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수영 Jul 06. 2020

안녕, 모리꼬네, 보잉747, 상반기

엔니오 모리꼬네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한스 짐머, 존 윌리엄스와 함께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했던 영화 음악 작곡가.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보니, 그의 음악과 아주 친한 편은 아니다. 영화를 감명깊게 보지 않은 사람이 해당 영화 음악을 빠져들듯 감상하게 되는 일이 흔하진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영화 음악은 해당 장면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감정을 극대화시켜주는 장치로 태어났으니까. 그렇지만 괜히 우아하게 가라앉고 싶은 날에는 'Malena'를 종종 들었다. 곡 특유의 품위 있게 삭힌 슬픔을 좋아한다. 앨범 자켓에 있는 고혹적인 여성이 모니카 벨루치라는 유명한 배우라는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지만.


'The Story of a Soldier'도 좋아했다. 개인적으로는 기만적이고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에 가까운 평화와 위로 같은 노래라고 생각해 왔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노래 특유의 따뜻함이 too good to be true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좋다고 믿지 않으면 이렇게 좋은 건 내 곁에 없는 법이니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듣게 되는 노래였다. 모리꼬네 옹을 기리며, 당분간 이 노래를 열심히 청해 들어보려 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보잉이 747 기종 생산을 중단할 거라고 한다. 부품 관련 거래가 일어난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고. 무려 반세기 동안이나 항공 산업을 상징하던 비행기. 아직도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되는 비행기. 전후 항공산업의 황제였던 빌 앨런 보잉 CEO와 후안 트리페 팬암 CEO의 20년 우정이 만든 걸작. 동시에 '더 크게, 더 멀리, 더 빠르게'라는 20세기 항공산업의 성공방정식이 끝났음을 상징하기도 하는 비행기.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상반기를 떠나보내며, 지켜야 할 것,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버려야 할 것,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또는 해야만 했다). 지켜야 할 것은 존엄함, 아름다운 이야기, 받은 신뢰와 애정에 대한 책임감 등이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버려야 할 것은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에 대한 같잖은 애착과 자부심, 그리고 삶의 습관 등이었다.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은.. 빨래를 잘못 해서 크롭티가 돼버린 나의 반팔티들.. 새로 살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