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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Jan 30. 2022

'앎'과 '이해'의 사이에서

철학 시스템

알다

이해한다.

둘 중에 무엇이 먼저일까.

이 질문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라는 질문과 같은 느낌이다.


알고 난 뒤에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이해하고 난 뒤에 알게 되기도 하고, 앎과 이해가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제대로 알게 되어 많은 것들이 이해되는 순간들이 오기도 한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들어온 '어떤 지식'이 위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고, 갈등이라는 전쟁 끝에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앎'과 '이해'는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을까. '앎'과 '이해'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알다'와 관련된 용어로는 '기억하다', '깨닫다', '배우다' 등이 있고, '이해한다'와 관련된 용어로는 '알아주다', '수용한다', '납득이 간다' 등이 있다.


아는 것에는 지성이나 이성적인 측면이 들어가는 반면, 이해하는 것에는 감정이나 마음이 동하는 측면이 들어간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에, 앎과 이해가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무언가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지성적인 측면만 존재한다면 로봇과 다름이 없는 존재이나, 감정적인 측면만 존재한다면 익힌 내용을 받쳐주는 뼈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둘은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도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기도 한다. 둘의 공통점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알고 이해하는 것에는 두가지 대상이 있다. 하나는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이다. 지식도 사람도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을 알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에는 겸손이 있다.


어떤 학문을 처음 배우게 되면 그저 신기하고 재밌다. 하지만 결국 지루함을 느끼고 다른 공부를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지루함이라는 가면을 쓴 '어려움'이다. 호기심의 동물인 인간은 처음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정 학문을 공부하게 되지만, 호기심이 충족된 이후 그 이상의 능력을 요구할 때 어렵다고 느끼면서 졸음이 쏟아진다. 지루함은 같은 행위를 반복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데,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으니 지루함도 함께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학문을 배움에 있어 우리가 겪는 현상은 지루함보다는 어려움에 가까울 것이다. 치열한 졸음전쟁 끝에 어려움이라는 관문을 넘었을 때, 우리는 그 영역에 대해서 '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영역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열심히 설명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나중에는 자만으로 가게 된다. '자만'이라는 현상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어렵게 얻은 지식을 뽐내는 것은 어느정도 필요한 부분이다. 필요한 자들에게 자신있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드러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남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추가된다면 그 사람의 위치는 떨어져버리고 만다. 교만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다. 자신감에서 자만으로 넘어가는 것도, 자만에서 교만으로 넘어가는 것도 종이 한 끝 차이다. 위치 유지를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은 겸손이다. 빨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이 아닌 천천히 자신을 들여다보며 겸허한 마음으로 손을 모아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겸손이다. 그 겸손은 또 다른 어려운 대상을 만났을 때 생겨나기도 한다. 하나의 관문을 넘어 자신감이 생겼는데, 또 다른 관문을 만나 '이건 또 뭐야?'라는 심보가 생기면서 그만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위치에서 그만두게 된다면, 진정한 '앎'과 '이해'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양파같아서 진짜 모습을 꼭꼭 숨기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까고, 그 재료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넣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이어령과 김지수의 대화를 살펴보자.


"선생님!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로 깨어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연습을 해야 합니까?"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맨thinking man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어른들은 머리가 굳어서 '다 안다'고 생각하거든. '다 안다'고 착각하니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거 묻지 말라'고 단속을 해. 그런데 쓸데없는 것과 쓸데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의 차이는 뭐냐고?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인간이 표준인 사회에는 세상 모든 것을 인간 잣대로 봐. 그런데 달나라에 가면 다 소용없다"

출처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결국,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숱한 '질문'이라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진리에 도달하는 일종의 철학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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