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나서 생전 없던 증상이 생겼다. 매일 밤 등이 못 견디게 가려운 것이다. 침대에 눕는 순간 가려움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빼꼼 내민다. 니은자로 구부러진 날개뼈 모서리에서, 엉덩이와 허리 경계에서,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 홈으로부터,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까지 램덤으로 나타난 녀석은 내 등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이런 원인 모를 병 때문에 괴로운 건 나보다는 내 남편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 등 좀 긁어줘'하는 와이프의 강요어린 부탁에 잠을 물리쳐야 하니 말이다.
아니, 남편은 어쩌면 수혜자일지도 모른다. 5분도 채 긁지 못하고 등을 왕래하던 손놀림이 느려진다.
'자기 등에서 수면제가 나오나 봐, 등만 긁으면 잠이 쏟아져.'
남편은 나무늘보처럼 느려진 손을 생을 다한 목련처럼 떨군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누른 채 잠옷에서 남편 팔을 꺼내 해방시켜준다.
대충 등인 건 알겠는데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다가도 긁어주면 바로 거기!인 줄 알겠다. 몇 번 와봤던 길 같은데, 하고 긴가민가할 때 낯익은 이발소를 발견하고 '그래, 여기 맞네!' 하는 반가움 같달까.
아이러니하게도, 가려움 강도는 남편의 손톱이 지나갈 때마다 점점 더 심해진다. 가려움 레벨이 1에서 최대 10까지 있다면 레벨 1에서 2로, 2에서 3으로 긁어줄수록 더해진다. 그러다 9에서 10 사이 미칠듯한 가려움에 도달하고 마침내 충족되어 환희를 느낄라치면 녀석은 옆 동네로 옮겨간다. 그리고 다시 레벨 1.
혹시 등에 때가 많은 건 아닐까, 이태리 타올로 벅벅 문질러봤다. 이불에 진드기가 있는 건 아닌지 깨끗하게 빨았다. 다 소용없었다.
결혼 전에는 이런 증상이 없었다. 아토피가 있어 남들보다 가려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지만 등은 예외였다. 목과 팔은 벅벅 긁어 상처투성이라도 등드름 하나 없는 청정구역이었단 말이다.
나는 이게 다 남편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데 남편이 내 누울 자리라서 그렇다. 30년 넘게 혼자 자다가 누군가와 매일 잠자리를 공유하게 됐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꿈을 꿀 채비를 한다. 도란도란 하루 일과를 나누는데(때론 주식 이야기도 하고) 멀뚱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느니, 등이라도 긁어달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은 아니다. 남편은 허벅지가 자주 쑤시다는데, 도대체 허리도 아니고 어깨도 아닌 허벅지가 왜 쑤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밟아달라니 밟아주는 수밖에. 모로 누운 상태로 몸을 폴더처럼 굽혀 발끝을 세운다. 나를 등지고 모로 누운 남편 허벅지 뒤편에 발끝을 갖다 댄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준채 역겨운 님이라 생각하고 즈려밟는다. 한 때 클라이밍을 해서 그런지 내 발가락 힘이 너무 좋다며, 하루 피로가 싹 풀린다며 끊임없이 칭찬을 하는 남편. 그 칭찬이 마사지를 더 길게 받고 싶어서 하는 유인책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내가 그 속내를 모를 줄 알고 자꾸만 칭찬하는 그가 귀여우니 조금 더 밟아준다.
때로는 '나는 매일 등을 긁어주는데, 너는 왜 가끔만 밟아주느냐', ' 밟아주는 게 긁는 거보다 훨씬 힘이 더 많이 드는 것 모르냐' 티격태격하지만 말이다.
남편이 말한다. '자기가 내 허벅지 뒤를 밟아주는 동안, 나는 자기 등을 긁어주면 시간도 아끼고 좋을 텐데.' 효율을 중시하는 공대 출신답다. '그러게. 우리가 사랑해서 그래. 사랑은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라잖아. ' 문과생 와이프는 답한다.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든다.
없던 가려움이 생겨 불편하지만 나쁜 것만도 아니다. 효자손보다 시원한 남편손이 있고 어쩔도리 없이 하는 마사지지만 남편이 시원하다고 하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