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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Feb 28. 2023

역지사지의 중요성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할까, 악할까? 성악설에 의하면 악하지만, 성선설에 의하면 선하다. 인간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서는 어린아이를 보면 알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울며불며 자신의 욕구를 채워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이기적인 것이 본성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의도 없이 누군가를 돕거나 금방 기분이 풀리는 것을 보면 내면에 선함이 들어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어린아이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하더니, 두 가지 주장에 대해 모두 예를 든 것을 보며 뭐야 싶을 것이다.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보다는 이기적이던 인간이 어떻게 타인의 입장까지 고려하게 되었느냐가 더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한다.



몇 해년까지만 해도 지능이 높은, 머리가 똑똑한 사람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지능검사를 했을 때 점수가 높게 나오면 잘 살아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일반 지능보다 정서지능(양심 지능)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공부가 잘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려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 후자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단순히 누군가도 어떤 감정을 느끼겠지라고 판단하는 것을 넘어서서 '나는 A의 감정은 느끼겠지만, 저 사람은 F의 감정이 느껴지겠구나'라고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고차원적인 수준이다. 나와 타인을 동일한 상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와 같은 인간이지만 또 다른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는 나만큼이나 위대한 존재로 보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에 대해 나의 시선에서는 모두가 표상이고 나의 세계만 존재한다는 것에서 넘어서서 타인 역시 내가 그저 하나의 표상으로만 보일 수도 있고 타인의 세계 역시 무궁무진하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타인은 나에게 하나의 표상일 뿐이고(하나의 배경일 뿐이고),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세계만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자극을 주기에 이기적으로 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심각하게는 나에게 하나의 표상일 뿐인 그 대상을 더 이상 나의 세계에서 보기 싫거나 없애버리고 싶어서 죽이는 행위까지 간다는 것이다. 조금만 마음가짐을 잘못 잡아도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인간이 아닌 본능에 충실한 육식동물이 되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늘 필요한 자세는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역지사지인 것이다.



역지사지는 그저 공감을 잘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나도 아프니 너도 아프겠다'가 아니다. 나의 세계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행위이다. 타인을 하나의 표상으로만 보고 자신의 세계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존재가 자신의 세계를 내려놓고 상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행위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환경이지만 그 세계를 상상하며, 그 사람이 될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추론해 보는 것이니 말이다. 본인에게 타인이 표상이듯 타인에겐 내가 표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타인을 이해하며,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나와는 또 다른 인격체로 존중하며 동등하게 대접하는 것, 그것이 역지사지이자 정서지능이자 양심 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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