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 떠올린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사진이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에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단순하고 호화로운 팔찌를 하고 샤넬 슈트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골르아주 담배와 커피 한 잔이 아침식사였으며
… 알콜과 섹스와 속도, 도박과 약물에 중독된 삶이 그의 문학을 압도한 격이었다.” 김남주 번역 에세이 <나의 프랑스식 서재>중에서
가을을 닮은 여인 폴.
책임에서 자유롭고 싶은 남자 로제.
‘마음의 현‘을 울리는, 폴을 사랑하는 현재,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청춘의 시몽.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세 남녀의 뻔한 사랑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이 소설이 마음을 울리는 건, 프랑수아즈 사강의 유난하지 않으면서도 감각적인 문체 때문일 것이다.
“물방울이 맺힌 쇼윈도를 통해 가을의 회한으로 가득 찬 햇살이 돌연한 연기를 품은 채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폴의 몸은 햇살 속에 잠겨 있었다.“
가을을 담뿍 담은 소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문장. (햇살을 시몽에 비유한 **의 해석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39살의 이혼녀 폴은 독립적이고 전형적인 여자의 삶을 혐오했던 인물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회의 도덕적 기준에 부합되는 삶에 안정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여인이 되어 있다.
6년을 함께한 연인 로제. 처음에는 그의 덜 성가시고 파리지앵다운 매력에 빠졌지만 그의 그런 기질이 그녀를 갉아먹는 아픔이 되고, 기쁨과 회의와 온정으로 뒤범벅된 그 시간 때문에 체념하듯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떠나지 못하는 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의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알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
그녀에게 다가온 햇살 같은 남자 시몽. 안타깝게도 그녀와 시몽의 사랑은 현실에 단단하게 발 붙이지 못하는 사랑이었다. 14살의 나이 차나 폴이 내심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모욕적인 시선이 아니었더라도 그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까?
인생의 2년 정도는 사랑에 바치겠다는 친구의 말에 자신은 그런 사랑을 하고 있노라고 대답하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망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시몽에게서 부러운 청춘의 열정과 사랑의 한계를 함께 느꼈다.
“당신을 안 이후 제가 연기한 그 모든 역할은 당신을 위해서였어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시몽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신중함은 대게 낙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그 시간을 모았다. 아니 그는 삶을 잃어버렸다.”
나쁜 남자 로제.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며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안정과 애정에만 안주할 수 없는, 폴을 사랑하지만 폴이 자신의 전부가 될 수 없는 결코 둘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고독한 인간.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고, 애정으로 가득했고, 조용했다. 그럼에도 그는 밤중에 그곳에서 나올 때면 해방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당신은 스스로 자유에 집착하고 있고 그것을 잃을까 두렵다고 하겠지… 요컨대 나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하기에는 말이야.”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는 기분도”
결국 로제 곁에 남기로 한 폴.
“그녀는 한 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 주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이 결코 느낄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 속에 있는 그가 부러웠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그는 두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층계를 달려 내려갔다. 마치 기쁨에 뛰노는 사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거기에 몸을 기댔다. “
24살의 사강이 생각하는 마흔의 사랑은 이런 것이었을까? 이 소설이 1959년에 나온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시절의 39살은 지금의 40대 후반의 나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라면 어땠을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맴돌던 생각은, 현재의 나는 24살의 사강이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에 침잠해 자신을 아프게 하는 나이 든 여자는 아닐 것이라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의 덧없음을 이해하고 또한 사랑의 시간과 관계없이 어떤 이에게는 그 사랑이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음을 아는 나이.
세 연인의 감정선과 완연한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글의 이미지를 따라가며 읽어 내려간 소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을의 끝자락 이 소설을 떠올리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되뇔 폴이 생각나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과 함께.
* “ “로 표기된 문장은 민음사,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