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남편은 친절한 하드 트레이너

운전은 이미지 트레이닝이 중요하다

by 글밥 김선영

김여사는 면허를 갱신하도록 운전대를 잡은 일이 없었다.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의 위치조차 헷갈리는 왕초보란 말이다. 그녀는 분명 1종 보통 시험에서 트럭을 몰 때 쥐 나게 사용했던 왼발이 왜 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럴 땐 남편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다.


“왼발은 어디에 둬?”

“그냥 편한 데 놓으면 돼”

“아무 데나?”


김여사는 왼발이 가만히 있는 게 영 어색하다. 왜 발이 두 개인데 오른발만 을 해야 한단 말인가.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양 발로 나누어 밟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해보는 그녀.

다행히 김여사의 친절한 남편은 그녀를 무시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을 한다.


“자 이게 자동차 매뉴얼이니까 각 기능들 보고 외우고,

우선 바퀴 위치부터 알아야 하거든?”


김여사의 남편은 창문 앞에 누워있는 왼쪽 와이퍼를 기준으로 내 차의 왼쪽 바퀴와 오른쪽 바 위치를 알려줬다. 금방 감을 잡은 김여사는 차로의 중간을 유지하며 달리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여사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빠른 속도. 사실 김여사는 스키나 스노보드, 자전거와 같이 스피디한 운동을 무서워했고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일단 속도가 붙어버리면 내 뜻대로 제어하기 힘들거라 느껴서이다. 그녀는 운동을 할 때도 락 클라이밍이나 요가, 필라테스와 같이 전신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운동이 잘 맞았다.

반면, 김여사의 남편은 그녀와 정 반대다. 드라이빙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서킷 질주를 하는가 하면, 대학시절 과외를 해서 번 돈 80만 원으로 포르셰를 하루 렌트해 고속도로를 달릴 정도였다. 공대생인 김여사의 남편은 단순히 차에 관심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메커니즘까지 꿰뚫고 있다. 가솔린차와 경유차가 승차감이 다른 이유라든지, 전륜과 후륜의 특성, 벤츠나 BMW 그리고 미쓰비시의 역사, 차 종에 들어가는 임팩트 빔 개수까지 줄줄 읊을 정도다. 그런 김여사의 남편은 김여사에게 운전은 초반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며 조만간 하드 트레이닝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했다.




퇴근길, 어김없이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은 김여사. 갑작스레 몰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다행히 타이밍이 좋아 지하철을 오래 기다리진 않았지만, 오늘은 냄새가 문제였다.

1호선 특유의 쾌쾌함에 누군가 오줌을 싼 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 지린내가 더해졌다. 다들 나는 절대 아니라는 표정으로 코를 막았다. 김여사도 숨을 참았다. 옆 칸으로 가고 싶었지만 사람이 많아 움직일 수 없다. 이런 날은 집에 가서 바로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고 누우면 딱 좋겠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김여사를 부르는 그녀의 남편.

“앉아봐. 실전에 앞서 이미지 트레이닝부터 하자”


김여사의 남편이 TV를 켜더니 유튜브를 연결한다. 자신을 ‘미남’이라 부르는 한 유튜버가 초보운전자와 함께 도로연수를 하는 영상이 켜졌다. 김여사와 같은 초보운전자에게 운전팁을 쉽게 알려주는 유익한 콘텐츠였다.


“저봐 저봐. 자기는 저렇게 깜빡이도 없이 바로 끼어들어가면 안 된다 알겠지?”


함께 영상을 보던 김여사의 남편이 마치 김여사의 잘못인 양 다그치듯 물었다.

김여사는 하품이 나오는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그럼 난 절대 안 그러지! 근데 자기야. 나 너무 졸려.

“그래도 이미지 트레이닝해야지!

계속 추운데 1호선 타고 다니면서 고생할 거야?”

“그건 아닌데...”


김여사는 ‘미남 샘의 유튜브’에 이어 ‘블랙박스 몇 대 몇’을 보며 1시간 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받았다. 하지만 진짜 트레이닝은 이제 시작이었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각, 남편의 손에 이끌려 주차장으로 나온 김여사. 양 볼이 얼얼한 날씨에 입김이 하얗게 번진다.

“자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운전대 잡아”

“지금?”

“이미지 트레이닝했을 때 바로 타봐야 감이 살지.

지금 차도 별로 없고 신호도 꺼져있으니까 어려울 거 없어”


김여사는 핸들을 잡았다.

캄캄한 하늘처럼 머릿속도 캄캄해지는 기분이다.


내가 시동 어떻게 켜라고 했어?”


남편의 재촉에 김여사는 브레이크를 힘껏 밟은 채 기어를 D로 옮겼다.


“미러 잘 보여? 다리 길이는?”

“더 당겨야 할 거 같아”


김여사가 운전석을 앞으로 당겼다.


“근데 원래 무릎이 닿아?”


좌석을 너무 앞으로 당긴 나머지 무릎이 핸들 아랫부분과 붙고 만 김여사.

김여사의 남편은 의자를 조금 빼주며

초보 때는 원래 불안해서 앞으로 많이 당겨 앉는다고,

점점 익숙해질 거라 말했다.

“라디오 좀 꺼줘”


긴장이 된 김여사는 괜스레 갑질 고객사와 같은 말투로 남편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남편은 잠자코 라디오를 껐다. 고작 아파트 정문으로 나와 후문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내비 안 켜도 되나?”

“어 내가 옆에서 알려줄게.

“나 이제 출발한다?”

“어. 난 이제 아무 말도 안 한다. 없다고 생각해.

“나 진짜 출발한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

김여사가 가속페달을 밟는다. 10, 20, 30km/h 속도가 붙을수록 두려움은 두 배 더 빨리 올라갔다.


“나 미쳤나 봐 너무 빠르잖아 지금!


시속 40km에 이르자 김여사는 마치 홀로 텅 빈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한 착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속 40이거든?”


시큰둥한 남편의 반응에 김여사가 조급해진다.


“아냐 나 너무 빠른 거 같은데. 나 못하겠어 자기가 좀 해.

“아 무슨 소리야!” 슬슬 짜증이 나는 김여사의 남편.


“우회전해야지! 속도 줄여!

어? 그렇게 크게 돌면 어떡해. 차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크게 돌았어?

좌회전은 선이 있는데 우회전은 선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오른쪽에 바짝 붙어서 돌아야지.

우회전은 무조건 비보호라서 사고가 나면 독박이야.

사람 오는지, 차가 오는지, 어?

전부 다 확인하고 천천히 돌아야 돼 알았지?”

“응... 우회전은 독박...”


달밤에 벌써 아파트 단지를 4바퀴째 돌고 있는 김여사 부부. 내일부턴 김여사가 출근길을 직접 운전해서 가야 한다. 물론 남편과 함께. 남편은 김여사의 운전연수 때문에 출근시간까지 늦췄다. 안양까지 1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 김여사는 자신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초보를 지나지 않으면 김여사의 삶에 결코 운전은 없다.


'그래, 죽기야 하겠어.'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두고 슬그머니 이불 밖으로 나온 김여사. 스마트폰 내비를 켰다. 출근길 모의 주행을 해볼 셈이다.


화살표를 따라 조금씩 나의 마크리가 전진한다.

우회전이다. 오른쪽에 바짝 붙지 않으면 독박이다.

주황 불이다. 브레이크를 천천히 밟는다.

지하차도로 들어가야 하니 2차로로 차선을 바꾸자...

어느새 마크리는 안양이 아닌 꿈속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