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거야.”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읽다가 위 문장을 만나고 가슴이 뜨끔했다.
‘아니, 작가의 일급 비밀을 이렇게 세상에 누설하면 어쩌자는 건가!’.
마치 나쁜 일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귀가 달아올랐다. 혹시나 내가 세상으로 내뱉은 글이, 책이 ‘허섭스레기’ 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소설 내용은 예술가 심시선 씨의 기일 10주년을 맞이하여 그 후손들이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다. 위 문장이 전체 내용을 좌우하거나 큰 비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헛기침을 한 번쯤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에헴.
심시선의 며느리 난정은 독서광이다. 살아생전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며,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책을 쓰라고 권했다. 난정의 딸 우윤까지 엄마에게 책을 써보라고 하자 난정이 답한 말이다. 혹시 난정의 입을 빌린 정세랑 작가의 생각은 아닐까. 사실은 대단하지 않은 글쓰기, 뻔뻔함으로 무장하면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라고. 과감하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내부고발자의 말대로 쏟아지는 글 무더기 속에서 반짝이는 책 한 권을 발견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진짜 보석을 알아보는 안목이 저절로 키워지기란 만무하니 말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있다. 그중에서도 글쓰기, 책 쓰기를 유독 무겁게 여기시는 분들이 꽤 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책을 오랫동안 읽어온 분들이다. 좋은 책을 읽어온 경험의 누적이 ‘눈’을 높게 만들고,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부여하는 것이다. 오히려 독서량이 적은 분들은 들이는 뜸이 짧다. 어설프게나마 시작이 빨랐고 시작은 언제나 중요하다.
글을 쓸 때 ‘너무 잘 쓰려고 하는 마음을 버려라’, ‘부담을 내려놓고 시작하세요’라는 조언은 많은 글쓰기 선생이 하는 단골 멘트다.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도 맞다.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글을 쓰기 전에 서랍 속에 넣어둔 가면을 꺼낸다. 가면의 이름은 철면피다. 얼굴에 가면을 착용하는 순간, 아무도 나를 알아볼 수 없고 나는 뻔뻔해진다.
나의 첫 글쓰기 책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를 처음 집필할 때 나는 수시로 가면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글쓰기 책을 3권 냈고 강의 경험도 쌓여 ‘글쓰기를 알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방송작가로 글을 쓴 경력이 10년이 넘어도 그것은 내 글을 조율하는 일이었지 남의 글에 가타부타하는 일은 아니었다. 메인작가로 후배 작가의 글을 첨삭해주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팀 안에서의 업무였다.
내가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을 발견한 출판사 편집자에게 ‘글쓰기 책’ 출간을 제안받았을 때 뛸 듯이 기뻤다. 출간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필을 하면서 스스로 ‘자격’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걱정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명색이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인데 정작 내 글이 훌륭하지 못하면 어쩌지?’
‘과연 내가 글쓰기란 이렇게 써야 한다,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기성작가님들이 내 책을 보고 비웃으면 어쩌지?’
‘어이 글밥, 뭐 돼? 우리 출간 작가들의 세계는 아무나 함부로 넘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어디선가 날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점점 부풀어 오르는 망상이 날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편집자님께 못 쓰겠다고 이야기할까, 더 좋은 작가가 있다고 소개시켜 드려야 하나.’
불안과 의심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뻔뻔함의 가면을 고쳐 썼다.
‘글쓰기를 대하는 내 생각은 누구와도 같을 수 없어. 유일무이한 나만의 철학이 있는 거야.’
‘나보다 지식이 많을 순 있어도, 나처럼 쉽게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을걸?’
‘공감하느냐 비판하느냐는 독자의 몫이지, 내가 앞서 판단할 게 아니야.’
나는 쓰는 사람이니 다만 쓸 뿐이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두려워할 필요 없고 또 설사 그렇다한들 어쩌랴. 내 손 밖의 일 아닌가.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다만 이 뻔뻔함에는 내 글에 책임을 지겠다는 전제가 필요했는데 그것은 수없이 반복하는 퇴고로 해결될 일이었다.
<시선으로부터>의 난정은 허섭스레기들을 생산하는 뻔뻔한 작가들을 비웃었지만 쓰는 사람에게 그 뻔뻔함이 모두 거세되었다면 ‘진짜 읽을 만한 것’들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그녀에게 일러주고 싶다.
친애하는 작가님들과 뭉쳤습니다. 책 속의 문장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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