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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Jan 16. 2022

반달사과의 달콤함에 나의 밤은 어지럽다

소녀의 꿈

정신없이 보낸 하루의 끝에 고개를 들어 우연히 보게 된 반쪽 짜리 사과 모양의 달. 지나가던 길에 마녀에게 설득당해 그만 그 사과의 맛을 경험해 버리고 말았다. 마녀의 속삭임을 물리치기엔 그날의 하루가 너무 고됬다. 그래서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반달사과를 먹어보았고, 그날 밤 나는 쓰러졌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보약, 밤에 먹는 사과는 독이라고 하던데 난 그 말을 믿고 싶지 않다. 똑같이 생긴 사과를 어느 시간 때에 먹느냐에 따라 효능이 달라지다니. 그냥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힘들었던 하루 끝에 단물이 나는 사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내게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변명과 함께 나에게 속삭이는 마녀의 속임수에 넘어가 반달사과를 마음에 품은 채로 길을 걸어간다.


집에 가서 먹을 생각에 그저 반달사과를 마음에 품고 가려니 하늘에서 단물이 뚝뚝 떨어져 나의 시선을 계속 하늘로 이끈다. 가만히 서서 단맛을 맛보려니 현실에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욕구 충족을 향해 찾아가는 길을 방해당한다. 가까이 가는 듯하면 밀쳐지고, 가까이 가는 듯하면 주위의 시선에 의해 집중이 흐려져 멀어지고 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현실과 욕구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길을 간다. 그렇게 조금씩 반달사과와 가까워져 나의 마음은 점점 달달해졌고 미소가 번진다.


한 입으로 끝내기엔 뭔가 아쉽다. 이 맛을 계속 느끼고 싶다. 그래서 또다시 현실과 욕구 사이를 오가며 길을 가고 그 속에서 반달사과를 또 맛본다. 점점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수준을 넘어서서 세상이 일렁인다. 정신이 몽롱하다. 그런데 이것도 나쁘지 않다. 힘들었던 하루, 아니 힘들었던 생활, 아니 힘들었던 인생인데 한 번쯤을 정신을 놓아도 되는 것 같다. 아, 아니다. 나는 지금 길을 걷고 있다.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내 안에 무언가가 퍼지고 있는 것 마냥 정신이 차려지질 않는다.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퍼지고 있길래 세상이 점점 흐릿해져 보이는 것일까. 순간 번뜩 생각나는 것이 있다.


밤의 사과는 독.

그 독이 진짜 인 것일까.

난 그러면 이대로 죽는 건가.

생각이 이어지질 않는다.

독의 영향인지 내 안의 무언가가 미친 듯이 날뛰어 나의 정신은 희미해져가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어딘가에 부딪혀 그만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정신이 들어 눈을 뜨니 느낌이 이상하다. 주변은 어둡고, 물렁거리는 무언가 위에 있는 것만 같다. 우주 속에 있다면 딱 이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이곳이 우주인 것만 같아서 믿기질 않아 몇 번이고 눈을 비벼본다. 발도 내디뎌보고 손도 휘저어보고 소리도 내어본다. 내가 어쩌다가 이곳에 온 걸까. 독이 몸에 퍼져서 나는 죽게 되었고, 죽음의 세계로 가기 직전 들르는 곳이 여기일까. 아니면 반달 사과의 부름을 받아 마녀의 빗자루를 타고 이곳에 오게 된 걸까. 아, 반달사과. 반달사과를 찾아야 한다. 이곳이 우주라면 반달사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반달사과를 찾아본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반달사과는 없고, 저 멀리 반달사과와 같은 색깔의 둥근달이 있다. 내가 맛보고 싶은 건 반달사과인데. 난 반달사과의 달콤함에 반해 버린 것인데. 저 달을 반토막 낼 수는 없는 걸까. 어찌 됐든 뭐든 하기 위해 달을 향해 나아간다.


달에게 가까이 가니 꿀범벅이가 되어 참으로 달콤해 보인다. 숟가락 하나를 꺼내 달을 한 스쿱 먹어본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적당한 꿀과 노란빛을 품은 상큼함이 어우러져 아주 달달하다. 한 숟갈을 더 먹으니 내 몸안에서 빛이 난다. 신기하고 달콤한 마음에 계속 먹는다.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내 안에 빛이 가득해 점점 나조차도 나의 몸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그만두려다가 달의 모양새가 좋지 않아 보기 좋게 세로로 자른다. 그렇게 그 달은 반달이 되었다. 나머지 군더더기를 모두 먹고 나니 배가 불렀고, 나의 몸은 빛으로, 나의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노란빛을 한가득 품은 채 나는 그 빛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온 우주를 자유롭게 떠다니며 꿈을 꾸다 몸이 가벼워지면서 지구로 돌아왔다.


꿈에서 깨어난 소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계절 밤의 달콤한 사과에 취해 나는 쓰러졌고 그 안에서 행복한 꿈을 꾸었다. 이 경험을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겠지만, 생생하게 상상하니 현실이 되었고, 꿈같은 현실로 인해 나는 앞으로의 생도 살아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7maJOI3QM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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