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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May 13. 2020

첫 책을 내고 생긴 일들

세상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내 이름으로 낸 첫 책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 세상 밖으로 나온 지 이제 3주 차. 책이 나오기 직전,


베스트셀러가 되면 어떡하지?


가슴이 두근거려서 어젯밤 잠을 못 잤다는 말은 남편에게만 하길 잘했다. 벌써 평대에서 치워지는 곳이 생겼고 그 말인즉슨 더 이상 기지개를 켜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한 달도 못 간단 말이야?' 인정하기 싫었다. 에피소드를 연재한 기간만 1년이었고, 눈알이 아프도록 원고를 수정했으며, 타자를 친 손목이 한동안 시큰거렸는데 그 통증이 가신 지도 채 얼마 안 됐다. 가슴이 쓰리고 허무했다. 유명인사의 에세이 속에 파묻힌 무명 저자의 책은 초라해 보이기마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 겪지 못했던 감사한 나날을 누리고 있다. 욕심을 부리자면 한도 끝도 없고 불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언제나 그랬듯 밝은 면을 살펴본다.



1. 자식 같은 책의 안부 소식

지인과 가족에게서 온 인증샷

집 근처에 큰 서점이 없어(아니 서점이 아예 없어) 오프라인 서점에 내 책이 깔린 것을 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성남, 광화문, 목동, 영등포, 합정, 은평 등에 사는 지인들이 내 책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자식 안부를 확인한 듯 안심이 되었고, 또 나를 생각해주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학창 시절 내내 다녔던 친정집 옆 '불광문고'에 내 책이 진열됐다고 엄마가 사진을 보내줬을 때는 그야말로 '심쿵'이었다(가운데 사진). 작은 동네서점이었고, 나의 추억이 담긴 놀이터였던 그곳! 내 책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서있었다. 그 모습을 엄마가 발견했다니 감격스러울 수밖에.

(아무래도 누워있는 것보다 서있는 게 좋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 서점에 제 책이 힘없이 누워있다면 좀 일으켜 세워주세요ㅎㅎ).



2. 지인들의 서평 릴레이

금손 친구, 강규 님 수작업 카드 뉴스

독서모임을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이 내 책을 사서 읽고 귀한 서평들을 남겨주셨다. 책 한 권을 내 돈 주고 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 알기에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게다가 책을 워낙 많이 읽으시는 분들이라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있을 것이다. 시간 내어 읽어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한데 후기까지 남겨주셨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것이다.

금손을 가진 친구가 8장짜리 카드 뉴스를 직접 만들어 주어 의리를 과시하기도 했다. 심지어 내 책을 챕터별로 나누어 4편의 독후감으로 남겨주신 분도 있었다. 내가 썼던 모든 에피소드를 곱씹으며 자신이 겪었던 상황에 대입하고 체화하고 있다고 했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와 후배들도 기꺼이 내 책을 집어주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버무려져 머쓱했다.

방송작가의 이야기지만 다양한 분야의 직업군에서 공감이 간다는 후기를 많이 듣고 있다. 기획의도대로 책이 나온 거 같아 다행스럽다.



3. 남들 는 거 다 해보기

널리널리 퍼지거라!

언젠가 책을 내면 '꼭 해봐야지'했던 것들을 하고 있다. 저자 증정권을 쌓아놓고 사진 찍기,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내 책을 들고 인증샷 찍기 등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는 솔직히 현타가 왔다. 알고는 있었지만, 수만 권의 책들 속에 파묻힌 나의 책은 아무리 눈이 아플 정도로 '새파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들은 수십 권씩 쌓아뒀기에 한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만 북적였다. 나는 내 책 앞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1시간 동안 서있어 봤다. 그 누구도 나의 책을 들어보기는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법정스님의 책 3권, 김영하 에세이 1권이 팔렸다.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얼마 전 경주를 방문했는데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여행자들이 우연히 집어 드는 모습을 상상하면 짜릿하다.


온라인에서도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평소 인상 깊었던 책의 한 구절씩 필사를 해서 인스타에 올리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뻔뻔하게 내 책의 글귀를 올리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인친들이 응원을 하고 책을 사주셨으며 심지어 퇴사까지 하셨다(?!)

아니 그렇다고 진짜 퇴사를 하시면 어떡합니....



4. 소중한 분들과의 재회

글쓰기 수업 학생분들(평균 연령 50세!)

작년에 시에서 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에서 글쓰기 강사로 활동했다. 그 당시 알게 된 나의 첫 제자(!) 분들이 나에게 엄청난 응원을 보내주셨다. 수업은 5회밖에 안됐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다른 분야에도 공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었다. 나의 어리바리한 첫 강의를 좋아해 주신 분들이라 잊을 수 없었다. 시간 맞는 분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셀프 북 토크랄까! 요즘 주역 공부를 하신다고 해서 나도 다음에 껴달라고 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18년 전 롤링페이퍼

무려 18년 만의 재회도 있었다. 고교시절 선생님을 찾아간 것이다. 롤링페이퍼가 아니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2, 3학년 때 문예부였다. 글을 잘 쓰진 못했지만 관심이 많았다. 그 내용은 기록으로도 남아있었다. 우연히 친정집에서 발견한 롤링페이퍼에는 나의 꿈을 응원하는 선생님의 메시지가 빛도 바라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번호도 그대로였고, 아직 학교에 계셨다.


학교 가는 길이 많이 달라져있었다. 열 곳도 넘던 떡볶이 집은 단 한 곳만 남아있었다. 곱창집이나 브런치 카페가 그 자릴 대신했다. 고등학생의 입맛과 형편도 그만큼 발전한 것일까. 3년이나 다녔던 학교인데 가는 길을 헤맸다. 엉뚱한 골목에 들어갔다가 도로 나왔다.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온라인 수업 중이라는 선생님께서 회의를 마치고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하셨다. 마스크를 쓰고 계셨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세월은 나만 얻어맞았구나.


선생님이 학교 이곳저곳을 안내하시며 나의 기억을 복기시켜주셨다. 많이 달라져있었다. 정녕 내가 이 학교를 다닌 게 맞는가 싶었다. 그러다가 놀랍게도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나는 타임머신을 탄 듯 아찔했다.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냄새만큼은 잊지 못했다. 교실 바닥, 사물함 등에서 나오는 오래된 냄새가 나를 학창 시절로 되돌려놨다. "선생님! 교실 냄새가 똑같아요!" 나의 말에 선생님은 박장대소하셨다.


선생님께 저녁을 사주셨다. 모둠회와 나가사끼 짬뽕에 하이볼 두 잔을 시켰다. 술잔을 마주치자 못다 한 이야기가 댐 문을 개방한 듯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당시 뱃속에 있던 선생님의 아기는 열아홉 살이라고 했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 현실이 맞는지 헷갈렸다.


18년 만에 방문한 모교 / 다시 만난 문예부 선생님과 함께!




내가 책을 내리라 생각 못했다. 막연히 언젠가는 내보고 싶다고 마음 깊이 품어왔을 뿐이다. 생각지 못하게 좋은 기회가 왔고 오랜 소망을 이뤘다. 하지만 쉽사리 오르지 않는 판매지수를 확인할 때마다, 밀려드는 신간에 쫓겨나고 있는 현실을 인지할 때마다 속이 쓰렸 욕심만큼 홍보를 해주지 않는 출판사에 애꿎은 서운함만 들었다.

이렇게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음에도 더 큰 욕심을 부리느라 이 시간마저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썼을 뿐, 그 후의 일까지는 어찌할 순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다시 불안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책에도 썼듯 우리가 불안 한 건,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저 마음을 가다듬고 쓰는 수밖에. 오늘 주어진 일을 하며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밖에. 그래서 오늘도 썼다!




보통은 마지막에 책 링크를 남기더라고요! :P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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