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의미를 채집하고, 분석하고, 추출하여 결론을 얻었다.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연구하며, 실행에 옮기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언 듯 생각할 때에는 추상적이며 분명하지 않은 개념이었습니다.
<직장에 얽매이는 것이 싫고>, 일하지 않아도 따박따박 매월 현금흐름이 발생하게되면 여유가 생기고, 직장을 떠나고 싶은 잠재된 욕망이 해소되는 것, 그 정도 쯤 되지 않을까 생각 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한번 노트에 내게, 행복했던 순간을 적어보았습니다. 지나온 자신의 시간 속에서 <그냥 내게 행복을 주었던 순간들> 말입니다. 그것은 거창하지도 않고 아주 담백하고 솔직하게 <실제로 자신이 언제 행복했는지를 적어 봅니다>. 그리고 늘 기억은 대단한 이벤트와 도드라진 사건들을 더 잘 기억하지만, 그런 것보다 어제, 지난달, 작년, 몇 년 전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수집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쓰는 동안, 남을 의식하지 않고, 또한 자신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의식의 흐름으로 적어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 삶 속에 자연히 녹여내기 위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그 옆칸>에 적어 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부분 필요한 것은 금전, 여유, 시간(통제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등 입니다.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으로 온통 하루를 채운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자원들이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인자를 추출해서 아래와 같이 누계를 내면 이렇게 표현됩니다.
네, 맞습니다. 자신의 행복, 만족감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핵심자원은 금전, 일, 여유(내면적 밸런스)도 아닌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 그 주도권을 갖는 것이 가장 필요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것도, 대부분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통제할 수 있는 시간 안에서 좋아하는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과 여유를 얻고, 존중을 받고, 그 순간의 공유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좋아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그 시간들, 그 주도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내면적 밸런스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아가야 할 방향은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더욱 회복해야 하며, 그렇게 얻은 시간들 속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행복을 주는 조각들을 <삶 속에 온통 배치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일은 자신의 일로 교체하고, 그 속에서 금전은 축척이 되며, <내면의 평온이 자신의 삶에 유지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간, 그 자원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그것은 방법론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야 합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 더 이상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것, 퇴사를 하는 것, 또는 직장을 다니며, 그 시스템 안에서 적절히 시간을 통제하는 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 이것들을 혼용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론을 찾아가야 합니다.
각자의 여건과 상황은 다르기에 무엇이 답인지는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메시지는,
<자신에게> 주는, 그 행복을 주는 요소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시간>이란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
그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것,
자신의 그것을 잘 알고 이해했다면,
이제 그러한 조건으로,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용기,
그 누구도,
이것들을 잘 모른다는 것,
정말 가족조차도, 자신조차도,
그것을 바꾸는 주체는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내 그림>을
그려가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글 / 여량(https://brunch.co.kr/@getd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