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서 추구하는 일반적인 경로에서 이탈한 사람이다. 나처럼 이방인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면, 내가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최근 백수청년이 400만을 넘었다고 하며 은둔 청년이 늘었으며 부모가 자식을 부양한다는 영상을 보았다. 사실 난 그들이 이해가 너무 잘 간다. 그들을 뭐라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나도 한창 그 늪에 빠져있다가 세상으로 나왔으니까, 혹시나 현재 늪에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자 나의 진로 방황기를 글로 쓴다.
이 이야기는 나의 대학시절, 첫 취준 암흑기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님, 선생님,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았다.
인구수가 많은 90년대 초반생이었고
사회 분위기도 인서울을 외치는 분위기였다.
인서울 아니면 인생이 망하는 줄 알았다.
뛰어나진 않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내가 원하던 미술진로를 택하지 못한 나는
그렇게 고3까지 입시공부를 하며 달렸다.
나는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데
혹시 미대를 준비할지도 모르니 문과를 갔었다.
이때부터 더욱 꼬인 것 같다.
고3, 지원서를 작성하는데
무슨 과를 넣어야 되는지 도저히 모르겠더라
다들 좋다고 하는 경제학과, 경영학과에 넣었다.
그리고 그나마 관심 있던 언론정보학과를 끼워 넣었다.
당첨되는 걸로 가자!
인생이 랜덤 뽑기도 아닌데, 될 대로 되라는 마인드였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언론정보학과를 갔고,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다.
학교 공부는 재밌었다. 공부 자체는 적성에 맞았다.
또 남들 시키는 대로, 공기업, 대기업 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내가 대학생일 때의 분위기도
무조건 공기업 대기업이 아니면
무시받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학점만 열심히 관리했다.
그랬더니 4학년이 됐는데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더라.
우선, 언론정보나 방송 쪽 일은 내 내성적인 성격 하고는 맞지 않았다.
그리고 비상경계 문과생이 넣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영업관리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졸업 후 한참을 공기업, 대기업 필기시험을 준비하며 보냈다.
공기업, 대기업 자기소개서를 시즌마다 30개는 넣었고
자소서와 필기 강의도 듣고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이유도 모르겠는 탈락 속에 한 시즌을 실패할 때마다 6개월씩 날아갔고
나는 점점 자괴감에 빠지고
나이 한 살 먹을 때마다 나에겐 취업의 벽이 높아졌다.
지옥같이 느껴졌다.
어딜 가도,26살이 넘으면 취업 못해요.
이런 분위기였다.
난 졸업이 늦은 편이었고 금방 26살이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그렇게 힘든 과정 끝에 얻을 직무가 영업지원인데,
그게 나랑 맞는다는 확신도 없고 흥미가 없었다.
근데 그를 위해 6개월, 1년씩 준비를 하며
의욕도 사라지고 무기력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점점 친구들과의 교류도 싫어지고
이제 와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자니,
그동안의 인생이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놓은 덫 속에 둔 먹이를 꽉 쥐고 그 자리에서 말라죽어 가는 개코원숭이처럼
놓지 못하고 그렇게 긴 터널 속에 있었다.
혹자는 읽으면서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겨우 필기시험에 붙고, 면접까지 가고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이런 희망고문이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결국 2년? 3년째 취준 기간이 지났을 때
공기업 마지막 최종면접에서 탈락한 뒤에야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난 이미 20대 후반이었고, 가진 게 없고
내가 아는 세상 속에서는 대기업, 공기업이 아니면 먹고살 길이 없고
그 외에는 무서운 곳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더 겁이 났고 나는 집으로 숨게 되었다.
취업준비기간까지 거의 5년을
그렇게 버렸다.
물론 20 후반, 30 초반에는 400군데 정도
중소기업 소기업 가리지 않고 넣었고
오죽하면 지방의 사람 없는 공장에도 지원했었다.
논밭길에 출퇴근이 힘든 곳이어도
붙여만 준다면
진짜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연락 오는 곳이 없었고
큰 충격이었다.
나는 쓰레기다, 세상에 날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딘가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출근을 하고 싶고 일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