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심리상담-2
상담자: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어떤 점에서 좋다고 느꼈나요?
내담자: 단점이 장점이 되는 거죠. 사실 저는 거절하는 일이 어렵다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게 저는 어렵지 않거든요. 물론 제 나름에는 완곡하게 이야기 하긴 하지만. 그러다 보니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안고 후회하거나 힘들어한 일은 그동안 잘 없었어요. 그러면 제가 해야 하는 일에 열중할 수 있고, 업무 부분에서도 그만큼 성과가 나왔고요.
상: 그렇겠네요. 아무래도 관계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그만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럼 꼭 개인주의적인 면이 고쳐야 할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런데 선영님은 방송작가로도 10년 넘게 일하셨잖아요. 그 일은 협업 아니었나요. 거기서 그만큼 버텨냈다는 건 팀워크가 필요한 일에서도 잘 적응하는 것 같은데요.
내: 네, 방송은 협업이죠. 피디, 작가, 그리고 출연자와도 끊임없이 조율을 해야 하고, 윗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일도 필요하고요. 그야말로 '사회생활'이 필요한 조직이죠. 그때는 빠르게 돌아가는 일정에 급급하게 따라가다 보니 10년의 세월이 흘렀던 거 같아요. 지금 혼자서 책을 쓰는 일이 훨씬 저에게 잘 맞고 편하게 느껴져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는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의 기쁨을 나눠갖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잘하면 내덕, 못해도 내 탓. 온전히 결과물에 대해서 제가 책임지고 싶어요. 그래서 팀워크가 필요한 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조별 발표라는 게 있는 거예요.
상: 지금 듣고 있는 수업에서요?
내: 네, 2인 1조로 짝을 지어서 서로 의논해서 연구계획서를 쓰는 건데, 수강 인원이 홀수여서 저만 혼자 하게 됐거든요.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괜찮겠냐?"라고 묻는데 저는 속으로 되게 좋아했거든요. 혼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으니까요. 오만하게도. 1학 차라서 제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연구계획서라는 걸 써본 적도 없거든요. 그런데 무슨 자신감으로 혼자 하고 싶어 했는지.
상: 잘 준비하고 계세요?
내: 지금 자료조사 중인데 막막해요. 아는 게 없으니까 이게 맞는 건지 물어볼 사람도 없고 너무 답답해요. 챗지피티를 동료 삼아 아이디어를 꾸려가고 있는데 워낙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잘하는 친구니까요.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또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다 보니 혼란스럽기도 하고요. 요즘은 그게 걱정이 돼서 밤에 잠도 잘 안 와요.
상: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큰가 봐요. 혼자 하게 된 게 후회된다거나 하세요?
내: 아뇨. 너무 괴롭고 스트레스받는데... 그럼에도 혼자 하는 건 좋은 거 같아요. 엄청 괴롭고 힘들어도 이걸 내가 결국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럼 그 안에서 배우는 것도 있을 테고. 그런 걸 좀 즐기는가 봐요.
상: 여러 번의 해냈던 결과 덕분에 앞으로도 해낼 것이다 하는 자기 효능감이 있군요. 그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성취의 기쁨이 혼자 하는 일을 더 즐기게 하는 것 같네요.
내: 그럼에도 참 모순적인 인간인 게. 제가 그 수업 쉬는 시간에 연구계획서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너무 어렵다, 고민된다 이런 말을 했었거든요. 그걸 들었던 한 동기가 복도에서 지나가는 말로 "혹시 너무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저 주말에 쉬니까 도와드릴 수 있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분은 이미 박사과정까지 다른 학교에서 하다가 온 분이라 연구계획서가 익숙한 분이었어요. 그럼에도 자기 일도 바쁜데 선뜻 그런 말씀을 한다는 자체가 너무너무 감사한 거예요. 어느 정도였냐면, 눈물이 핑 돌고 그다음 시간까지도 계속 여운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하고 힘이 됐다고 카톡 문자를 보냈어요 그분께.
상: 정말 말로만이라도 감사하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누군가 도움을 주겠다는 그 말 자체가 든든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내: 정말 그래요, 그리고 그 말이 '말로만'이라고 안 느껴졌어요. 진짜 도와주실 거 같았고. 그런데 웃긴 게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너무 감동을 받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절대 연락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 그분께 피해가 될까 봐요?
내: 네, 그런 면도 있고요. 그냥 제 스스로 힘으로 하고 싶었어요. 뭔가 그분이 도와주셔서 계획서를 잘 쓰면 내가 해낸 거 같지 않은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아서요. 아무리 조금 도움을 받더라고요.
상: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요.
내: 저는 이런 저의 성격이 저를 고립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들어요. 그리고 제가 스스로 그렇게 해버릇하니까, 남들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것이 좀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물론 정말 힘든 상황이라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해보지도 않고 네가 잘 아니까 이것 좀 도와줘, 라거나. 그런 사람에게 저는 빈말이라도 "그래, 내가 도와줄게" 이런 말이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느낀 게. 그 동기가 저한테 지나가듯 한 그 말이 저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말이라는 게 정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의 기분과 관계에 큰 영향을 주는구나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어요.
상: 그 동기분이 도와주겠다고 한 말이 선영님께 큰 힘이 된 만큼, 따뜻한 말의 힘을 배우게 된 거네요.
내: 맞아요. 제가 힘든 상황이라서 더 크게 느껴진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이나 행동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한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그것이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확산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상: 학교에 다니면서 벌써 많은 걸 배우셨네요.
내: 그러게요, 등록금은 뽑은 거 같네요. ㅎㅎ
상: 자, 이제 선영님이 그린 그림으로 HTP(집-나무-사람 그림검사) 검사 해석을 해보려고 해요. 사람은 워낙 복잡한 존재라 그림 하나만 보고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MMPI랑 TCI검사 같이 한 것도 두루 살펴서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건데, 그렇다고 반드시 이러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니 참고하세요.
내: 네, 너무 궁금해요.
다음 상담에서 계속
*이 상담 내용은 제가 심리상담 10회기를 받은 내용을 각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