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만의 특별한 경험을 위해 2024년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이 열리는 Messe를 찾았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Frankfurt Buchmesse)은 매년 10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 축제이다. 출판업계 관계자, 작가, 독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출판 산업의 최신 동향을 공유하고 새로운 작품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자리로, 책과 사람, 그리고 이야기가 만나는 축제의 장 그 자체이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거의 10년 전, 언니가 모 대기업 유스마케팅팀에서 근무할 때 아동도서 관련 인사이트를 얻으려고 출장 간다고 했을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매번 프푸에서 매년 10월 즈음에 열리는 세계 최대 도서전이라고 하는데, 그땐 나에게 프푸 도서전은 현생에선 갈 수 없는 꿈이다 싶어(10월 학기 중 연가 쓰고 해외 가는 건 그냥 정말 불가능한 일) 국제도서전을 회사비용으로 참석하는 언니가 마냥 부러웠었다.
(막상 언니는 이 출장을 통해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쩌다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게 되어, 국제도서전 개최 가긴에 마음만 먹으면 전시를 보러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이번 도서전은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열렸고, 마지막 이틀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었다. 세계 최대 도서전답게 사람이 많을 줄은 짐작했지만, S반 Messe 역에 내리자마자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입구부터 인산인해를 이룰 줄이야.
개장시간에 맞춰서 갔지만 15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미리 사둔 티켓을 보여주고 입장했다.
도서전이 열린 프랑크푸르트 메쎄(Messe)는 도서전다운 웅장함과 열기로 가득했다. 전시장은 총 10개로 나뉘어 있었으며, 그 규모와 다양성은 가히 압도적이었는데.. 교육, 예술, 디자인, 논픽션, 독립출판 등 테마별로 나뉜 부스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색깔을 자랑하며 방문객들을 끌어모았다.
고로 하루에 모든 전시장을 다 돌아보기엔 무리.
수일 입장권을 살지, 하루 입장을 하여 어디를 선택과 집중하여 볼지 미리 계획해 가는 게 좋겠다.
주빈국 이탈리아, 그리고 다양한 만남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매년 한 국가를 주빈국으로 선정하여, 그 나라의 문학과 문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올해의 주빈국은 이탈리아로, "미래에 뿌리내리기"라는 주제로 작가 강연과 토론을 통해 이탈리아 문학의 깊이를 탐구하는 장을 마련했다.
비록 일정이 맞지 않아 이탈리아 작가들의 강연에 직접 참석할 수는 없었지만, 후기를 통해 문학과 정치적 상황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베스트셀러 작가인 Roberto Saviano와 같은 저명한 인사들과의 강연과 토론은 독자와 작가가 문학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책으로 가득한 축제의 현장
내가 가장 먼저 찾은 전시장은 제3전시실로, 교육, 오디오북, 예술, 건축, 디자인, 문학, 논픽션, 종교, 관광, 독립출판사의 독서 존 등 다양한 테마가 한데 모인 곳이었다.
제3전시장에서는 유명 출판사인 DK, 펭귄랜덤하우스 등의 부스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었다. 제3전시장에는 책 전시뿐만 아니라 문구류, 달력, 캐릭터 굿즈 등을 판매하는 부스도 있어서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긴 줄이 연출되기도 했다. 여기에 존재한 Thalia 서점 부스에서는 Thalia 굿즈들을 전제품 50 퍼 할인하고 있어서 몇 개 득템할 수 있었다.
아들 빵준이 책을 고르기 위해 들렀던 아동 도서 코너는 다소 예상 밖이었다. 국제도서 전이라 다양한 언어의 책을 기대했으나, 독일어 책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영어 아동도서를 찾으려면 미국, 영국, 호주 등영어권 국가의 부스를 별도로 찾아야 한다는 것... 이외에도 국제도서 전이라고 해서 영어로 번역된 책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대부분의 전시된 책이 독일어책이었고 낭독회, 사인회, 작가의 강연과 인터뷰도 대부분 독일어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날의 행사는 몰라도 내가 갔던, 대중에게 공개된 날의 행사는 독일어를 할 줄 모르면 즐기는 데 제약이 아주 많을 수 있다.
아동도서 부스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책 전시회를 찾은 아이들이 놀이터에 놀러 온 마냥 아주 행복하고 들떠 보였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 사인을 받거나, 작가가 직접 낭독해 주는 책 이야기를 귀 기울이며 듣는 순수한 모습들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평생독자로 성장할 자라나는 새싹들. 세계에서 제일 큰 책 전시를 어릴 때부터 향유할 수 있는 너희들이 부럽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작가와의 만남, 작가 강연이 동시다발적으로 곳곳의 장소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인 Roberto Saviano, John Strelecky, Chloe Gong, Yuval Noah Harari와 같은 저명한 작가들과 함께하는 강연과 토론을 통해 독자와 작가가 문학과 정치에 대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펼쳐진 것이다.
독자들이 책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직접 생성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찾아가는 지혜의 장이라니..! 작가도 독자도 분명 행복함으로 충만한 시간이었을 테지.
2024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New Adult, 로맨타시(Romantasy), Dark College 등의 장르가 새로운 전시 공간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젊은 독자들이 디지털 디스플레이 대신 아름다운 삽화가 그려진 책에 더 관심을 가지는 현상이 보인다고 한다. #BookTok 커뮤니티의 영향으로 New Adult 장르가 젊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여, 이번 도서전에서는 New Adult 장르의 팬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도서전에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고 온 사람들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고, new adult 장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작품 홍보관도 있었다.
또 가장 인기 있는 부스 중 하나는 구텐베르크 활자 인쇄체험존이었는데, 구텐베르크의 정신을 계승하여 시작한 도서전답게 구텐베르크 관련 체험과 서적, 굿즈들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도서전이 아니라 축제라는 말, 인정이다!
한국 부스와 아쉬움
다른 블로그에서 보면 제3 전시장에 한강 작가의 책을 출판한 독일 출판사 'Aufbau'의 부스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이를 놓쳐버렸다..! 한국관 부스에서 열심히 한강 작가님의 작품을 찾아 헤맸지만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어...
한국관은 '아시아 스테이지'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아끼고 아끼다가 마지막 순간에 방문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가 부스가 휑~한 느낌이었다. 이미 많은 출판사가 철수를 한 듯했다.
한국에서는 어떤 책이 국제적으로 소개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언어의 제약 때문인가 그림책이 주를 이뤘다.
한국문학의 광팬으로서 한강 작가님의 작품처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문학 작품이 차고 넘쳤는데.. (물론 훌륭한 논픽션 도서도 너무 많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지 않은 것은 참 아쉬웠다.
또 한국관은 다른 국가에 비해 뚜렷한 개성이나 통일성 없이, 한국 출판사 몇몇의 부스를 한데 모아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몇몇 다른 국가의 전시장은 부스 콘셉트부터가 확실하여 눈길을 확~ 사로잡았는데..!
가장 인상 깊은 나라의 부스는 '라트비아(LATVIA)'였다.
세계에서 국민성이 Introvert(내향적인 사람)에 가깝다는 콘셉트로 #IAMINTROVERT(나는 내성적이다)를 주제로 삼고, 전시된 도서 모두가 그 주제의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면, 야니스 요네브스의 소설 <옐가바 94>, 노라 익스테나의 여러 작품들을 홍보하며 라트비아 작가들의 내성적인 성격이 남다른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타인을 깊게 생각하는 속 깊음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다.
내년에 한국 부스의 발전 더 기대하겠습니다..
독일, 책과 함께하는 삶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은에서는 특히나 독일인들의 책에 대한 사랑과 깊은 애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책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앞에 소개한 바와 같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서전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리고,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충분히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독일인들이 얼마나 독서에 열정적인지 알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그 호기심과 관심의 폭이 매우 넓다는 것이었는데..!
소설, 논픽션, 예술서적부터 최신 과학서와 철학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부스로 마련되어 있고, 각 부스마다 책을 직접 손에 들고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르에 상관없이 골고루 책에 대한 열정이 분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실제로 대중교통을 타거나 카페에 가더라도 종이책을 손에 들고 독서에 열중하는 독일인들을 자주 마주할 수 있는 걸 보면, 독일인은 책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번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독일어를 모르는 제약 때문에(따흑..) 흥미 있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는 찾지 못했지만. 독일인들이 책과 함께하는 삶의 여유와 깊이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국어교사로서 매년 새 학기가 시작하고 첫 수업 시간이 오면, OT의 일환으로 '국어 과목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반드시 언급한다.
내가 중점을 두는 국어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책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평생 독자로 성장하는 것'라고 수업 오티 때마다 항상 역설하곤 한다.
근데 이런 추상적인 소리 말고 다 같이 이 도서전 한번 함께 견학하면 다들 마음 깊이 나의 의도를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이 풍경을 나만 눈으로 감상하는 게 아쉽기만 했다. 복직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개최되는 도서전을 관심 있게 팔로업해서 꼭 체험학습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야지!라는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을 더 즐길 수 있는 TIP
1. 마지막 날을 노려라
전시 마지막 날에는 많은 부스에서 할인 행사가 진행되는데 70% 이상의 할인폭으로 책의 재고떨이를 하는 부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인기 도서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2. 푸드 코너를 즐겨라
전시장 밖에는 다양한 푸드 트럭과 음식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특히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볼 법한 핀란드식 훈제 연어는 강력 추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은 책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자리였다.
책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평생 독자로 성장하는 것, 그리고 문화를 배우고 소통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 이 도서전은 그 모든 목표를 충족시켜 주는 축제였다.
내년에도 다시 한번 이 축제를 찾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 책과 함께하는 독일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