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김여사는 자신의 이름이 싫었다

장롱 속 운전면허증을 드디어 꺼내다

by 글밥 김선영

35세 김여사는 자신의 이름이 ‘김여사’인 게 싫었다.


유명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그 이름 때문에 김여사는 학창 시절 내내 놀림을 받았다. 성인이 되어 그 상처가 아물 때쯤, ‘김여사’의 이름이 갑자기 실시간 검색 이슈로 떠올랐다. 운전에 서툰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뜻이란다, 제길!


사실 김여사는 갱신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면허증이 있다. 운전면허시험이 가장 비싸고 어려웠다던 그 시절, 녹이 슬어 달달거리는 ‘파란색 포터’를 몰고 극적으로 딴 수동 1종 보통 운전면허증. 김여사는 왜 굳이 어렵다는 1종 면허를 땄을까?


남들 다 있는 운전면허를 따 보겠다고 결심한 김여사가

당시 남자 친구에게 물었었다.

“1종, 2종이 있네?

난 트럭 몰 거 아니니 2종이면 되겠지?”

“나중에 과일 장사하게 될지도 모르지, 1종 따둬.”

“아 그런가?”

김여사는 사람일은 모르니 역시 1종을 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자 친구는 얼마 후 김여사 곁을 떠났다. 무책임한 놈!




길치에 방향치가 완벽한 컬래버레이션을 이루는 김여사는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도 남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추가 비용을 주고 도로연수도 받았다. 그리고 도로주행 시험 당일. 김여사는 몇 번이고 연습했던 도로 위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정신 차려, 연습 때처럼만 하자’


드디어 출발! 몇 초나 지났을까. 옆에 앉아있던 시험 감독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할 때 오른쪽 깜빡이 안 키셨네요. 마이너스 5점”

“아 깜빡이를 깜빡했네.”


김여사는 빛의 속도로 멘붕에 빠져들었다.

“어허! 교차로에서 차선을 바꾸면 어떡해요!”


감독관의 목소리가 심장을 퍽!하고 때렸다. 망했구나. 손바닥이 온통 땀으로 젖은 김여사. 한숨을 쉬며 트럭에서 내리는 그녀에게 한 마디 하는 감독관님.


“길치인 거 감안하고 운전 실력만 보고 채점했습니다.

70점 커트라인 간신히 통과했어요.”

이거 꿈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고 돌아서는 김여사. 뒷좌석에 타고 있던 다른 면허 응시자가 씩씩거리며 김여사에게 항의하듯 말한다.

“진짜 운 좋으신 거예요. 저는 그렇게 운전하다 떨어져서

이번에 다시 보는 거거든요?”

운 좋은 김여사가 질투를 받는다.

‘니가 그리 말 안 해도 안다 인마’


막상 면허를 땄는데 차가 없다. 서울에 살다 보니 웬만한 이동은 대중교통으로 다 돼 불편함도 모르겠다. 운 좋은 김여사는 100만 원가량을 들여 우여곡절 끝에 딴 운전면허증을 바로 장롱 서랍 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은 그렇게 장롱 속에서 끝 모를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통화를 하던 김여사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영미야 요즘 뭐하고 살아?”

“나 요즘 운전 연수하잖아.

애 낳고 운전 못하면 완전 고립이래.

시간 있을 때 따두려고”


“진영아 뭐해?”

“응~ 운전 중. 애 데리고 문센 가고 있어”


우린 하나라 생각했는데. 장롱면허족들이 다들 운전을 시작했단다. 김여사 역시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애를 낳겠다고 생각해왔다. 30대 중반인 김여사는 이미 육아의 고통을 여러 친구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터. 그중 가장 두려운 점은 고립이었다. 김여사는 길치에 방향치지만 싸돌아다니는 걸 매우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여사가 운전을 해볼까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여사는 결혼을 하고 경기도로 이사를 가면서 지하철에도 시간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집에서 5분만 걸으면 전철역이고, 역 안에서 5분만 기다리면 열차가 끊임없이 오는 서울과 상황이 달랐다. 겨울철, 배차 시간이 30분인 1호선이 이제 막 출발해버리면 김여사는 '미단 공주를 기다리는 황장군'처럼 눈보라를 맞으며 한파를 온몸으로 버텨야 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운전을 해야겠어. 이건 생존이다!'


“완전 고립이래” 영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김여사는 그날 밤 남편에게 중대발표를 한다.


“나 중고차 살래.”

“오? 드디어 우리 와이프가 운전을 하는 거야?”

“무섭긴 한데.. 필요할 거 같아.”

“그래 이번 주말에 차 보러 가자”




김여사는 한 번 결심하면 미루지 않는다. 김여사의 남편은 김여사가 무언가를 하려고 했을 때 늘 응원하는 편이다. 그 주 토요일, 남편과 함께 중고차 전시장을 찾아간 김여사. 이렇게 많은 차들 중에 과연 김여사의 차는 어디 있을까? 기적처럼 300만 원 대를 찾아야 한다. 이왕이면 사고가 안 난 차였으면 좋겠고 비흡연자의 차였으면 한다. 물론, 주차가 편하고 유지비가 저렴한 경차여야 한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대서양의 푸른빛을 닮은 '너!

아이슬란드 블루 색깔의 2010년 산 마티즈 크리에이티브가 김여사의 눈에 쏙 들어왔다. 딜러는 숨넘어갈 듯 이 차의 장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게 연식은 좀 됐는데 보시다시피 너~무 관리가 잘돼서 새 차 같죠? 처음 운전하시는 분들한테 딱이에요. 경차라 유지비도 부담 없고. 사장님도 알다시피 쉐보레가 또 튼튼하잖아요?”


자신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김여사의 남편에게 열심히 충동질을 하는 딜러.

‘이봐, 돈은 내가 낼 거라고!’

김여사는 자신이차인데 남편에게 모든 걸 설명하는 딜러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 이걸로 할게요!”

김여사는 즉석에서 현금을 이체한다. 350만 원. 공인인증서 비번을 누르는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김여사도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어!”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일명 ‘마크리’의 정식 차주가 된 김여사는 장롱 속에 잠들어 있던 면허증을 지갑 앞 칸에 끼웠다. 그리고 마치 전쟁을 앞둔 전사의 마음가짐으로 마크리의 뒤통수에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였다.

기회만 달라는 듯 마크리가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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