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을 잡은 어깨가 뻐근하다. 손바닥은 이미 축축하게 젖었다. 김여사는 출근길 첫 고속도로 운전에 진땀을 흘리는 중이다. 그래 봤자 시속 75km.
웽!!!!!!
2010년식 마크리는 작은 몸집으로 안간힘을 쓰느라 요란한 소리를 내지른다.
“할 만하지?” 보조석의 남편이 묻는다.
“뭐라고? 엔진 소리 때문에 안 들려.”
“아냐 운전해.”
김여사는 남편의 조언대로 최대한 먼 곳을 주시하려고 노력 중이다. 차선 바꿀 필요가 없어서 초보에게는 고속도로가 더 편하다는데 김여사에겐 그렇지 않다. 빠른 속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두려움이 엄습한다.
만약 내가 여기서 실수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겠지? 나 빼고 다 시속 90km는 달리는 거 같은데.
김여사는 자꾸만 떠오르는 망상을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실 김여사는 신호등 애호가다. 시내길에선 빨간 불에 한 번씩 쉴 수 있어 좋다. 남들은 신호등에 걸리면 짜증을 내지만, 그녀에겐 한 숨 돌리는 반가운 기회였다. 하지만 고속도로는 신호등이 없다. 가도 가도 똑같은 길에 왠지 시야가 멍해지는 기분이다.
갑자기 눈 앞에 얕은 구덩이가 보인다. ‘어 저기 왜 땅이 파여있지?’ 3차로는 몸집이 큰 트럭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유난히 범프가 많은 걸 아직 잘 모르는 김여사. 크기도 좀 크고 꽤 깊어 보인다. 그대로 위를 지나가다가는 쿵하고 머리를 천장에 찧을 판이다. 김여사는 남편이 운전하던 방법을 따라 해 보기로 한다. 핸들을 살짝 꺾어서 바퀴를 범프 사이로 쏙 피해 가 보는 거다.
“어어어!! 핸들이 왜 이래!”
핸들을 살짝 꺾었을 뿐인데 차체가 갑자기 왼쪽으로 쏠린다. 당황한 김여사는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이번엔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는다. 긴장한 나머지 너무 꺾었다. 차체가 오른쪽으로 기운다. 다시 왼쪽, 다시 오른쪽, 우왕좌왕 쏠리는 차를 바로잡으려고 핸들을 이리저리 꺾는 김여사! 마크리가 정신없이 기우뚱거린다. 양옆 바퀴가 번갈아가면서 들썩인다. 차가 전복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그녀의 남편이 팔을 뻗어 핸들을 꽉 붙든다.
“뭐 하는 거야! 왜 핸들을 흔들고 난리야!”
김여사의 남편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다. 김여사는 눈물이 찔끔 난다.
“아니.. 나는 저 범프 피하려고. 핸들 살짝 돌렸는데 막 제 멋대로 핸들이 움직이잖아.”, “핸들이 왜 제 멋대로 움직여, 네가 움직인 거지.”, “아니라니까! 나는 균형 맞추려고 한 건데.”
울먹거리는 김여사를 보고 남편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힌다.
“다음부터는 이런 길이 왔을 때 무리해서 피하려고 하지 말고 핸들을 꽉 붙잡아. 구멍에 바퀴가 빠지면 차가 흔들릴 수 있으니까 그럴 땐 핸들을 트는 게 아니라 꽉 잡아서 못 움직이게 하는 거야, 알겠지?”
김여사는 무슨 정신으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거미줄 같이 복잡한 안양 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차선도 바꿔야 하고 정신을 더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비게이션은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 좌회전 차로로 지금 당장 가야 하는지, 한 블록 더 간 다음에 가야 하는 건지 ‘몇 미터 전’이라는 말로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길치는 차 안에서도 길치다.
내리막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차로에 있던 덤프트럭이 김여사 쪽으로 달라붙는다. 마크리 덩치보다 10배는 족히 커 보인다. 등장만으로도 공포스러운데 자꾸만 다가오는 거 같다. ‘무섭게 왜 자꾸 붙는 거야, 차선 바꾸고 싶나?’ 김여사는 오른쪽 덤프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김여사의 핸들을 낚아채 왼쪽으로 트는 남편.
“어?”
김여사는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는다. 마크리는 1차로 정지선 보다 2미터가량 튀어나와 간신히 멈춰 섰다.
“빨간불이잖아! 어딜 보는 거야 지금!”
“아니 옆에 트럭이..”
“트럭을 왜 봐, 자기는 앞만 봐야지 어휴. 자기 오늘만 살고 싶어? 정신 안차려?”
“미.. 미안.”
김여사는 트럭에 정신이 팔려 앞을 보지 못했다. 김여사가 달리고 있던 2차로에는 정지선 뒤로 소나타 한 대가 멈춰서있었다. 남편이 핸들을 왼쪽으로 꺾지 않았다면 그대로 소나타의 뒤를 들이박았을 터. 김여사는 아찔함에 어질어질하기까지 하다.
“자기야, 나 그냥 전철 타고 다닐래. 진짜 못하겠어. 숨이 안 쉬어져.”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돼. 이제 이 길에서는 절대 신호 못 보는 일은 없을 거야.”
김여사는 출근길 1시간 여 동안 두 번의 사고를 칠 뻔했다. 문득 5년 전 심심풀이로 봤던 사주가 떠올랐다. ‘스릴을 즐기는 편이라 차 사고를 낼 수 있으니 운전을 조심하세요.’ 당시엔 어차피 운전할 일도 없을 텐데 뭐 하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역시 무리였나. 김여사는 하나뿐인 목숨을 걸면서 까지 운전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한 편으로는 차도를 가득 채운 수많은 자동차를 보며, '이 사람들은 다 목숨 걸고 운전들을 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들도 초보를 겪었겠지?' 하지만 왠지 그녀처럼 어리바리했을 거 같진 않다. 중고차긴 해도 목돈을 주고 샀는데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기분이었다.
어느새 김여사의 회사 앞.
“여기다 세우면 돼?”
“어 한쪽으로 붙여.”
보조석에서 내린 남편이 그녀가 내리자 운전석으로 올라탄다.
“퇴근시간에 다시 올게. 야간엔 또 느낌이 다르니까 체험해봐야지.”
“그래.”
자신 때문에 출근시간도 미루고 운전연수를 해주는 것도 모자라 퇴근 시간에도 찾아오겠다는 남편. 그녀는 미안해서라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