일본은 신정을 쇠는 나라다. 보통 12월 27일경부터 1월 4일까지가 한국의 설날 연휴에 해당하는 '연말연시(年末年始)' 기간이다. 국가가 정한 공휴일은 1월 1일 하루뿐이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이 기간에 자체적으로 긴 휴가에 들어간다. 물론 업종마다 리듬은 다르다. 관공서와 은행은 12월 30일까지 영업한 뒤 31일부터 1월 4일까지 문을 닫고, 공장 가동 스케줄에 맞춘 제조업체들은 크리스마스부터 아예 셔터를 내리기도 한다. 여기에 개인 연차를 덧붙이면 2주에 달하는 황금연휴가 완성된다.


올해 나의 연말연시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금융권으로 이직한 후 처음 맞이하는 연말이었기에, 일본 생활 이래 처음으로 이 기간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알던 도쿄와는 전혀 다른, 낯선 도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출근길, 평소라면 지독한 '콩나물시루'가 되어 승객을 밀어 넣던 소부선과 야마노테선은 믿기지 않을 만큼 한산했다. 도쿄에서 처음으로 출퇴근길에 '앉아서 가는' 사치를 누렸다. 도쿄역에 도착하니 풍경은 더욱 생경했다. 역을 가득 채운 이들은 커다란 캐리어를 든 여행객이나 귀성객뿐이었다. 평소 도쿄역을 메우던 짙은 색 양복의 샐러리맨들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의 풍경 역시 생소했다. 평소라면 긴 줄을 서야 했을 식당들이 나를 즉시 반겼다. 식당 안을 채운 이들도 대부분 사복 차림의 여행자들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내려다본 거리에는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이 내려앉아 있었다. 12월 29일과 30일, 이 이틀간의 출근은 내가 알지 못했던 도쿄의 숨겨진 틈새를 엿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마법은 1월 5일 월요일이 되자마자 풀렸다. 오피스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왔고, 소부선과 야마노테선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일주일 전의 여유로운 출근길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득해졌다. 도쿄역 개찰구에서는 나와 같은 복장을 한 샐러리맨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고, 점심시간은 다시 1분 1초를 다투는 거대한 '눈치 게임'의 장으로 회귀했다. 도시는 그렇게 다시 일상이라는 궤도 위로 올라섰다.

업무 역시 본래의 속도를 되찾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와 여름휴가가 겹친 오세아니아 지역 고객들은 여전히 부재중이지만, 휴가를 마친 대부분의 고객이 복귀하면서 잠시 멈췄던 프로젝트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운영 보수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2026년이 비로소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연말연시의 짧은 정적 속에서 나는 2026년의 주요 업데이트와 데드라인을 정리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상황과 'Go-Live' 스케줄을 다시금 복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작년 2월, 처음으로 연간 스케줄을 짜며 막막해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제는 전체적인 그림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듯해 다행스럽다.


새로운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만큼, 올해는 나의 지식과 스킬을 수평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싶다. 2026년이 끝날 때쯤에는 이 조직 내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인 답을 내릴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목표를 당당히 달성한 한 해로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참고) 일본의 연말연시 기간에는 대부분의 식당들도 휴무인 경우가 많습니다. 향후 연말 혹은 연초에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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