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의 책을 쓰면서 8번 달라졌다

책을 써서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by 글밥 김선영

2020년, 첫 책을 내고 어느덧 8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은 독자도 변화시키지만 쓰는 사람의 인생도 시나브로 바꾼다. 어쩌면 책 쓰기는 생의 항로를 결정하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쓸 때마다 나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휩씁려갔다.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바람이 부는 방향이나 조류에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그러나 선장인 나는 키를 잡고 있었고 결국 항해를 결정한 것 또한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첫 번째 책은 방송작가 에세이였다. <오늘 서강대교가 무너지면 좋겠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내가 10여년 동안 몸담았던 방송계의 일상을 여과 없이 담은 유쾌하고도 씁쓸한 책이다. 이 책은 방송 일을 그만 둔 지 얼마 안 돼서 쓴 책인데 그만큼 생생한 날 것의 현장과 감정이 살아있다.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송 작가로 살았던 기억이 물 빠진 청바지처럼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또 방송계의 현실도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내가 방송 일을 하던 당시는 최저임금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야만의 시기'였고, 영상 촬영 또한 디지털파일이 아닌 '테이프'로 했으며 막내작가에 대한 처우나 노동 환경도 지금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열악했다. 물론,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수의 직업 에세이는 관련 업계 사람들이 즐기는 만큼 시의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책은 내가 브런치에 연재한 글이 출판사에 발견되어 탄생할 수 있었다.


비록 증쇄할 만큼 사랑 받지는 못했지만 그 책이 내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집필하는 동안 나의 지난 10여년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맥 아담스는 '서사 정체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의 삶을 스토리화 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만든다는 요지다. 나는 에세이를 쓰면서 나라는 영웅의 극복 서사를 완성했다. 마치 오디세이아의 오딧세우스가 바다에서 난파돼 표류하고 모진 고생을 했던 것처럼, 나의 방송 작가 시절 또한 내게는 만만치 않은 모험과 시련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힘들고 고된 여정을 글로 쓰고 손질하는 과정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발견했다. 아니, 발견했다기 보다는 창조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 모른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아주 섬세한 보석을 세공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고 갑작스레 금이 쩍 가는 바람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의 어설픈 실수, 그리고 내가 겪은 부조리와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 나는 그속에서 어떤 교훈을 얻기도 했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쩌면 책을 읽는 사람보단 쓰는 사람이 얻는 이점이 많은 것이 책 쓰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나는 나의 전생을 홀가분하게 놓아줄 수 있었다. 내가 청춘을 쏟았던 그 일을 지금까지 지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더이상 허탈하거나 슬프지 않게 되었다. 마치 시절 인연처럼,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의 한 편에 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책은 글쓰기 방법을 다룬 <나도 한 문장 잘 쓰면 바랄 게 없겠네>라는 책이다. 이 책은 나를 '글쓰기 코치'라는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방송 글을 쓰던 경험을 살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운 좋게 예스24의 '오늘의 책'에 선택되면서 3쇄까지 찍게 되었다. 가독성 좋은 방송작가의 경험은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데 친절한 무기가 되었다. 책이 잘되면 강의가 들어온다. 강사라는 또다른 세계가 열린 것이다. 사실, 나는 내향인인 데다 발표 공포증까지 있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열심히 쓴 책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불러주는 곳에 나갔다. 일 년에 책 한 권을 내는 것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순 없으니 강의는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강사 일을 하려다 보니 공부를 놓을 수 없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더 많이 배운다. 책 쓰기와 마찬가지로 본의 아니게 또 이기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책도 글쓰기와 독서법을 알려주는 책을 내면서 글쓰기 코치, 강사로서의 직업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져갔다.


다음 달이면 나의 아홉 번째 책이 나온다. 이 책 또한 나의 항로를 바꾼 돌풍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대학원에 갈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살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20대 때는 어마어마한 등록금에 엄두도 내지 못했고, 일을 하면서도 별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하는 일은 학위가 중요하거나 영어 성적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조리있게 글을 쓰면 될 일이었다. 물론 강사는 학위에 따라 강사료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런 기준을 삼는 관공서가 한심해 보일 뿐이었다.


아홉 번째 책은 '고전 필사 책'이다. 나의 다섯 번째 책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라는 글쓰기 필사책이 꽤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고전으로 유명한 한 출판사의 눈에 띄었다. 고전이라니! 나는 고전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이 읽는 편도 아니었고, 그에 따라 배경지식도 부족했다. 하지만 욕심 났다.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라(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계약하면 내가 동서양의 고전 100권을 강제적으로 읽게 된다는 그 환경이 욕심 났다.


집필은 계약과 함께 시작된다. 계약금을 받는 순간, 작가는 마감을 맞추기 위해 하루의 일부를 집필에 투자해야 한다. 고전 필사 책에는 최소 100개의 고전 필사 글귀를 실기로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을 내가 써낸다면 무조건 고전 100권을 읽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 얼마나 좋으냐 고전에 박식한 작가라니. 어렵다는 편견으로 미뤄두었던 고전을 억지로라도 읽게 될 기회였다. 완성을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무조건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이 무대뽀 정신은 방송작가 때 생겼다).


예상대로 이 책의 집필은 쓰는 것보다 읽는 게 고역이었다. 깨알같은 글씨의 벽돌 고전을 내내 읽어내느라 안구건조증이 있는 눈알이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읽으면서 나는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사르트르와 까뮈를 읽으면서 실존주의에 눈을 떴고, 노자를 읽으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말로만 듣던 제인 에어,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안네의 일기, 햄릿, 파우스트를 게걸스럽게 읽었다. 환상적인 고전의 세계에서 신나게 허우적거렸다. 물론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지만 그것은 기쁨과 언제나 비례하므로 여기서 굳이 밝히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책은 출간을 앞두고 있고,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었다. 철학과가 아닌 보다 폭넓게 인간을 이해하는 심리상담학과로 결정했다. 나의 관심은 언제나 '실용'이기에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학과 내 '철학상담'이라는 세부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책을 내기가 더욱 쉬어졌다. 다양한 출판 플랫폼이 존재하고 AI가 집필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책을 찍어는 일부의 '딸깍' 현상도 불거지고 있다. 유명세와 돈에 현혹되어 저자의 깜냥(충분한 경험과 인문학적 사색의 동반)이 되지 않으면서 AI가 쓴 글을 자신이 쓴 글인양 포장해 우선 책부터 내려고 한다. 나는 그러한 책이 팔리거나 읽히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는 더더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책을 써서 인생을 바꾸려면 명예나 돈을 목표로 두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이야기에 기존에 존재하는 이야기들과 다른, 어떤 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지 고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키를 잡고 있어야 한다. 충분한 항해 경험이 있어야 한다. 꼭 전문 작가만 책을 쓸 수 있다 뜻이 아니다. 나는 자신의 인생을 되도록 한 권의 책에 담아 완성해보라고 장려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다만 그 키를 꼭 자신이 붙잡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항해에 순풍만을 기대하지 말고 폭풍우와 난파 가능성까지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확고한 마음의 준비가 섰다면 출항을 준비해도 좋다. 아니 강력히 권한다. 인생은 모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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