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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Feb 26. 2016

돈 많이 벌겠다는 생각,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박해천 <아파트 게임> 독후감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은퇴 나이는 53세입니다. 가장 오래 다닌 회사에서 퇴사하는 나이는 평균 49세. 자회사 대표로 가거나 다른 회사 임원, 고문 등으로 가는 꿈 같은 커리어를 밟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테니까, 대부분은 49세부터 약 4년 동안은 눈높이를 확 낮추고 계약직 등을 전전해야 할 겁니다. 53세쯤 수십 년에 걸친 월급쟁이 생활을 ‘어쩔 수 없이’ 마무리지을 테구요.


다행히 최근까지 은퇴한 60대 초중반들은 젊은 시절에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모아둘 수 있었던 사람들이 제법 되는 편입니다. 문제는 몇년 후의 50대들과 40대 후반들, 그러니까 50년대 말 이후 태어난 아줌마 아저씨들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태껏 아파트값 상승을 통해 자산을 축적해왔는데, 이 혜택을 제대로 못 누리기 시작한 세대들이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하우스푸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리고 이 흐름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 그러니까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 이르면, 상황은 한층 암담해 보입니다. 아마 우리들은 높은 확률로 50은커녕 40대 중반까지 일하기도 힘들 겁니다. 그때까지 돈을 모아두기도 힘들 거구요. 아무리 열심히 저축하고 적금 붓고 해봐야 세금 떼고 물가상승률 고려하면 실제로 투자수익률은 1%를 넘기기도 힘들 거고, 코스피가 무한 상승해서 인덱스 펀드에만 투자해도 쫙쫙 올라가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부동산 투자를 할 만한 밑천을 구하는 것도 어렵겠지만, 설령 어떻게 모아서 담보대출 끼고 집 한채 질러봐야 만족할만큼 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탓은 아닙니다. 한국이 드디어 먹고살만해져서(!) 저성장 궤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가난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처럼 다같이 험블하면 또 모를까, 티비 보고 페북 보고 인스타 보면 맨날 훈남훈녀들이 간지템 착용하고 핫플레이스를 투어해 주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도 아웃라이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론입니다. 안타깝게도 여간해선 불가능할 것 같은 결론이기도 하지만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많이 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욕심이 다르니 기준을 마련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50살 때 순자산 10억 정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면 그럭저럭 기깔날 수준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0억 정도면 수익형 부동산을 사거나 자산운용사에게 돈을 맡길 수 있는 금액입니다. 후하게 쳐서 세후수익률 6% 정도 먹는다고 가정하면, 월 500만원 정도의 자본소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월세도 내야 하고 해서 아주 호화롭게 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늘그막에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할 필요 없을 정도는 충분히 됩니다.


(상속/증여, 복권, 그리고 사업 등의 ‘대박’을 논외로 하고) 10억을 모으려면, 경제활동을 하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월 3백만원씩 저축하면 됩니다. 월 3백만원씩 20년동안 연평균 3%의 수익률로 투자하면 10억에 조금 못 미치는 돈을 가지고 50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결혼이니, 육아니, 의료비니 해서 모아둔 돈을 쓰거나 저축을 멈추면 안 되는 건 함정. 그리고 요즘 세상에 평범한 개인이 연평균 3%씩 수익률 내기 어렵다는 것도 함정. 20년동안 월급 받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건 더 함정.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달에 2백만원은 쓰고 살아야 할 것 아녀요. 월세도 내야 하고, 가끔은 데이트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쯤 제주도 정도는 다녀와야죠. 그런데 그러려면 한달에 가처분소득이 5백만원은 되어야 합니다. 2016년 기준으로 한달에 세후 5백만원을 받는 연봉은 7,300만원. 연봉 7천짜리 직장인이 열심히 아껴 써야 나이 들어서도 평생 아껴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열심히 해서 부자가 되어 보이겠다’는 포부는, 진짜 어마어마한 경제적 성취를 일구어 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청년에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빠른 속도로 몸값을 올려서 적어도 30대 중반 즈음에는 억대 연봉을 받아야지만 목표인 10억 혹은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연봉 1억이 되더라도 월 실수령액은 7백만원을 넘기지 못합니다. 30대 초반에 미처 다하지 못한 저축액을 메우는 것도 벅찰 겁니다.


오늘날의 청년이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꽤 조급해져야 합니다. ‘나는 대기만성형일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는 대기만성형 인재에게 기회를 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인력들은 점점 더 고급화되고 있지만 고급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뭐하러 나이 먹고 이제서야 좀 잘해볼 것 같은 사람한테 기회를 주겠어요. 어지간해선 꼭 30대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내야 합니다. 안그래도 짧은 청춘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지간하면 그냥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헉, 쓰고 보니 너무 비관적인 글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어쩌면 우리가 삶의 본질을 추구하기 보다 쉬운 사회에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에서 ‘여기만 넘자’가 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속이 아주 많이 편해질 거고, 그러면 남은 건 행복이고 지성이고 예술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육헌님의 발제로 트레바리 34에서 함께 읽은 책,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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